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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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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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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을 점령하라 
황선미 지음·김환영 그림/사계절(2003)

훗날 작가 황선미를 대표하는 동화를 꼽는다면, 무엇이 될까? <마당을 나온 암탉>(2000)과 <나쁜 어린이표>(1999)가 첫손에 꼽히겠지만 나는 여기에 <처음 가진 열쇠>(2006)와 <과수원을 점령하라>를 포함하고 싶다. <처음 가진 열쇠>는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화이고,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작가로서 그가 지닌 사유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황선미는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과수원을 점령하라>에서 역시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어린이문학에서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단 주인공만 해도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성인 여자(암탉)고,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과수원 할머니와 동물이다. 이들을 통해 작가는 먹고사는 일의 치열함이며 속고 속이는 비루함과 죽고 죽이는 냉혹함 같은 것들, 산다는 건 결국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허나 그것만은 아니다. 자연 생태계의 본질을 그리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 모두는 먹고 먹히는 가여운 존재지만 혼자는 없다. 생명은 서로 연결된다. 모든 생명은 한순간 태어나 죽어가지만 그럼에도 한 생명은 다음 생명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비열해 보이는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으며, 제 이야기 속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과수원을 점령하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신도시에 섬처럼 오도카니 남은 과수원을 중심으로 오리가족, 고양이, 쥐, 나무귀신, 찌르레기, 과수원 할머니의 이야기가 연작소설 형식으로 펼쳐진다. 독립적이지만 모두 연결된 소설의 형식은 돌고 도는 자연과 생명의 순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사연까지 읽으면 모두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다.

과수원에 사는 대장오리는 호수로 가던 길에 왕버드나무에 앉아 있던 애완고양이 호피를 본다. 가족과 나들이를 나왔던 호피는 왕버드나무에서 이상한 걸 보고 놀라는 바람에 길을 잃는다. 호피는 살기 위해 왕쥐의 부하노릇을 한다. 왕쥐 무리 속의 발바리는 새로 살 터전을 찾아 헤맨다. 여기에 왕버드나무와 거기 사는 나무귀신, 행운을 가져다주는 찌르레기 그리고 과수원의 할머니의 사연 또한 맞물려 들어간다. 마치 우리들의 삶처럼 말이다.

발바리, 찌르레기, 호피에게는 소망이 있다. 모두 할머니가 사는 과수원으로 가고 싶어 한다. 신도시에서 안전한 것은 오로지 과수원뿐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엄마젖을 먹던 마루 밑’처럼 푸근하고 따뜻한 ‘흙냄새가 나는 곳’이다. 갈 곳 없는 생명들을 거두어들이고 품어주며, 잡아먹힐까 두려움에 떨고, 잡아먹느라 기를 쓰던 모두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과수원은 어미의 품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직접적으로 모성을 이야기한다면,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모성의 공간을 보여주는 작품 같다. 초등 3~4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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