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짐을 한국으로 부쳤다. 보름간 다녀보니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최소한으로 필요한 옷가지 수를 가늠할 수 있어 짐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무게가 5킬로 이상 되면 10킬로까지 같은 요금이 적용되어 간신히 5킬로그램으로 맞추었다.
좌린과 408일 여행을 할 때 우리가 들고 다닌 가방의 무게는 합쳐서 40킬로 정도 되었다. 피할 수 없는 각자의 몫, 우리는 그것을 인생의 무게라고 불렀다. 오랜 시간 메고 걷다 보면 온몸이 뻐근하고 당장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서 차츰 비워 나가자고 마음을 먹지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몸이 조금 편해지고 가방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궁리를 하곤 했다.
그래도 내 몸이 감당할 만큼의 짐으로, 간소하게 일 년을 살아본 것은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리하고 욕심을 부리면 그만큼 더 고달파진다는 것을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으니!
살면서 무언가 더 갖고 싶은 욕망에 휩싸일 때, 이것저것 사 모으는 것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할 때 여행의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버리고 비우고 났을 때의 홀가분함,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떠올리면 어느새 마음이 꽉 차버리는 느낌이 든다.
용감해! 무슨 용기로 둘씩이나 낳아?
둘째가 태어났을 때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괜찮아, 어깨가 둘이잖아!
라고, 좌린이 대답하곤 했다.
친구들의 농담 섞인 걱정처럼 아이가 자라면서 돈이 많이 들지도 모르고 각박하고 불안한 세상에 아이를 둘이나 낳는 것은 모험일지도 모른다. 우리라고 똑 부러지게 근사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어서 이런 이야기에 뭐라 답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는데 어깨가 둘이라서 괜찮다는 좌린의 대답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양쪽 어깨에 올라탄 두 아이를 상상하니 우리의 여행 가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워낼 만큼 능력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두 어깨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과의 삶을 즐겨보겠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부모로서 나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한없이 주고 싶은 마음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의 짐을 꾸리면서도 내 것은 대충 챙겨도 아이들 짐은 꼼꼼하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빠짐없이 챙기려고 했다.
하지만, 내 두 어깨를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게 무리가 되는 상황이 결국에는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될 테니까.
그리고 아무리 꼼꼼하게 갖가지 상황을 고려해도 모든 일을 백 프로 예측하고 준비할 수는 없는 법.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우체국에서 짐을 부치고 나니 오전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극락사(極樂寺, 말레이식 영어 표기는 Kekloksi temple)에는 내일 갈까?
계획했던 일정을 내일로 미루자고 했더니
그래! 무리하는 무리(衆)가 무리(물의)를 일으키는 법이지!
좌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장난으로 좋다는 뜻을 밝혔다.
내가 아이들을 더 챙긴다는 이유로 좌린에게 짐을 많이 맡긴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조금 덜어내니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은 이 홀가분함을 그대로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아무 데나 발길 닿는 대로 가 보기로 했다. 조지타운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이 버스는 캣 CAT 셔틀이라고 부르는데 Central Area Transit의 약자로 수시로 내렸다가 탈 수도 있다. 그리고 공짜다.
버스에 앉아 있으면 여러 가지 언어가 들린다. 중국어, 말레이어, 영어...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이지만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쓰고 인도인들은 인도어, 영어를 쓴다. 역사적으로 인종 간의 분쟁이 있었고 급박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별문제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다만, 중국인은 중국인끼리, 말레이는 말레이끼리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처음 여행을 다닐 때는 말이 안 통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내 생각과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것을 떠올리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다를 뿐인데,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오해와 갈등의 싹이 자라날 것이다. 비슷한 얼굴에 같은 말을 하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균질한 우리 사회에서도 의견을 통합하는 과정이 참 힘든데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는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국론을 만들어나가는지, 이 나라의 정치가 궁금하다.
어울려 사는 경험이 오래되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상대방이 하는 말을 눈치 빠르게 잘 알아듣는다는 느낌이 든다. 언어만으로 소통할 수 없으니까 몸짓이나 상황을 주의 깊게 보고 판단하는 자세가 몸에 배지 않았을까.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주절주절 단어만 나열해도 말이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셔틀 안에서 내가 지도를 열심히 보고 있으니 옆에 앉은 중국계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창밖을 가리키며 여기는 어디다, 저것은 무슨 건물이다, 설명을 해준다. 나는 중국어를 모르고 할머니는 한국말, 영어를 못하지만, 할머니는 버스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궁금해하는 내 마음을 헤아렸고 우리는 장소, 건물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씨에씨에, 내가 아는 단어는 이 한 마디뿐이지만,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전달되었으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 무엇보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최선이라는 진리를 생각해 본다.
