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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구 중 1가구는 반려동물 키워
이별 첫 경험 아이들 충격은 더 커
극도의 스트레스 겪는 ‘펫로스 증후군’
심하면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증까지
충분한 애도 기간 갖고
슬프면 슬프다고 할 수 있게
“별것 아닌 일로 왜 우니?”라거나
“다른 강아지 사줄게”라고 하면 최악
다른 말로 속이는 것도 큰 상처
같이 슬퍼하고 기억 나누고
편지·그림·장례 등 이별의식 효과적
이별과 슬픔 이겨내는 기회 될수도
“아비야, 우리는 아직도 널 찾고 있어. 어디 있니….”
김혜경(가명·28)씨는 최근 7살 딸이 쓴 편지를 보면서 난감했다. 김씨는 지난 9월 열 달 동안 함께 지내던 고양이를 내보냈다. “맞벌이인데다 임신하면서 입덧이 심해져 고양이를 보살펴줄 시간이 부족했다. 또 딸이 아토피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고양이의 털 날림이 심해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 김씨는 딸이 직접 이별을 경험하면 힘들 것 같아 딸 몰래 고양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 딸에게는 “아비를 우리보다 더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다른 사람에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딸은 한 시간 넘게 엉엉 울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딸은 밤마다 아비에게 편지를 쓴다. 아비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고양이 그림도 자주 그린다. 딸을 볼 때마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며 딸에게 눈치를 줬다. “가끔 딸이 인형을 보고 ‘아비’가 돌아온 줄 알았다고 할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에요. 이렇게까지 아이가 슬퍼할 줄 몰랐어요.” 김씨는 “딸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못 잊는 딸 보며 심장 ‘쿵’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5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 비중이 21.8%로 나타났다. 다섯 가구 가운데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반려동물과 계속 같이 살면 좋겠지만, 김씨처럼 불가피하게 이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키우던 개나 고양이와 외출했다가 잃어버릴 수 있고, 늙어서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 감정 조절을 할 줄 아는 어른들도 슬프고 힘들다. 아직 이별이나 상실, 친숙한 사람이나 동물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어린아이가 반려동물과 이별한 경우,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 이유다.
반려동물을 잃은 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를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 증상까지 나타난다. 동물 관련 책을 전문으로 출판해온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는 “우리나라 문화가 어른조차도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슬픔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갖지 못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슬픔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왜 같은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일까?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감정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면 아이는 ‘내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다. 또 ‘우리 부모는 내 진심을 이해해주지 못하는구나’라는 마음 때문에 자칫 부모와 아이 관계가 망가질 수 있다.
![강아지와아이줄여서.jpg 강아지와아이줄여서.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661/484/%EA%B0%95%EC%95%84%EC%A7%80%EC%99%80%EC%95%84%EC%9D%B4%EC%A4%84%EC%97%AC%EC%84%9C.jpg)
그 일 겪고 40년 동안 울지 않아
자기가 사랑하던 동물을 잃어버린 뒤 그 충격으로 40년 동안이나 울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애도의 5단계 이론(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을 제시한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매일 먹이를 주고 사랑으로 키웠던 토끼를 아버지가 잡아먹는 것을 어릴 때 목격했다. 이후 그녀는 “블랙키(키우던 토끼 이름)를 위해 또는 다른 어떤 이를 위해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40년 동안 슬픔을 표현하지 않던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그 대가를 치른다. 엘리자베스는 엉뚱한 대상에게 분노를 폭발한 뒤 대성통곡을 하며 울게 되는데, 그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토끼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울부짖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슬퍼하지 않고 지나갔던 모든 상실 때문에 힘들어해야 했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애도의 5단계 이론을 완성했다.
정신분석 경험과 심리학적 치료를 토대로 심리치유 에세이를 써온 김형경 작가는 그의 저서 <좋은 이별>에서 “상실이나 결핍이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면, 애도는 그 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결책이다”라고 말한다. 반려동물과 이별하고 아이가 슬퍼하면 부모는 아이가 애도 과정을 충분히 겪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별것 아닌 일로 왜 우니?”, “그만 울어. 계속 울면 너도 다른 집에 보내버린다”, “괜찮아질거야”라는 식으로 아이 감정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아이의 감정을 처벌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김보경 대표는 “아이들은 부모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보고 배운다”며 “부모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으며, 아이와 함께 이별한 반려동물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또 반려동물의 관련 물품을 모아 상자에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상자는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윤경 교수는 슬픔 표현, 위로와 설명, 이별 의식과 같은 행동 취하기라는 3단계 슬픔 극복 방법을 제시한다. 아이가 울면 안아주면서 “네가 느끼는 그 마음이 당연하다”고 위로하고, 이별한 반려동물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 동물의 그림을 함께 그리거나 장례식을 치르는 등 적절한 이별 의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의외로 아이들은 강해
아이를 달래려다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에게 “엄마가 다른 강아지 사줄게”, “엄마가 네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 사줄 테니 그만 슬퍼해”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건 ‘최악’이다. 이런 말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는 말이며, 이별한 반려동물을 언제나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라고 여기는 행위다.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
아이들이 슬퍼하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하는 것도 어른들이 쉽게 저지르는 잘못 가운데 하나다. 반려동물이 병들어 죽었는데 “아빠 친구한테 보냈어. 우리 집에서보다 훨씬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다. 아이가 나중에 부모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언제나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다. 부모는 일반적으로 아이가 슬픔이나 아픔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강하다. 정 교수는 “살아가면서 아이들은 슬픔이나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통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아가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