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보는 아이
굳은 편견 깨는 두책
빅토리아 페레스 에스크리바 글·클라우디아 라누치 그림·조수진 옮김/한울림스페셜·1만2000원
상드린 보 글·그웨나엘 두몽 그림·김주열 옮김/스콜라·9800원
“형, 시계는 몇 시인지 알려 주는 물건이야.” “그렇지 않아. 시계는 심장을 가진 작은 나무 상자라고. 들어 봐!” 정답에 길들여진 뇌 속이 마구 엉클어진다.
“형, 비누는 씻을 때 쓰는 거야.” “비누는 닳아 없어지는 향기 좋은 돌인 걸. 쥐어봐.” 향기 좋은 돌이라 부르니, 쓰임새로만 익숙해져 있는 비누가 그 비누가 아니다.
![새그림책.jpg 새그림책.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756/673/031/%EC%83%88%EA%B7%B8%EB%A6%BC%EC%B1%85.jpg)
<눈을 감아 보렴>은 굳어버린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형과 동생의 대화가 이어진다. 서로 다르게 보는 대화를 듣다 보면 낯익은 사물이 낯설어진다. 동생은 항상 형에게 무언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애쓴다. 이 물건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에 쓰이는지, 색깔은 어떤지를 말해주지만 형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놓는다. 동생은 늘 자기 말을 반박하는 형이 말싸움을 하려 하는 듯해 속상하다. 전구가 빛을 밝혀 주는 물건이라고 하면, 형은 전구는 부드럽지만 정말 뜨겁고 조그만 공이라 말한다. 달은 해와 비슷하고 하얀색이라고 말하면, 우리집 앞마당에서 노래하는 귀뚜라미 떼가 달이란다. 형은 음유 시인이 아닐까?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나올까?
이 책은 끝까지 형이 시각장애임을 드러내지 않는다. 형이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울먹이는 동생을 달래는 엄마의 한마디만이 그것을 암시한다. “(형이) 왜 그런 거예요?” “눈을 감아 보렴!”동생이 눈을 감는 순간 하얗기만 했던 몸에 무지개빛이 스며든다. 안 보인다는 것은 결핍이기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힘이란 걸 담담하게 보여준다. 형은 눈으로만 보는 대신 손으로 만지고 소리로 듣고 냄새를 맡으며 사물의 본질에 더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 동생의 눈에 아빠는 키가 크고 모자를 쓴 사람이다. 그러나 형에게 아빠는 뽀뽀할 때 따갑고 담배 냄새 나는 사람이다. 형에게 더 예민하게 열린 오감은 한가지 감각만 도드라진 동생의 좁은 시선을 돌아보게 만든다. 장애를 장애라 하지 않고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이 책은 프랑스 어린이 문학상인 엥코툺티블상을 받았다.
<손으로 말하는 아이>는 청각장애 소년이 전학오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편견을 깨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빅토리아는 마놀로의 까만 눈을 마주한 순간 ‘심장이 쿵’한다. 손으로 말하는 마놀로와 친구가 된 빅토리아는 등 뒤로 따스한 햇살 쬐기를 좋아하고 도마뱀 잡는 법도 잘 알고 있는 마놀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지만, 한편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놀려대고 시비 거는 친구, 노골적으로 깔보는 행인, 특수학교로 보내자며 탄원서를 돌리는 학부모들에 상처를 입는다. 빅토리아의 특별한 수업 제안, 편견은 걷힐까. 각 권 초등학생부터.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한울림스페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