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아이가 “우리집에서 나만 둘째야”라며 퉁퉁거렸을 때 “아, 정말 그러네” 하며 같이 웃었던 적이 있다. 오빠에게 더 먼저, 더 많은 사랑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예민한 구석이 있는 아이라 그냥 지나쳐지진 않았다.
내 바로 아래 동생도 둘째라서 불만이 많았다. 자긴 뭘 하나 하고 싶어도 언니인 내가 항상 먼저 경험하고 난 뒤의 결과에 따라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안 좋아’가 결정되어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내가 첫째라서 큰애한테 더 사랑을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큰애의 마음이 더 쉽게 짐작이 되어 살펴봐준 적은 많았을 것 같다. 어쩌면 내 내면의 아이를 큰애에게서 보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 4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태어나 집에 왔을 때 큰애는 갓 태어난 동생을 보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잠자리 위치를 내주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큰애는 동생의 것을 심술궂게 뺏은 적도 없지만 자기가 먼저 갖거나 선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정말 나나 남편이나 큰애한테 양보의 미덕을 강요해본 적이 없다. 도리어 “너 먼저 해도 돼. 네가 원하는 거면 동생 신경쓰지 말고 선택해도 돼”라고 하는 편이다.
사실 나도 자랄 때 우리집 큰애처럼 내 마음껏 행동하고 요구하지 못했다. 함께 자란 동생들은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동생들에겐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항상 먼저 받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자기가 원하는 걸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누가 뭐라 그러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양보나 포기를 하곤 했다. 첫째 아이로서 받는 기대 등이 특별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꽤 무거운 그림자이기도 했다. 인정과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충분히 제대로 누려보질 못했다. 요즘 아이들 말로 나대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 안에 인정욕구나 성취욕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아마도 나는 큰아이로서 더 의젓하게 행동하도록 은연중에 요구받았을 거다. 상담을 전공하면서 내 유아기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알아서 말 잘 듣고, 제대로 떼도 못 부려본 어린 내가 떠올라 참 짠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출생순위가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가운데 아이, 막내 아이, 외동의 심리적 환경이 다르고 다른 성격 특성들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첫째 아이는 부모의 온전한 사랑과 관심 속에 크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폐위된 왕과 비슷한 처지가 되기 때문에, 질투와 경쟁의 과정에서 그 전과는 다른 의젓함, 성실함, 책임감이 더 발달하기 쉽다고 한다. 우리집 큰애나 내 모습에서도 그런 면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획일적인 단정은 피해야 한다. 이런 학문적 연구는 많은 첫째 아이들의 속내를 짐작하는 데 유용한 하나의 틀로 보면 좋겠다. 중요한 건 아이 각자의 기질과 환경적 영향을 살피는 일이다. 이 둘의 상호작용은 아이 고유의 존재를 만들어낸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양육환경인 부모가 은연중에 큰애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자극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봐야겠다.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