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난 뒤 가장 감동받았던 건 첫해를 마치고 겨울방학 들어가던 날에 받은, 1년간의 학교생활에 대한 리포트를 본 순간이었다. 아이가 웃고 있는 사진이 인쇄된 겉표지에는 ‘2012년 ○○의 학교 이야기’ 제목이 붙어 있었다.
표지에 이어서 총 A4 일곱 장의 빽빽한 글 속에는 1년 동안 내 아이가 배우고 겪고 생활했던 학교생활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매일매일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각 교과 시간에는 어떤 것을 배우고 아이는 그 배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가르치며 1년을 함께 생활한 담임선생님이 정성스럽게 적어 주셨다. 1년에 대한 평가서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단순한 평가서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방학할 때 통지표가 나오고 그 통지표에 교과 성적과 출결상황, 간단한 담임의 총평 등이 실려 있었는데 통지표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내 학창 시절의 통지표란 늘 ‘나’라는 인간이 간략한 숫자와 몇 줄의 글로 압축되어 평가되는 두렵고 불편한 것이었다. 내 아이가 다녔던 혁신학교에서는 ‘생활 통지표’라는 이름으로 ‘교과학습발달상황’과 ‘출결상황’, ‘수상경력’, ‘창의적 체험 활동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 의견’ 순서로 한 학생의 한 학기를 간략히 정리해서 적은 평가서를 나누어 주곤 했다. 내 학생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도 참 대단히 상세한 것이어서 학교가 많이 달라졌구나 싶었는데 대안학교에서 받은 평가서는 놀라움을 넘어선 감동이 있었다.
출결상황이니 수상내역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는 대안학교의 평가서는 무엇보다 한 아이가 1년간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 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하루의 리듬에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교과마다 어떤 특성을 나타냈는지, 독특한 버릇과 습관들은 어떤 것인지, 각 교과 영역에서 어떤 것을 즐거워하고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런 모습에 대한 교사의 느낌과 생각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읽다 보면 아이의 학교생활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부모가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학교에서 친구·교사들과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고 변화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편안한 집에서 행동하는 것과 공동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행동이 같을 리도 없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잦은 봉사활동과 학부모 모임 등으로 학교를 자주 드나들게 되고, 교사들과도 아무 때나 내 아이에 대해 궁금하고 염려되는 것을 나눌 수 있긴 하다.
그러나 1년의 학교생활을 마친 후에 받게 되는 평가서에는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까지도 생생하게 나와 있어 감동이 한층 더 커진다. 아이마다 이렇게 자세하고 정성스런 평가서를 작성하려면 교사들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아이의 생활과 모습을 지켜봐야 할까…. 진심으로 애정을 품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작은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펴준 마음을 읽다 보면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얼마나 큰 사랑과 돌봄을 받고 있는지 가슴 뜨겁게 느끼게 된다.
평가서를 받는 아이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의 1년 생활이 담겨 있는 리포트를 받고, 킥킥거리며 읽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들은 진지하게 읽고 가슴에 새기기도 한다. 이런 리포트들은 두고두고 아이가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 성장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은 물론이다.
타인과 비교되지 않고, 성적이나 등수처럼 눈에 보이는 성취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1년이 시작되었을 때의 내 모습과, 1년을 마칠 때의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는 평가서, 기쁘게 받아서 오래오래 간직하며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그런 평가서… 2013년 12월이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