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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동그라미, 울리고 번지고 스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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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_4.jpg»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나이테
  안도현

 

나무 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

 

안에서 밖으로 

퍼져 나간 자국

 

그랬지, 그날

네 손을 처음 잡았던 날도

 

내 몸 안에서 밖으로

징 소리가 퍼져 나갔지

 

―<기러기는 차갑다>(문학동네, 2016)





 동그라미를 찾아보자. 컵, 그릇, 병 주둥이, 눈동자, 이슬방울, 굴렁굴렁 굴러가는 굴렁쇠…. 겹친 동그라미를 찾아보자. 달무리, 징에 새겨진 둥근 무늬, 기타의 울림구멍에 새겨진 여러 겹의 원, 빗방울이 떨어져 만든 둥근 물결무늬, 나이테…. 동심원을 이루는 것은 모나지 않고 원만해 보인다. 아이랑 같이 동글동글 동심원을 그려보자. 울리고, 번지고, 퍼져 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스미는 시의 말을 따라가 보자. 말에도 동그라미가 붙으면 잘 굴러간다. 동그라미가 붙은 말을 찾아 둥글게 발음해 보자. 살랑, 사랑, 사라랑, 퐁당, 팔랑….

 

이 작품은 나이테의 동심원을 그리며 숨김에서 드러냄으로, 안에서 밖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퍼져 나간다. 1~4연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4(3(2(①)2)3)4)와 같은 동심원이 될 것이다. 마지막 행의 “징 소리”는 징을 칠 때 “징” 하고 울리는 소리이면서 그것의 모양이고, 사랑에 감전된 자의 전율하는 내면을 동시에 받아낸 말이다. 내 몸을 울린 것이 “내 몸 안에서 밖으로” 번지고 퍼져 나가 너에게 스민다. 이것은 시일까, 사랑일까. 눈에, 입에, 마음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자. 정유년 새해에는 사랑의 나이테가, “그날/ 네 손을 처음 잡았던 날”처럼 지잉, 멀리 퍼져 나가면 좋겠다.

 

동그라미 하나(○)는 부호에 가깝지만 둘(◎) 이상이 되면 결이 생겨난다. 이성복 시인은 이렇게 썼다. 

 

“동그라미를 그릴 때, ○ ○ ○ ○ 이렇게 연결하면 산문”에 가깝고, “((○)) ((○)) ((○)) ((○)) 달무리 옆에 또 다른 달무늬가 생기는 식”으로 붙이면 시에 가깝다. “땅바닥에 돌을 늘어놓는 것이 산문이라면, 물에 던진 돌의 파문을 연결하는 방식이 시”이며 “말의 번짐과 퍼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시인이 할 일”이다. 안도현의 〈나이테〉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문제를 하나 내 본다. 나무는 “속”(1연 1행, “나무 속에 숨어 있는”)으로 쓰면서, 몸은 왜 “안”(4연 1행, “내 몸 안에서 밖으로”)으로 썼을까. ‘속’은 ‘겉’과 짝이 되고, ‘안’은 ‘밖’과 짝이 된다. 


이안.jpg» 이안 시인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 안팎이 다른 사람으로는 말해도 속과 밖이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속’이 아니라 ‘안’이 필요하다.

 

안도현 시인은 지금까지 세 권의 동시집을 냈다. 음식을 테마로 한 기획동시집 〈냠냠〉(비룡소 2010)은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유아나 1-2학년이 읽기에 좋고, 3-4학년부터는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실천문학사 2007), 〈기러기는 차갑다〉(문학동네 2016)을 읽는 게 좋다. 〈냠냠〉에서 한 편 소개한다.




셀러리 샐러드 안도현  

 

셀러리는 야채

셀러리는 걷지 못해요

셀러리는 입안에 넣으면 걸어요

셀러리는 이로 깨물어 주면 걸어요

셀러리는 발소리 내며 걸어요

아삭아삭

사각사각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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