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는 놀이기구 말고도 눈여겨보면 소소한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쓰레기통도 있고 물을 마시고 씻을 수 있는 곳도 있고 안내판들도 있다. 따로 쓰레기통을 두지 않거나 씻을 곳이 없는 놀이터도 있긴 하지만 안내판은 어디든지 있다. 놀이터에서 어떤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놀이터 한쪽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안내판도 음수대도 쓰레기통도 아닌, 자그마한 놀이상자(놀이함)인 ‘플레이 박스’(play box)다.
![놀이터.jpg 놀이터.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477/482/%EB%86%80%EC%9D%B4%ED%84%B0.jpg)
이런 놀이함이 놀이터에 왜 필요할까.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저런 놀이를 할 때 필요한 놀잇감들을 지니고 다니기 사실상 어렵다. 시간이 없고 함께 놀 친구가 없어 놀이터는 휑하기 일쑤다. 놀이상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요긴하다. 다른 나라의 놀이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놀이상자 안에는 소꿉놀이 도구 등 놀잇감들이 먼저 자리잡고 있다. 고양이나 개의 배설물을 막기 위한 망이나 천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아주 최소한의 구급약이 있을 수도 있다. 밴드와 소독약 정도 수준이다.
우리나라 공공놀이터의 전반적인 상황에 맞게 땅에 금 그을 때 쓰는 분필, 나무 재질의 비석, 공깃돌, 작은 공, 고무줄 등등이 함께 갖춰지면 더 좋겠다.
지난해에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청소년문화의집에서 4개 공원에 ‘모냐놀이함’을 설치해 운영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조금 주춤한 상황이다. 관리의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놀이함을 설치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문제는 주민의 합의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큰 장애는 분실과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놀이상자를 공공놀이터에 설치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놀이상자를 어지럽힐 것이며 안에 있는 내용물을 가져갈 것이라고 미리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런 놀이상자와 그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놀잇감들을 놀이터에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이용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공공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릴 지혜를 찾으면 된다.
놀이상자의 설치는 어린이와 시민에 대한 신뢰의 첫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최근 유니세프 등이 여러 의견을 모아 놀이상자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보라매공원에서 공개했다. 올해 몇 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놀이터에서 놀이상자를 만나면 내 살림처럼 아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