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화단을 만든 후, 두 아이는 1년에 2~3번 정도 놀러온다. 그것도 일부러 놀러오는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건물 1층에서 식사를 한 후에 애프터를 옥상에서 하면 오거나 혹은 엄마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 옥상에 있으면 올라온다. 지난 달, 딸의 입사 축하파티를 옥상에서 할 때에는 모두 함께 했다. 두 아이가 옥상에 올라오면 식물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꽃이나 식물의 성장과정에 대하여 질문하면 답변을 해줄 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그림자를 통하여 식물공부를 하고 있다.
» 아내가 옥상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하루에 한 번 옥상에 온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아내에게 ‘옥상 화단에 갈까?’라고 하면 설거지를 미룬 채, 대부분 동의한다. 거절할 수 없는 강력한 질문이란 ‘어제 사계국화가 꽃봉오리가 맺혔는데 오늘 꽃을 볼 것 같아’라는 상황 설명을 하면 급격한 동기부여가 되어 동의한다. 그리고 옥상에서 잠시 다양한 꽃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돌아간다. 아내에게 옥상이란 곧 생활의 활력소요, 힐링 장소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옥상의 지존, 메꽃도 볼 수가 있다.
» 옥상의 지존, 메꽃.
메꽃은 다년생 풀로서 동네 주변에 흙이 있는 곳이면 흔하게 보는 분홍색 꽃이다. 그런데 대부분 길을 가다가 이를 보고 ‘나팔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꽃이다. 메꽃의 어원은 메+꽃인데, 여기서 메란 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에 흔히 피는 꽃을 말한다. 메뚜기도 같은 어원이다. 메+뛰다이다. 즉, 산에 뛰어다니는 것이 메뚜기다. 옥상 화단에는 2그루의 메꽃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옥상 화단의 불사신이며 지존이다.
» 메꽃의 뿌리.
이 곳에서 3년째 화단을 가꾸고 있다. 4월이 되면 정원에 각종 모종을 땅에 골고루 심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 메꽃의 싹이 올라온다. 그러면 불청객이란 생각이 들어서 뽑아버린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면 또 다시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다시 뽑아버린다. 이제는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새싹이 올라온다. 이제 메꽃의 새싹을 잘라주는 일도 지겨워서 좀 더 커진 다음 일제히 뽑아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름이 지나면 다시 새싹이 올라온다. 그리고 8월, 9월까지 끊임없이 성장을 하며 여기저기 새싹이 올라온다. 메꽃에 대한 강한 생명력의 비밀은 작년에 풀렸다. 메꽃의 번식 방법은 씨앗으로 퍼지지만 땅속 줄기로도 퍼진다. 더구나 줄기가 마치 사람의 신경망과 같이 사방으로 뻗혀있으며, 그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고 강하다. 이는 곧 옥상 화단의 땅속에는 메꽃의 줄기가 점령했다는 의미이다.
사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대부분 식물보다 열등하다. 인간이 우위에 있는 한가지는 식물보다 인간이 이동이 더 자유롭다는 점이다. 종족을 번식하는 방법도 식물이 매우 우위에 있다. 기본적으로 뿌리와 꽃에서 2중으로 번식을 하는 식물이 매우 많으며 그 씨앗이 무려 수백, 수천개에 이른다. 하지만 인간은 많이 낳아야 쌍둥이다.
독립에 대해서도 식물은 우위에 있다. 인간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20년을 부모가 키워도 독립을 시키기가 어렵다. 그런데 식물이 꽃을 핀 후에 씨앗이 생기면 땅에 떨어트리거나 날려보내면 된다. 민들레의 경우, 씨앗을 풍선처럼 날리는 경우도 있고, 또는 동물이나 곤충의 몸에 붙어서 멀리 퍼트리는 종류도 있다. 물론 그럴 경우, 씨앗은 그저 땅속에 머리를 박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면 그 다음해에 새싹이 난다. 때론 씨앗을 몇 년, 혹은 몇 십년을 보관 후에 심어도 새싹이 돋아난다.
» 채송화.
