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북 안동에 살지만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가 최근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어렸을 때 갔던 횟수보다 더 많이 드나들었다. 지난 1일에서 9일까지 10개가 넘는 주제로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가 대공원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서울에 사는 아이들에게 대공원은 그 자체로 훌륭한 놀이터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섰고, 부동산 투기가 판치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대공원처럼 아이들을 위한 너른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대공원에서 내건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란 표어는 과장만은 아니었다.
어린이 대상 놀이 관련 행사들이 전국적으로 심심치 않게 열린다. 나도 오가며 들러보는데 ‘어린이’와 ‘놀이’를 일시적으로 버무려 놓은 이벤트로 끝나는 일을 자주 목격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하루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반나절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9일 동안 놀이터를 꾸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기획된 놀이터’의 한계는 존재한다. ‘기획’과 ‘놀이’는 철학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그 틈을 좁힐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충분한 시간’이다. 9일은 그런 의미에서 넉넉한 대공원의 놀이 품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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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관련 행사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상화하면서 호객 행위를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놀이는 남이 하자고 하거나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명제가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이번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는 놀이 기간 9일 이전에도 여러 층위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 무엇을 하고 놀고 싶은지, 어떻게 놀고 싶은지, 사전 작업이 여러 날 있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놀이판을 짜고 고민했고 그런 활동들을 토대로 놀이터가 운영되었다. 아이들이 놀 수 없는 현실을 탓하기에 앞서 어떻게 놀지에 대한 참신한 방법론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공원에는 참 기막히게 좋은 장소도 많은데 모든 놀이터를 대공원 입구 가까운 곳에 펼쳐놓은 것은 행사 참여 인원에 대한 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놀이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마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횟수를 되풀이하며 풀어갈 수 있는 문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놀이터’로 확장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어느 한 시즌 대공원에서 가장 큰 놀이터를 펼치는 것보다 대공원에 가면 놀이터가 있는 연중 이어가는 놀이터, 다시 말해 ‘가장 긴 놀이터’를 상상하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