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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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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주기'가 아니라 '그냥 함께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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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와 이룸이.jpg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일곱 살, 네 살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지내는 나에게 사람들은 ‘아니, 그 긴 시간 동안 애랑 뭐하고 지내? 놀아주는 거 힘들지 않아?’ 묻는다.


대답부터 하자면 난 결코 잘 놀아주는 엄마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떻게 하면 애들이 날 찾지 않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종일 궁리하는 엄마다. 한 번 잡은 책을 엉덩이 떼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은 것이 엄마가 된 이후 내게 변함없는 소원이다. 책을 들면 모든 걸 다 잊는 나는 가끔 밥 차리는 것도 먹는 것도 귀찮게 느껴지는 그런 게으른 사람이다. 그런데도 결혼 이듬해에 엄마가 돼서 10년 동안 세 아이를 키워오는 내내 아이를 모두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으니 사람들은 분명 엄마가 정말 재미나게 해 주는 모양이라고 짐작들을 한다. 


물론 애들과 재미나게 놀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하루라는 긴 시간 동안 아주 짧게 잠깐잠깐 찾아오는 일이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대단해서 어른이 그 에너지에 맞추어 놀아준다면 한 시간은커녕 몇 십분 만으로도 쓰러지고 말 것이다. 딸들이라고 덜하지 않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린 그냥 함께 지낼 뿐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놀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주로 아이들을 맡기면서 키우는 동안 엄마들이 아이와 있는 시간은 간식을 챙겨주고 밥을 차려주거나 씻기는 등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이거나 텔레비전이나 게임을 틀어주는 등 아이들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하는 일이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종일 함께 지내는 주말에는 외출을 하거나 외식을 하는 등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이들도 늘 부모와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가 함께 있게 되면 특별한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방학이라도 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 


우린 그냥 같이 지낸다. 일어나면 밥 차려 먹고 내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은 저희끼리 논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체득한 것은 아이들은 같이 놀아주는 것도 좋지만 자기들의 놀이에 엄마가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으로는 집안일을 하면서 입으로는 아이들 놀이를 거들어 주는 일에 능하다. 빨래 널면서 카페 놀이하는 막내에게 주스를 주문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면서 옷 갈아입기 놀이하는 두 딸이 입고 나오는 옷들을 평가해 주는 역할을 하는 식이다. 집안일에 아이들을 열심히 끌어들이는 것도 요령이다. 호박전 부치면 밀가루 옷 입히는 것은 두 아이가 하고, 계란 장조림을 만들 때 삶은 계란 까는 것은 아이들 몫이다. 김치 담글 때 소금 뿌리고 맛 보는 것도 아이들은 좋아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늘 심심하다는 소리를 달고 산다. 내가 먼저 무얼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심심한 상태를 해결하는 것은 아이들 몫이다. 조르고 투정도 부리지만 결국은 스스로 다른 흥미를 찾아낸다. 그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심심해하는 것에 조바심내지 말고, 그 심심함을 반드시 어른이 채워주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와 진다면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육아는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부모와 자식이 같이 사는 일이다. 놀아주려고 애쓰기보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같이 지내는 일에 더 마음을 쏟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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