CAT 셔틀의 종점, 부두에 내렸다.
부두에서 얼떨결에 사람들 따라서 배를 탔다. 페낭 섬과 본토 버터워스를 연결하는 배다. 페낭 섬에 들어올 때는 버스 타고 페낭 대교를 건너와서 아이들은 섬에 왔다는 걸 잘 몰랐을 것이다.
이게 배야, 주차장이야??
페리에 차와 사람이 같이 타고 가는 것도 아이들에겐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가까운 거리라서 금방 육지에 닿았고 내리자마자 다시 그 배를 타고 돌아왔다.
다시 CAT 셔틀을 타고 차이나타운에 내렸다. 점심때가 지나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딤섬을 먹으러 갔는데 딤섬은 이미 다 팔렸단다.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열어 보통 딤섬은 오전에 다 나간다고. 한낮의 점심시간을 피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 식당의 유명세를 느낄 수 있었다. 안내책자에 소개된 대로 메뉴판도 없고 가족으로 보이는 식당의 일꾼들은 다들 바빠서 붙잡고 메뉴 설명을 들을 수도 없었다. 볶음밥, 볶음면이 시키기 만만하고 실패할 확률도 적지만, 맛집에 온 만큼 색다른 이곳의 음식을 먹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주문을 했다. 만둣국(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식당의 대표 음식이었다. 여기서는 완톤미라고 부른다.), 채소 볶음, 그리고 삶은 닭고기와 밥을 먹었다. 중국 음식인데 짜거나 느끼하지 않아 좋았다.
숙소에서 조금 쉬었다가 오후 늦게 다시 나왔다. CAT 셔틀을 타고 이번에는 식민지 시대 건물이 늘어선 콜로니얼 지역에 내렸다.
잔디 광장에서 축구공을 빌려 뛰어놀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식민지 시대에 유럽인들에 의해 지어진 요새와 대포를 구경하고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가족, 친구들끼리 놀러 나온 현지인들 틈에 섞여 우리도 사진 찍으며 산책을 했다.
와! 비눗방울이다!
역시, 아이들에겐 말이 안 통해도 ‘놀이’라는 묘약이 있었다. 이름을 묻고 제 이름을 밝히거나, 인사를 하는 절차 따위는 필요 없이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며 함께 어울려 놀았다.
바다 전망의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그러고도 모자라 놀이터에서 또 놀고
불빛 찬란한 건물을 지나
오빤, 강남 스타일~ 싸이의 노래를 들으며 세발 인력거를 타도 좋겠지만,
CAT 셔틀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가 땀에 흠뻑 젖어서 오자마자 샤워실로 달려갔다. 주씨 세 사람이 자발적으로, 순순히 샤워를 하겠다고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엄마, 우리가 집에 먼저 갈까? 우리 짐이 먼저 갈까?
우체국에서 짐을 배편으로 보냈더니 두어 달 걸린다는 말을 아루가 기억해내었다. 우리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배를 타고 또 다른 여행을 하고 있을 옷가지와 신발, 삼각대를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우체국에서 빨간 우체통을 발견한 아루는 엽서를 사서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엽서를 썼다. 할머니가 다른 나라 여행을 가시면 아루 해람 앞으로 엽서를 보내시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루는 어제, 오늘 한 일을 적었고 글을 모르는 해람이는 그림으로 엽서를 가득 채웠다. 아루와 해람이가 전하는 소식은 또 어떤 여행을 하여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닿게 될까?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과 우리, 우리가 보낸 짐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낸 엽서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보낸 짐 속에는 삼각대가 있었다. 무겁고 부피를 차지해서 처음부터 가져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네 식구 함께하는 여행에 가족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필요하겠다 싶어 들고왔는데 아무래도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라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잔디밭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삼각대가 없지만, 대신 카메라를 세울 난간을 발견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 버리고 비우는 연습, 여행의 미덕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리하여, 행사용 천막을 반사판 삼아 난간을 삼각대 삼아 찍은, 땀에 전 네 식구 가족사진.
근데 여긴 행사용 천막도 양파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