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할 때, 나의 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런데 아들은 그 소리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방문을 열더니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한다. 밤이 되면 보통 9~10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먼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그와 동시에 아들은 문을 빼꼼히 열더니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최근 아빠에 대한 아들의 인사성이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그 원인은 자동차 사고에서 기인한다. 최근 아들이 접촉사고를 냈다. 2달 전에 이어서 두 번째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는 엄마 차 운전하지마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럼 아빠차를 운전해라’라고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10일 전, 밤에 아들은 마트에 간다며 엄마의 자동차 키를 받아서 떠났다. 그리고 40분 후, 아들은 엄마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사고가 났다며 전화를 했다. 이에 아내는 황급히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고를 해결해주었다. 나중에야 아내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는데, 우선 연말이라 자동차가 많아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나 걸렸고, 아들은 마트 앞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대기를 하고 있었고, 오른쪽에서 차들이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정지선보다 1~2미터 앞으로 나와 있었고, 좌회전을 하는 차들은 그것이 못마땅한 의미로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아들은 미안한 마음에 후진을 했는데 오비이락일까, 뒷 차를 미쳐 보지 못하고 접촉사고를 냈다. 더구나 그 날은 가랑비가 내려서 백미러로 뒤를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고 후, 아들은 자동차가 무섭다며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미안함을 표현했지만,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일주일 후, 아내와 거실에서 아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들에게 다시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자신을 속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신도 나와 생각이 같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호히 “아니, 나는 아들에게 운전을 계속하라고 말할거야. 아들은 아직도 초보운전이잖아. 상황을 들어보니 사고가 충분히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살면서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지” 이어서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을 할 때, 1,700번의 실험 실패와 3,500개의 가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현재 부부명의로 가입한 보험을 가족보험으로 변경을 하자는 말을 건냈다.
그러자 아내는 오히려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고마워요. 나는 당신도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으면 너무 속상했을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런 아빠의 생각을 아들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내는 아들에게 그 말을 전했는데 아들이 하는 말, “아빠가 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했단다. 요약을 하면 아들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아빠가 아직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아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아들이 초6년이던 12월, 6년 동안 해왔던 바둑을 그만둘 때도 아들의 포기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고, 12월 말, 아내가 아들의 영어실력을 알라보라고 할 때, 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ABC밖에 몰랐다. 그래서 아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서 중학교 1학년이 되는 1월부터 예비 초등학교 1학년생과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중1, 5월에는 사진학과에 가기로 한 결정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 아들은 현재 사진학과에 다니고 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나는 아들에게 냉냉하게 대했다. 사실은 아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무엇을 해라 혹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아들이 상의할 것이 있다고 전화가 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이유는 이제 홀로서기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지금의 상황이란 마치, 새도 날기 전에는 스스로 연습하는 힘찬 날개짓이 필요하다. 이제 아빠의 간섭이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향해서 날아갈 연습을 하며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아내가 말하길, 아들이 하루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속상하다고 걱정을 한다. 그런 아내에게 “걱정하지마. 저렇게 방에서 궁리를 해야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있어”라고 말했다. 아마 시시각각 다가오는 군입대 날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듯하다. 며칠 동안 아내를 걱정시키더니, 어제는 1달 동안 숙식이 포함된 알바를 한다며 집을 나섰다.
내가 아들에게 믿음을 주는 성격은 대물림인 듯하다. 그런데 내가 아들에게 보내는 믿음은 아버지가 나를 믿는 믿음에 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말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항상 나를 끌고가려고 하지 않았고, 나의 의견에 경청 해주었다. 그 중에서 공기총 이야기를 해보자.
6학년이던 때에 공기총을 구입했다. 그 때는 농사를 지었고, 참새가 많아서 곡식 생산량이 줄어들자, 정부에서는 신고만 하면 공기총을 구입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학교에 갔다오면 총으로 새를 쫓는 일을 했다. 아니, 그것은 흉내만 냈을 뿐, 사실은 새를 잡으러 산과 들로 다녔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아버지가 공기총을 사용한 것을 본적이 없다. 오직 나와 5학년 동생이 사용했다. 그 총의 위력은 대단했다. 외알을 장전하고 10미터 앞에서 사격을 하면 콜라병이 박살이 났다. 만일, 사람이 가까이서 맞으면 중상을 입을 수가 있는 무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믿음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가 있다. 그 후도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늘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아들에게도 전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 프로이드가 말하길, 사람의 판단능력은 대부분 15살 정도라고 말한다. 단지, 나이가 많으면 경험이 많기에 좀 더 실패할 확률이 적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중 2병의 심각함을 말하고,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는 중 2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원인을 보면 부모들의 넘치는 사랑에서 기인한다. 자식이 부모의 생각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특히 엄마들은 아직도 품안의 자식으로 여기기에 자식과 충돌한다. 심지어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에게 미래와 꿈을 말하며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공부만 잘하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세상은 이미 4차 산업혁명으로 접어들었고, 공부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전부가 아닌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부모들은 아이의 사춘기를 이해해야한다. 그 때가 되면 자의식이 강해지고, 스스로 독립하려는 마음이 많아지고, 스스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바로 누구나 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다면 아이를 끌고가려고 하면 안된다. 그저 아이의 말을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다 들은 다음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엄마는 너만 믿는다’라는 말을 해야 한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엄마는 너만 믿는다’라고 해야 한다. 얼핏, 이런 표현이 내 자식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대학을 못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바로 부모가 그동안 내 아이를 잘 키운 결과, 자아가 잘 성장되었으며, 이제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부모란 아이를 끌고가는 부모가 아니라 기다려주는 것이며, 곁에서 늘 믿어주는 것, 바로 ‘도우미 양육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