오랫동안 꿈꾸며 준비했던 집.
주택으로 옮겨와 산 지 100일이 훌쩍 지났다.
이사와 함께 바쁜 일들 몇 가지가 겹치는 바람에
그동안 집을 여유있게 즐길 만한 시간이 없었던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주택은 아파트에서 보낸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들이 있음을
날마다 확인하며 보낸 몇 달이었다.
자연주의 육아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텃밭, 주택, 시골을 가까이 하거나 삶의 터전을 아예 그곳으로
옮기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그런 흐름 속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 뼘 정도에 불과한 마당일지라도 땅과 좀 더 가까이 살고자 했던
가족 모두의 바램은 지난 짧은 시간동안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졌다.
봄에 이사오자마자 마당 한 켠에 심은 채소나 허브 모종들이
초여름이 오기가 무섭게 탐스러운 결실을 보여주었다.
방울토마토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몇 년동안 길러보았던 터라 익숙해 있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큰 토마토도 심어 키워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흙에 비료를 섞어주거나 지지대도 제때 세워주지 못했건만,
토마토는 이쁜 아기 엉덩이처럼 날마다 토실토실 익어갔다.
처음 수확해서 먹어보니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1층 거실 마루에 앉아 내려다 보이는 마당에
초록에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토마토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이뻐라..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전에 살던 아파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임에도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와 기운이 참 다르다.
아침을 여는 새들의 소리로 시작해
날마다 우리집 마당에 출근 도장을 찍는 듯한 날개가 큰 호랑나비들,
저녁이면 풀벌레들의 잔잔한 울음소리가 계절을 진하게 느끼게 해 준다.
또 집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에도 민감해졌다.
아침 7시반이면 어김없이 부르릉.. 소리를 내며 출근하는
이웃집 아기아빠의 오토바이 소리,
아이들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집을 나서는 소리,
우체부 아저씨가 늘 정해진 시간에 우편물을 넣는 소리...
이사오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마당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지만,
이런 환경 덕에 아이들이 꽃, 채소, 곤충, 작은 동물 등에 관심이 더 늘어난 게
젤 큰 변화이지 싶다.
한번은 나무들 사이에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이 너무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
아이들과 넋을 놓고 지켜본 적이 있다. 사람이 자를 대고 선을 그어도 그토록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긴 힘들텐데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근사했다.
마침, 큰아이가 <샬롯의 거미줄>이란 동화를 읽고 있던 참이라 아이는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에, 집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동네수퍼 지붕 아래에
제비집이 있는 걸 아이들이 발견하게 되었다.
너댓마리 정도 되는 새끼들을 제비 엄마와 아빠가
날마다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걸, 나는 집안일을 하다 앞치마를 두른 채로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나가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먹이를 받아먹겠다고 필사적으로 입을 벌리는 아기 제비들과
1,2분 간격으로 어디서 그렇게 먹이를 물어오는지 쉬지않고 일하는 제비 부부,
먹자마자 똥을 싸는 새끼들은 신기하게도 똥을 쌀 때는 몸을 돌려
꼬리 부분을 둥지 밖으로 빼 둥지 안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걸 젤 신기해하며 지켜보았는데
동물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는
새들이 날기위해선 몸이 가벼워야 하니, 똥을 자주 싸는 거라 설명했고
둘째는 둥지 밑에 떨어진 제비똥을 보며
"어! 팝콘같네!"
하며 눈이 동그레졌다.
그렇게 듣고 보니, 정말 제비똥은 팝콘과 닮았다. 냄새는 전혀 다르지만^^
주택으로 이사온 뒤, 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하고
거미집이나 제비집이나 동물들이 자기가 살고 머물 곳을 그 작은 몸으로
스스로 만드는 모습에 자극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요즘 집과 연관된 놀이를 자주 한다.
이사짐에 썼던 상자들을 다시 분해해 붙이고 하면서 놀이집을 만들어 놀기도 하고
매일같이 보았던 제비집을 닮은 새집을 재활용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큰아이가 만든 새집을 보며
한 가지 참 놀랍고도 재밌는 게 있었는데
집 안에 시계를 만들어 단 것이다. 페트병 뚜껑에 숫자를 써서 붙인
단순한 형태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집안에 있는 물건과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집에는 시계가 참 많다. 디지털 시계는 거의 없고
바늘 두 개가 시각을 가르키는 크고 작은 아날로그 시계가 집안 곳곳에 놓여있다.
결혼 때나 집들이 때도 친구들이 뭐 필요하냐고 물으면, 시계!라고 답했던지라
그렇게 선물로 받은 시계들과 내가 좋아서 하나 둘 사 모은 시계까지.
아이들 친구들이 놀러와서도 가끔, 야.. 시계가 많네! 그러면
다섯 살 둘째는 이렇게 답한다.
응, 부엌에도 있어! ^^;
(새로 이사온 집 부엌은 손님에겐 잘 안보이는 구석에 있다)
나 혼자 좋아할 뿐 식구들에게 시계에 대해 별로 얘기한 적도 없는데
아이들에겐 별 의미없을 듯 놓여있는 집안의 물건이나 인테리어 분위기도
역시 환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엄마인 내가 만약 시계가 아닌 다른 무엇을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
놓았다면, 아이들은 아마 그걸 장나감 집에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주택에 와서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사면이 막혀있지 않고 트여있다는 점, 그래서 동서남북 각각의 방향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마당과 현관이 있는 집 '앞'이 있고
어두워지면 아이들이 가길 두려워하는 집 '뒤'가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소원했던 부엌으로 난 문과 창문이 있다는 것,
비가 오면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고
빗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할 일은 끊임없이 늘어나니 힘은 들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참 좋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설 즈음
동네 수퍼 지붕아래 둥지를 틀었던 제비집에는 더 이상 새끼들의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수퍼에 들릴 때마다 아이들은
"이젠 없네.."하며 비어있는 둥지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제비똥을 번갈아 보며 아쉬워 한다.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제비 부모의 짧은 육아기간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입장에서 보아 그렇지, 그들에겐 그리 짧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집이란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이상적으로 꿈꾸는 집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집의 크기와 형태도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집 밖의 모습보다 '집 안의 삶'이 아닐까 싶다.
이사 준비가 한창일 즈음, 틈틈이 읽었던 <소울 푸드>란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행복한 아이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판잣집에서도 행복하면 지구 전체가 행복한 거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판자집이든 대저택이든
아이들에겐 그 안의 삶이 행복한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큰 집과 풍부한 물질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저 손바닥만한 제비가족 집 안에 깃든
사랑과 행복만큼도 못 느끼고 살진 않는지.
주택으로 이사온 뒤 보낸 지난 100일동안은
이렇게 끊임없이 제비네 집과 비교&경쟁(?)하며 보내온 듯 하다.
오늘 글 제목은 <우리집 VS 제비집>으로 지을 걸 그랬나??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잘 키워 날려보낸 제비엄마처럼,
건강하고 튼실한 두 날개를 가진 아이들로 키워 세상에 내보낼 때까지
지금 이 집에서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보리라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