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사진 pixabay.com
국제학회에서 젊은 교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하더라도 한참 생각을 해야 하는 나와는 달리 어떤 표현에 있어서나 거침이 없다. 만찬 때 프리토킹을 잘하는 주니어 교수에게 영어를 잘하는 비결이 무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교수의 대답은 그냥 열심히 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있을 것 아닌가? 꼬치꼬치 묻는 가운데 들은 이야기는 자기는 미국 의학드라마를 자주 본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미국드라마는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해서 미국영화를 꽤 많이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영화로 영어 공부하는 것이 한참 인기가 있는 시기였고 나도 이 조류에 적극 동참해서 영화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시기였다. 미국에 연수갔을 때도 케이블TV나 극장에서 자막 없이 영화를 끊임없이 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화비디오테이프를 사서 영어공부를 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면서 말을 익히려고 노력을 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화는 내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높았다.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DVD는 상급자용 공부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를 보더라도 50%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로 공부할 자격이 아직 안된 것이다. 약간 쉽기는 하지만 미국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드라마는 영화보다는 발음도 정확하고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내용파악도 잘되었지만 정확히 이해되는 대상가 50%를 넘지 못하였다. 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하면 도전의식도 생기고 영어를 익히는데 도움을 주지만 수준이 너무 높으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 영화를 좋아한 덕분에 영화로 영어공부를 시도했지만 내 수준에 너무 높아 효율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 사진 pixabay.com/
실생활에서 접하는 영어 중에서 가장 쉬운 수준의 영어는 각종 중고 교과서 테이프일 것이다. 그 단계를 지나면 초, 중급자용 오디오 북이 들린다. 미국방송 프로그램 중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다큐멘터리가 가장 익히기 쉽고 그 다음이 AFKN 뉴스와 같은 뉴스류이다. 뉴스류는 사실에 기반이 되고 실생활의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보다는 쉽다. 뉴스를 잘 알아듣는 아이라면 토크쇼를 시청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미국드라마이고 영화는 이해하는 데는 최고 수준의 영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영화를 꾸준히 보다 보면 어느 날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마술처럼 귀가 뚫리지는 않았다. 뚫린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골고루 한 사람에 비해 더 늦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법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주로 영화DVD를 도구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아이가 영어영재여서 영화DVD로 공부해도 실력이 향상된다면 모르지만 이런 방식의 영어공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킬 때 선택한 것이 영어 전래동요인 <마더구스(Mother Goose)>와 <위씽투게더(Wee Sing Together)>였다. 우리말처럼 영어에 친숙해지려면 우선 영어 동요룰 틈틈이 들려주어 흥미를 주자 생각했다. <마더구스>는 더욱이 영어권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엄마의 목소리로 듣고 부르는 동요여서 쉽고 리듬감이 있다. <마더구스>는 우리나라 정서와도 다르고 고어도 많을 뿐 아니라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잔인하고 건전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어 찬반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래의 배경이나 어른한테도 어려운 고어의 뜻을 처음부터 다 알지 못해도 된다. 처음에는 그저 영어 소리를 즐기고 라임을 느끼며 영어 감각을 신나게 몸으로 흡수하면 되는 것이다.
[영어거부증이 있을 때 DVD이용법]
아이에게 디즈니명작만화비디오나 세사미스트리트 비디오를 보여준 것도 <마더구스>를 들려주는 것으로 영어를 시작한 이유와 똑같다. 아이에게 친숙한 내용과 캐릭터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져 있어서 신나게 영어감각을 익힐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한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36개월 이후에 영어를 시작하려 할 때는 심한 영어 거부증을 보였다. 너무 잘하고 익숙한 우리말 탓에 더 영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디즈니명작만화와 세서미스트리트의 재미에 빠지면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서서히 없어졌다. 오히려 그림책을 통하여 익혀온 막강한 우리말 덕택에 영어의 이해력 또한 높았다.
» 세사미스트리트. 한겨레 자료 사진.
첫째, 재미가 우선이다.
영어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어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를 욱박지르거나 배운 것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공부로 느끼게 하면 아이는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부모가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 많은 양의 영어 노출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천천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전이 있을 것이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은 초등학교 때나 되어야 생긴다.
둘째, 모국어에 소홀하지 마라.
영어는 엄마가 하루 종일 사용하기 어렵고 간접적으로 영어그림책이나 DVD를 통해 노출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절대 모국어처럼 급격하게 늘지 않는다. 더구나 모국어는 내팽개친 채 영어만 열심히 노출시킨다면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도 조금만 어려운 개념이 나오거나 추상적인 단어가 나오면 금방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모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영어 교육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셋째, 영어그림책을 이용하라.
엄마가 했던 말이 영어그림책에 나오고, 영어그림책에 나온 말을 엄마가 하고, 아까 영어그림책에서 본 말인데 DVD에서 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영어를 나름대로 차곡차곡 저장한다. DVD를 통하여 원어민들의 실제 대화나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고 그림책을 통하여 다시 확인되면서 영어에 대한 감이 잡히고 말문도 열린다.
넷째, 같은 DVD를 반복해서 보아라.
유아기 아이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똑같은 DVD도 자꾸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도 영어그림책이나 DVD에 자기가 아는 말이 나오면 훨씬 편하게 여긴다.
다섯째, 캐릭터를 이용하라.
아이들은 자라는 시기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꼭 있기 마련인데, 그 캐릭터를 잘 활용하면 영어를 익히기 쉽다. 아이들은 같은 DVD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뽀로로나 또봇, 엘사가 등장하는 DVD는 집중해서 본다. 아이가 어릴 때 캐릭터에 열광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도 있지만 연령이 올라갈수록 이런 현상은 점점 줄어든다. 그저 적절하게 아이의 흥미를 이어갈 수 있고 영어를 더 재미있게 배우는 계기로 삼자.
여섯째, 무섭거나 싫어하는 장면이 있는 DVD는 피하라.
유아용 DVD라고 하더라도 무섭거나 공포를 조장하는 장면이 나오는 DVD는 선택할 때 신중하여야 한다. 아이들 중에는 조금 무서운 장면에서는 도망을 가거나 아예 안 보려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운 장면 때문에 그 DVD뿐 아니라 영어DVD보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