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질러, 운동장
진형민 글, 이한솔 그림/창비(2015)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는 이제 체육 수업이 없다는 거였다. 한데 대학에 갔더니 교양체육 수업이 있어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는 했다 하면 꼴찌였고, 매달리기는 매달리자마자 떨어졌고, 배구나 피구에도 재주가 없었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뻣뻣한 막대기가 바로 나였다.
그런데도 좋아한 스포츠가 있었다. 야구다. 유준재의 그림책 <마이볼>에 등장하는 꼬마 소년처럼 아버지를 따라 야구팬이 되었다. 나의 십대 시절을 수놓은 고교 야구에 얽힌 추억들이 꽤 있다. 지금도 가끔 텔레비전에서 류중일 감독처럼 왕년의 고교야구 스타를 볼 때면 회한에 젖는다. “옛날에는 진짜 꽃미남이었는데….”
<소리 질러, 운동장>은 야구를 금지당한 아이들이 야구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동화다. 일단 야구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반은 접고 들어갔다. 천재 야구 소녀 공희주의 말처럼 “야구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냐” 말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야구부에서 쫓겨난 전 초등학교 야구 선수 김동해와 여자라서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는 공희주가 운동장에서 만나며 시작된다. 비록 후보지만 야구부원이었던 김동해는 거짓말을 못하는 예의바른 소년이다. 학교대항 경기에서 김동해 학교의 선수가 홈에서 아웃을 당했다. 하필 코앞에서 그 광경을 본 김동해는 심판의 아웃 판정이 맞다고 이야기했고, 다음날부터 야구부에 못 가게 되었다. 공희주는 아기 때부터 공을 좋아한, 어깨가 딱 벌어진 소녀다. 하지만 야구부는 남탕이라 여자는 못 들어간다는 감독님 말씀에 풀이 죽어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다 김동해를 딱 만났다.
심심한 두 사람은 ‘막 야구부’를 만들기로 한다. 도구도 없이 야구모자와 맨주먹으로 매일 편 갈라 막 야구하고 논다. 누구나 환영이다. 한편 운동장 한쪽에서 막 야구부가 재미나게 놀자 야구부 감독님은 심기가 불편해진다. 운동장은 야구부가 연습하는 곳이라며 사용을 금지하려 든다. 좀 시끄럽고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야구부 대 막 야구부는 운동장을 두고 한판 경기를 벌인다. 이기는 사람이 운동장 먹기다.
이 책은 야구를 빌려 아이들의 놀 권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간 동화지만 정작 야구를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어른들이 금지를 해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논다. 막 야구부처럼 그냥 막 놀면서, 규칙도 만들고, 싸우고, 해결책도 찾아간다. 공희주로 대표되는 막 야구부 아이들과 감독님과의 신경전은 운동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어른의 대결처럼 읽힌다. 하지만 결국 해결은 아이들의 몫이다. 어른들처럼 치사한 이유를 대며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승패를 인정한다. 그리고 승자는 패자를 품을 줄 안다. 운동장 내기 야구 경기를 한 후 서로에게 “잘 배웠습니다”라고 인사하듯,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운다. 초등3~4학년용.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