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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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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중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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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

올 일본 아이들의 여름방학 기간이다.

각 지역 학교마다 유치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초등학교는 대부분 7월20일 전후에 시작해서 9월2일에야 개학을 한다.

이렇게 긴 기간 탓에 해마다 나는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 했다.

함께 모여 놀 친구들과도 미리 대충 약속과 일정을 잡아두고

가족끼리 떠나는 여행지 숙박예약이나 필요한 준비물들도 미리, 즐겁게 준비하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올 여름은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일본의 여름은 늘 더웠지만, 올해는 7월초부터 심하게 더웠고 요즘도 34,35도를 오르내리는데

오늘 저녁뉴스에 분지 지역은 40도를 기록했다 한다.

잠자는 밤조차도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할 여유가 없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매년 늘 하던대로 하고 지내는데

바깥 나들이나 휴가 계획은 정말 제로에 가까웠다.

방학전에 미리 연락을 해왔던 친구들과 가끔 모여 놀기도 했지만

이 긴 기간동안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이

가끔 밀려오곤 하는데, 아이들과 그리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보내자 하면서도 40일이 넘는 방학은 길어도 너무 길다.

 

그래!  억지로 새로운 곳, 잘 모르는 곳을 찾아헤매는 것보다

엄마 경력 11년 동안 아이들과 다닌 곳 중에서 좋았던 곳들을

마음가는 대로, 가고 싶을 때 그냥  가보자 싶었다.

남편이 출근한 평일 어느날은 점심 때까지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아이들에게 갑자기

"우리 바다보러 갈까?"

그러고는 샌달 신고 가방 하나만 대충 들고는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바다로 가는

전철을 탔다. 역에서 샌드위치와 주먹밥, 음료수를 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여행기분이 나는지 들떠 있었다.

 

 DSCN1877.JPG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바다는 작정하고 보러가는 곳이 아니었다.

저녁이든 밤이든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바다를 만날 수 있었고

바다는 늘 그렇게 우리 가까이 있었다.

꼭 바닷물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흥분되고 설레임도 없이, 느슨함 그 자체로 바다를 보러 가는 엄마 덕에

아이들은 바닷물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땅만 보고 사는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기분을 오랫만에 느끼는 듯 했다.

 

이날 우리가 간 바닷가에는 유명한 수족관이 있는데

큰아이가 어렸을 적에 1년간 회원증을 끊어 지겨울만큼 다녔던 곳이다.

큰애는 기억을 잘 하고 있지만 둘째에겐 이곳이 처음이었고

한참 뭐든 신기하고 재밌는 5살 아이 덕분에 누나와 엄마도 익숙한 수족관을 다시 새롭게 경험했다.

 

DSCN1871.JPG

 

돌고래 점프 쇼가 유명한 이곳.

생기가 넘치는 젊은 조련사들과 돌고래들의 활력이 잘 어울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DSCN1874.JPG

 

 

여름이면 더 바빠지는 남편의 짧은 휴가도 역시. 잠깐의 고민도 없이

해마다 가던 복숭아/포도 농장으로.    복잡한 여행준비할 정신적인 여유도 체력도 없는

남편과 나는 떠나는 날 아침, 간단하기 그지없는 가방을 싸며

야.. 진짜 이렇게 여행준비를 편하게 하다니.. 하며 웃었다.

갑자기 시간이 많이 주어졌을 때 얼른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너무 익숙하지만, 그 안정감있는 설레임이 또 좋았다.

 

 

DSCN1916.JPG

 

이제 다 알고 즐기는 첫째에 비해

둘째는 보는 것, 하는 것 모두가 신기하고 흥분되는 다섯 살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 한 송이 따고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너의 누나가 너만했을 때  똑같은 얼굴을 했단다.

 

DSCN1920.JPG

 

매년 그렇듯이 과일농장에서 과일도 실컷 먹고 쥬스와 와인도 구경하며 고르고

할머니댁에 보내드릴 선물도 사고

복숭아잼도 얻고 오이나 가지같은 채소도 얻고 ..

그 다음 간 곳은 온천이 딸린 호텔.   이곳의 정원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해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물고기 밥 주는 것도 늘 정해진 코스다. 모든 게 너무 변함이 없어

1년 전이 아니라 며칠 전에 다녀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날씨가 너무 무더워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니 정말 살 것 같았다.

 

 

DSCN1899.JPG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이 잠든 밤.

여행길에서 사온 맥주와 문어 과자를 앞에 두고 있자니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44일 방학의 꼭 절반이 지났다.

학원을 다니지않는 11살, 5살 두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면서

평소에는 좀 감출 수 있었던 나의 '나쁜 엄마'모습이 아이들 앞에 시도때도 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혼자 뜨끔할 때가 많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길..게 함께 하는 시간들이

아이들 사춘기 즈음의 소통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겠지..?

그나저나 내일은 하루 세끼 또 뭘 해먹나?!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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