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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기적의 꽃 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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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라 입구에 있는 소파가 오래되었다. 십 년 넘게 아이들의 엉덩이를 받쳐주다 이음새가 부러지고 속을 채운 스펀지도 빠져나왔다. 사서 데스크 바로 옆이자 정기간행물 서가 앞, 신간도서 코너를 끼고 있는 곳이어서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낡은 소파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기왕 바꾸는 것이니 동네 사랑방처럼 평상을 놓아보기로 한 것이다. 목수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소파보다 넓고 시원하고 두런두런 모여앉기 좋게 나무결이 아름다운 소나무로 평상을 짰다.

 

평상_스케치3.JPG» 낡은 소파 대신 소나무로 만든 평상을 도서관에 들였다. 평상 위에 꽃 그림 관련 그림책을 올려둔 모습. 사진 정봉남.

나무 평상에서 은은한 솔향이 묻어나 기분이 좋았다. “얘들아, 평상이 생기니까 좋아?” “그럼요. 시원하고 누울 수도 있잖아요. 판판해서 글씨 쓰기도 좋아요.” 터줏대감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만족스러워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뭔가 아쉬운 느낌, 와인색 소파가 있던 자리여서 그런지 나무색이 밋밋하게 느껴졌는데, 문득 평상에 모여든 아이들에게 꽃방석을 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사계절 피어나는 꽃을 그리면 얼마나 근사할까? 그래서 도서관의 꽃인 어린이사서들과 그림을 그려 꽃평상을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평상_스케치2.JPG» 그림책 작가 선생님과 어린이 사서들이 그림책에서 좋아하는 꽃을 하나씩 골라 평상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정봉남.

 

이름하여 기적의 꽃 평상을 만들기로 하고 그림책작가 선생님과 어린이사서들이 모여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하나씩 골라 그려넣기로 했다. 꽃 모양과 색깔이 잘 떠오르면 그냥 그리고, 막상 꽃 모습이 안 떠오르면 도서관에 있는 그림책 가운데서 꽃그림을 보고 그리기로 했다. 유성매직을 하나씩 나눠주고 원하는 위치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빙 둘러앉아 그림 그리는 아이들은 저마다 의욕에 불탔다. “우와, 여기다 그림 그려요? 우리도 해도 돼요?” 시험기간이라 공부한다고 몰려온 청소년들 눈에도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여럿이 할수록 좋은 거니까 마음껏 해보라고 하자 커다란 평상에 알록달록 낙서 같은 그림들이 늘어갔다.

 

평상_스케치.JPG» 평상 위에 꽃 그림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사진 정봉남.

 

얘들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여기다 낙서하지 말고 예술을 해 줘.” 그러자 낙서랑 예술의 차이가 뭔데요?” 반문했다. “잘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끝까지 책임지고 그림을 완성하면 예술이 되는 거고, 하다 말면 낙서가 되는 거거든. 그러니 우리 여기에 예술을 해보자. 좋지?” “합창하듯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예술을 하기로 약속한 아이들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최선을 다했다. 봉숭아, 민들레, 달리아, 붓꽃, 튤립, 해바라기...이름을 아는 꽃들이 나무 위에 하나둘 피어났다. 자리가 비좁아 평상 위로 올라간 아이들 몇이 대각선으로 그림을 그리자 신기하게 넝쿨처럼 꽃줄기들이 이어졌다.


그림 그리는 걸 가만히 보면 아이들 성격이 다 보였다. 평상의 한 가운데 올라가 붉은 색의 달리아를 시원시원하게 그리는 아이가 있고, 귀퉁이에 작은 민들레를 그리는 아이도 있었다. 파랑새와 애벌레와 나비를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려넣는 아이도 있고, 나뭇잎과 꽃잎 몇 장만 그리다 말고 가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림은 아이들 성격만큼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이 밑도 끝도 없이 펜 하나씩 들고 모여앉았을 땐 약간의 불안감도 스쳐갔다. 비싼 나무에다 연습도 없이 막 그리다니! 그러나 이렇게 작은 점 하나라도 찍으며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도서관에서 경험하는 예술의 세계이니 어찌할 것인가.

둘째날은 색칠하기! 신문지를 바닥에 깐 다음 아크릴 물감을 짜놓은 파레트를 여기저기 놓아두고서 물통 중심으로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색칠을 시작했다. 한 번 칠한 다음 마르고 나면 그 위에 덧칠해서 명암을 넣고 테두리도 깔끔하게 정리하여 한 송이 꽃이 도드라지게 하는 방식으로 색을 입혀나갔다.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선이 색을 입으니 입체감있고 화사하게 피어났다. 아이들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게 밑그림과 구도와 색감이 뛰어난 아름다운 평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평상_그림그리기.JPG» 평상에 그린 밑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다. 사진 정봉남.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왼종일 색칠을 해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아고, 허리야.”소리를 절로 내며 서로를 보고 웃으면 구경하던 어른들도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이날 하루 전날,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이 되어 일단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작가 선생님 가족과 내가 남아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을 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다음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짜잔~어린이날 선물이야!”하고 선을 보이고 싶은 간절함, 완성작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상상하며, 꼬박 밤을 지새워 색칠을 마치고 마감재를 바르고 나니 새벽 5시였다.

 

평상_그림그리기1.JPG» 아이들이 평상 위의 꽃 그림 채색을 완성해 가고 있다. 사진 정봉남.

어린이날 아침, 도서관 문이 열리고 커다란 꽃 평상이 아이들을 반겼다. 때마침 천장에서 내려온 햇볕이 한아름 쏟아져 조명처럼 꽃무리를 밝혀주었다. 예뻐서 앉기가 미안하다는 아이들도 있고, 좋다고 평상 위에서 구르는 아이도 있고, 엄마 아빠랑 사진 찍는 아이들도 있었다. “와아. 멋있다!”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피곤이 싹 가셨다.

 

평상_완성.jpg» 완성된 '기적의 꽃 평상'. 사진 정봉남.

어느새 작년 어린이날 선물로 함께 만든 평상 위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잠이 들기도 하면서 일 년을 보냈다. 그때 추억을 생각하며 아이들 손길이 담긴 평상을 쓸어본다. 꽃그림 그린다고 제일 많이 펼쳐 본 두어 권의 책을 꺼내어 이 꽃은 어디있나 짝맞추기 놀이를 하곤 한다.

 

평상_아이들.JPG» '기적의 꽃 평상'에서 그림책을 보는 아이와 가족들. 사진 정봉남.


아름다운 것들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오소리네집 꽃밭>(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길벗어린이)과 들꽃을 닮은 아이 보선이의 어여쁘고 애틋한 마음이 담긴 <들꽃 아이>(임길택 글, 김동성 그림/길벗어린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가능성을 지닌 씨앗이라고 말해주는 <너는 어떤 씨앗이니?>(최숙희 글·그림/책읽는곰)를 찬찬히 읽으며 꽃 앞에서 마음을 멈추곤 한다. 도서관에서 숨 쉬고 뒹굴고 꿈꾸는 날들이 모두 꽃같이 아름다운 것임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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