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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싱그럽고 상큼, 달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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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jpg»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메뚜기 가족
송찬호
 
미뚜기
며뚜기
뫼뚜기
메뚜기
뭬뚝이
우리 가족 다 모였지?
오늘 아침 식사는
싱싱한 볏잎 갉아 먹기
 
그럼, 아침 식사 시작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초록 토끼를 만났다>(문학동네 2017)
 

메뚜기 가족 이름이 재밌다. 미뚜기, 며뚜기, 뫼뚜기, 메뚜기, 뭬뚝이…. 미, 며, 뫼, 메, 뭬, 저마다 성이 다른 각성바지다. 가운데가 같은가 하고 보니 하나(뚝)가 다르다. 끝도 그렇다(이). 이름이 다르니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겠다. 미뚜기는 미끈할 것 같고, 며뚜기는 며느리 메뚜기일 것 같다. 뫼뚜기는 산으로 자주 날아갔다 오는 녀석 같고, 메뚜기는 개중 몸매가 호리호리할 것 같다. 뭬뚝이란 이름에선 우뚝한 덩치가 떠오른다. 성격도 좀 무뚝뚝하겠다. 아이랑 같이 메뚜기 가족 이름을 발음해 보자. 그 각각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으로 그려 보자. 아이가 그린 그림과 엄마 아빠가 그린 그림을 놓고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야기해 보자.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냥 재밌게 읽고 넘어가면 될 것도 같고 그래선 안 될 것도 같다. ‘가족’이라는 말과 서로 다른 메뚜기의 이름이 다문화가족, 유사가족, 셰어하우스 같은 우리 사회의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암시하는 것도 같아서다. 어릴 때 많이 했던 별명 짓기 놀이를 끌어온 것도 같고, 표준어와 방언을 위계 없이 진열해 놓은 것도 같다. 메뚜기 가족의 이름은 다 다른데, 이들이 모여서 먹는 음식(“볏잎”)과 소리(“사각 사각 사각 사각”)는 똑같다. 다름(이름)과 같음(음식과 먹는 소리)이 충돌하는 데서 이 작품을 조금쯤 달리 해석하고픈 유혹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이랑 같이 소리 내 읽어 보는 것만으로 이 시에 들어 있는 말을 하나하나 맛있게 먹은 듯한 쾌감을 준다. 메뚜기 가족의 이름을 하나씩 발음해 보는 것도 그렇지만, “식사”, “싱싱”, “시작”, “사각 사각”에 든 ‘ㅅ’, ‘ㅈ’, ‘ㄱ’ 음은 메뚜기 가족이 다 모여서 볏잎을 갉아 먹는 소리처럼 싱싱하고 싱그럽고 상큼하다. 

 

소나기 반성문

송찬호

 

구름침대에서 쿵쿵 뛰놀지 않기

구름베개 서로 집어 던지지 않기

천둥처럼 문 꽝꽝 닫지 않기

마른 빨래 후드둑후드둑 밟고 다니지 않기

애호박 놀라 꼭지 떨어질라, 너른 호박 잎새로 우르르르 몰려다니지 않기

 

그럼, 엄마

우리가 가랑비야?

가랑비처럼 숨죽여 지내야 해?

 

―〈초록 토끼를 만났다〉

 

 

송찬호 시인의 동시는 재미나게 읽히면서도 재미나게만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미심쩍음을 남긴다. 1연은 하늘 위(1-3행)와 땅(4-5행)에서 벌이는 개구쟁이 소나기들의 소행으로 보이지만 “침대” “베개” “문”이라는 말이 우리네 거주 문화와 관계되면서, 소나기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소나기 엄마가 주워섬기는 여러 금지 항목(1연)이나 이에 맞서는 아이들의 항변(2연), 말맛과 짜임새가 재밌지만, 이 재미에 붙잡혀선 안 된다. 재미를 한꺼풀 벗길 때 이 작품은 더 재밌어진다. 실은 소나기 이야기가 아니라 층간 소음 이야기였던 것이다. 소나기 이야기로 층간 소음 문제를 떠올리게 하기는 쉽다. 그러나 층간 소음 문제를 이처럼 소나기 이야기로 풀어내기는 어렵다.  

 

송찬호 시인은 지금까지 두 권의 동시집을 냈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는 첫 동시집 〈저녁별〉(문학동네 2011)을 낸 지 꼭 6년 만에 선보이는 신간이다. 두 권 모두 초등 3-4학년부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는 송찬호 시인 특유의 농담과 위트, 기품 있는 언어와 사유, 사회적 철학적 신화적 상상력이 적절히 결합되어 우리 동시의 말하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동시집이다. 송찬호 동시집에는 암송을 유혹하는 작품이 많다. 필사 공책을 만들어 사나흘에 한 편씩 베껴 적은 다음, 아이랑 같이 외워 보면 좋겠다. 

 

무더운 여름이 길게 느껴지지만 다음 작품을 읽어 보면 가을까지가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울긋불긋 단풍나무 기차가 머지않아 우리 앞에 도착할 테니까.

 

기차 터널

송찬호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

얼마나 빠른지 아니?

 

글쎄, 여름날 초록 기차가 터널로 쑥 들어가더니

어느새 가을날 울긋불긋 단풍나무 기차로 빠져나오더라니깐

〈초록 토끼를 만났다〉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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