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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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 인정과 사랑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부모님’으로부터 이렇게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요? 사실은 어른이 된 지금도 인정받고 싶어 할 가능성이 많으니까 현재진행형이 되겠죠.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부모님의 인정을 갈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봅시다. 이건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장 근원적인 관심사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원했던 것이라 의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크게 궁금하지 않더라도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한 번쯤 들어볼 만할 겁니다.
알베르 카뮈의 유작 중 《최초의 인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최초의 인간이라… 누가 최초의 인간일까요.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인간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최초의 인간을 밝혀내는 건 비교적 쉽죠.
여러분 인생에서 최초의 인간은 누구인가요?
혹시 ‘어머니’라고 대답하셨나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 또는 다른 사람을 지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말입니다, 부모님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부모님을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분도 있나요? 그래서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인간적인 다른 사람을 최초의 인간으로 정한 분도 있을 수 있겠죠.
혹시 최초의 인간으로 ‘나 자신’을 지목한 분도 있나요? 제 짐작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인생 최초의 인간은 어머니라고 대답한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저는 강의를 하거나 이런 저런 개인적인 자리에서 “당신 인생에서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습니까?”라고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면 대체로 어머니를 꼽고, 가끔 아주 중요한 가까운 사람을 답으로 내놓습니다. 자기 자신을 최초의 인간이라고 답하는 경우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본 적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최초의 인간으로 지목한 사람도 어머니나 다른 어떤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가정하면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지금,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낼 수 있습니다. 눈치 채셨나요? 우리가 최초로 ‘인식’하는 인간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이건 아버지이건 할머니이건 상관없이) ‘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된 가장 확실한 사실을 하나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혹시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에서 어떤 갓난아이가 가장 먼저 말한 단어가 ‘나’였다는 경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몇 개월 지나면 ‘맘마’나 ‘빠빠’ 같은 말들을 옹알이처럼 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 없는 단어들 말고 목적적인 단어, 즉 대상을 지칭하거나 의사를 표현하는 말들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최초로 하는 말이 무엇이던가요. 열에 아홉은 ‘엄마’가 아니던가요. 간혹 ‘아빠’를 먼저 한다는 아이는 있어도 ‘나’를 먼저 지칭하는 아이를 본 적은 없을 겁니다. 저 역시 한 번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최초로 인식된 대상(인간)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어머니)이라는 뜻입니다. 아이의 인지체계 속에 가장 먼저 인입(引入)된 인간이 자신이 아니라 엄마라는 말이죠.
태어나서 최초의 몇 달, 대략 5~6개월 정도의 시기를 심리학 용어로 ‘공생기’라 합니다. 이 시기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구분이 생기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흡사 엄마와 자신이 한 몸인 것처럼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6개월 정도 되면 자신과 엄마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됩니다. 여기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아이는 꽤 간단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자신을 엄마로부터 분리해냅니다. 아기가 ‘엄마’라는 타자를 지칭한다는 것은 엄마를 자신과 분리시켰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죠.
저는 인간 최초의 비극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인식된 개체가 자신이 아니라 타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타자를 총합하고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이모, 고모, 사촌 누나, 작은아버지 같은 개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모든 인간은 이 ‘어머니’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 상황은 무엇을 뜻하나요?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있어야 하고, 타자가 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즉 나라는 개념이 생기려면 어머니(너, 타자)가 나(주체)를 불러줘야만, 그렇게 인정해야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주체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타자가 먼저 형성되어버린 겁니다.
좀 골치 아픈 얘기인가요? 하지만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역사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머리가 좀 아프더라도 들어볼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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