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 어린이놀이터의 큰 스폰서는 시 프로그램(C Program)이라는 사기업의 벤처 기부 펀드다. 어린이 놀이, 놀이터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어린이 문화·예술 분야 단체들도 이 펀드에 관심을 가진다. 시 프로그램은 넉넉한 돈을 바탕으로 이 영역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들은 이렇게 공공성과 상업주의의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그들이 보자고 했고 내게 놀이터에 관한 연구도 제안했다. 나는 자금 출처에 관해 물었다. 들어 보니 요즘 세간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넥슨의 김정주를 비롯해, 엔씨소프트 김택진, 네이버 이해진, 다음카카오 김범수, 다음 이재웅 등등 이른바 정보통신(IT) 1세대가 출연한 돈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자금 출처가 놀이와 대척점에 있는 본격 게임 회사 일색이라는 사실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놀이만 해야 하고 게임은 금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게임 회사를 운영하면서 번 돈의 깃털을 뽑아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놀이와 놀이터에 얼굴을 내미는 그들의 변신술에 감탄했다. 사기업의 코 묻은 돈이 왜 어린이 놀이와 놀이터에 흘러드는지 따져야 하고 받아야 하는지를 차갑게 성찰해야 한다. 그들은 어린이 놀이·문화·예술 판까지 사유화하려 한다. 어린이는 무조건 돈이 된다는 것을, 게임 사업을 해온 그들만큼 잘 아는 집단은 없다. 심지어 그들은 우아하다.
그들만이 아니다. 장난감 만드는 기업들도 아이들을 위한다며 놀이와 놀이터 후원에 나서고 있다. 놀이터가 손 씻는 곳인가.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시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서울 중랑구 놀이터 두 곳을 개선했다. 올해는 또 터닝메카드라는 장난감을 만드는 손오공이라는 회사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놀이공간을 조성했다. 이들 단체가 특정 사업에 치중된 사기업의 후원을 받아 놀이와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어린이 구호라는 본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좋은 뜻으로 하는 일에 자금을 대겠다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놀이와 놀이터 접근을 막아섰던 대표 기업의 돈을 받아 놀이터를 만들고 지키려는 것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상업주의는 이렇게 교묘하게 공공성을 위장하고 마침내 무너뜨린다.
까닭을 모르는 바 아니다. 마땅히 집행되어야 할 어린이 놀이와 놀이터 공적자금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다른 곳에 쓰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놀이터는 국가가 만들고 가꿔야 한다. 어린이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성숙한 국가라면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희들은 장사를 해! 놀이터는 우리의 일이야!”
사기업과 비영리단체의 활동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놀이터는 6만개가 넘는다. 몇몇 기업에서 돈 몇 푼 내고 선한 일로 선전해서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놀이나 놀이터 관련 공적 투자는 정체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니 몇몇 사기업의 선행에 기대어 이런 놀이와 놀이터 관련 사업과 캠페인이 이뤄지는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전체 놀이터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놀이터에 사기업들이 가뭄에 콩 나듯 얼굴을 내밀고 아이들과 사진 찍고 하는 동안 공공의 주체들은 점점 뒷짐을 지는 이 현상을 나는 ‘놀이터 민영화’ 또는 ‘놀이터의 비극’이라 부른다. ‘놀이터 민영화’라는 비극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공적자금이 이 영역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확보해가야 한다. 자본의 한복판을 사는 놀이터 벗들이여! 우리는 아이들 일을 하는 사람답게 튼튼하게, 민망하거나 노골적이지 않게 이 일을 하자. 빨리 멋지게 하려 하지 말고 작고 오래 할 생각을 하자. 게임과 장난감을 앞세운 상업주의의 포화에 아이들이 오늘도 멍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