또한 생명력에 있어서도 인간은 식물과 비교의 대상조차 되기가 어렵다. 채송화의 경우, 줄기 하나를 잘라도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땅에 그것을 심으면 대부분 뿌리가 난다. 포도나무나 칡의 경우, 땅에 줄기가 닿으면 휘묻이로 번식을 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나무의 밑동을 잘라내면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이렇게 식물이 인간보다 생명력과 종족의 번식이 강한 이유는 진화의 역사에 있다.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수 백 만년이지만 식물의 경우, 수 억 년의 역사를 가진다. 이는 그만큼 종족 보존에 대한 진화를 거듭했다는 이야기다. 메꽃이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진화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메꽃은 옥상 화단의 지존이다.
» 코스모스.
또한 식물이 위대한 이유는 환경에 대한 강한 적응력이다. 작년에 코스모스의 모종을 두 곳에 심었다. 하나는 옥상에 심었고, 남은 것은 아파트 빈 공터에도 심었다. 그런데 옥상에서는 물을 매일 주었더니 성장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래서 좀 더 큰 화분으로 3번이나 옮겨주었고, 나중에는 그 키가 무려 3미터에 이르러서 나무와 같았다. 하지만 빈 공터에 심은 코스모스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우선 땅이 척박했으며 일조량과 수분의 공급이 적었기에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자 그 키가 30센티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작은 줄기에서 50원짜리 크기의 꽃을 피웠다. 식물에게는 키가 크나 작으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종족번식에 대한 강한 본능이 있다는 점이다.
» 해바라기.
또한 대부분의 식물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다. 과꽃도 동일한 화분에 10개를 함께 심으면 그 키가 작았으며 꽃의 크기도 작았다. 하지만 2~3개를 심으면 키도 크고 꽃의 크기도 컸다. 해바라기도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한 화분에 해바라기 1분을 크게 길렀더니 덩치만 크고 꽃이 피는 기간이 짧았다. 그래서 올해는 10분을 심었더니 키는 작았지만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피었다. 때론 화단에 심은 이름도 모르는 식물이 줄기가 나자마자 꽃이 피는 경우도 목격했다. 모든 식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종족보존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 원추리.
» 백합.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화려한 화단의 이면에는 봄부터 전염병이 창궐했다. 바로 진딧물이 주범이었다. 해바라기, 과꽃, 원추리, 백합 등에서 다수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주로 새싹에 달라붙는다. 그 결과 한 번 달라붙기 시작하면 성장을 멈추고 결국 꽃이 필 수가 없다. 주로 막 나온 여린 새싹을 먹기 때문에 새순이 돋지를 못하며 꽃대를 보기는 더욱 힘들다. 결국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모종을 심을 때에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기에 생긴 불상사였다. 그렇다고 이제 강력한 농약을 쓸 수도 없었다. 이미 어린 방아깨비와 사마귀, 무당벌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 아내는 천연 진딧물 약을 매일 부분적으로 스프레이를 하거나 혹은 붓으로 발라주고 있다. 그런데 메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딧물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잎들이 거의 깨끗하다. 이미 메꽃의 유전자속에는 진딧물을 이겨내는 면역력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메꽃이 화단의 지존이 되기 위하여 선택한 전략은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 즉 줄기를 통한 번식을 통하여 땅속을 점령했다. 메꽃은 지금도 아침이면 꽃이 피고 있으며, 내일도 필 것이며 내년에도 필 것이다. 그렇다고 메꽃은 자신이 정원의 지존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생명력을 믿으며 충실할 뿐이다.
» 옥상화분에 피어난 꽃. 칸나.
» 옥상화분에 피어난 꽃. 벌개미취.
» 옥상화분에 피어난 꽃. 버베나.
» 옥상화분에 피어난 꽃. 풀죽협도.
» 옥상 정원에 피어난 꽃. 마가렛과 개양귀비.
» 옥상 정원에 피어난 꽃. 톱플.
» 옥상 정원에 피어난 꽃. 도자지꽃.
» 옥상 정원에 피어난 꽃. 삼색패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