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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심심함의 평화, 페낭의 마지막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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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의 마지막 날.

 

떠나는 날 아침이 되니 왠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페낭은 낭만이 가득한 곳이다.”
여행안내 책, 론리플래닛에서 페낭을 소개하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아쉬움의 정체는 동양의 진주라는 말에 큰 기대를 품고 왔는데, ‘진주’를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페낭의 매력을 이야기하면 ‘혼잡함’이지 결코 ‘낭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내가 놓친 것이 있었나? 여행안내 책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문득 ‘동양의 진주’, 페낭을 진주라 부르는 주체가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조개 껍데기 속에 감춰진 ‘진주’의 발견은 유럽인들이 새로운 식민지를 발견해내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본격적인 페낭의 역사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동인도회사가 페낭을 차지함으로써 시작된다. 말라카, 싱가폴과 함께 향신료, 아편 등의 무역으로 급성장하는데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 개발을 위해 이민을 장려하였고 말레이 원주민보다 식민 정부에 대한 반감이 적었던 중국 및 인도 이민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아시아의 동서를 잇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개 무역으로 페낭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그러면서 초기 이민 사회를 이룬 유럽인과 중국인, 인도인 말고도 태국, 미얀마, 필리핀, 스리랑카 등의 이웃 나라뿐 아니라 일본, 아랍, 독일에서까지,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다고 한다.

 

여행안내 책을 보면 화려한 식민지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표현이 곳곳에 나온다.
‘고가구, 화려한 린넨을 사용한 스위트룸은 유럽의 편안함과 말레이시아 스타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바다가 보이는 영국식 잔디에는 페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자바 나무가 있다. 식민지 시대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와 숙녀가 파라솔 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일까? 식민지 시대의 부(富)가 원주민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여 이루어졌을 거라는 어설픈 인식 때문인가? 서머셋 모옴, 루드야드 키플링, 헤르만 헤세도 머물렀다는 그 유명한 호텔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영국식 잔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고가구와 골동품으로 치장한 저택의 ‘낭만’은 푼돈이 아쉬운 배낭 여행자에게는 그림의 떡, 딱히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동양의 진주, 식민지시대의 낭만과 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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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짐을 싸서 버스 회사 사무실에 맡기고 쿠콩시를 찾았다.
콩시는 한자로 公司(공사), 같은 성을 가진 중국인들이 조상을 모셔놓은 사당이자 회합의 장소이다. 종가 모임이 크게 번성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화려하게 지었단다. 쿠콩시는 페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중국인, 쿠(구邱)씨 일가의 콩시로 가장 크고 화려하다.

숨은 용 찾기, 숨은 동물 찾기...아이들과 기와와 기둥, 벽, 향로 등에 그려지고 새겨진 동물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향로의 돼지를 보고 흉내 내는 해람.

 

쿠콩시 앞에서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방법이 아니라 훨씬 복잡하고 멋지게 접은 종이비행기를 하나에 5링깃(1800원 정도)에 판다. 아이들과 신기한 듯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접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한 때 여행자의 삶에 매료되었던 우리는 가진 돈을 털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돈도 버는, 여행하면서 자급이 가능한 삶을 꿈꾸곤 했다.
“장구랑 꽹과리를 배워서 공원이나 광장 같은 데서 공연을 하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거리의 악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고 길거리 화가들의 소박한 그림들, 그것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사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진을 프린트해서 팔면 좋겠다는 기대에 취하기도 했었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신들의 그림이 집이며 가게마다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인물 사진을 찍어 원하는 신들과 합성사진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작은 프린터 하나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뽑아주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나름 진지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기도 했다.
남미 여행하다가 만난 독일 여행자는 여행하면서 목걸이, 팔찌 등을 만들어 팔았다. 플라스틱 비즈는 사용하지 않고 여행하면서 주운 씨앗, 열매, 조개껍데기 등을 색실에 꿰어서 만들었는데 자연물로 만들어 무척 아름다웠고 게스트하우스의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파는 할아버지를 보니 종이접기도 여행하면서 돈을 벌기에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루야, 너는 종이접기 잘하니까 나중에 여행 다니다가 돈 떨어지면 종이접기해서 팔면 되겠다.”
그러면서 악세사리를 만들던 독일 여행자 이야기를 했더니 좌린은 한 술 더 떠서
“해람이는 신기한 걸 발견해내는 재주가 있고 길에서 줍는 것도 잘하니까 재료를 주워오고 아루가 만들면 딱이네.” 라고 거들었다.

 

아이들이 크면 우리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될까? 그런데 아이들이 여행을 하더라도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십 년 사이, 여행자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각자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는 일이 흔하다. 먼 거리의 여행이 더 쉬워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행지도 빠르게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행 와서 만나는 사람들, 길 위의 인연은 잠시 스쳐가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오히려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짧은 시간에 긴밀해지기도 한다. 각자 삶의 내력은 달라도 여행을 떠나왔고 그래서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를 함께 공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공감대를 느낄 기회가 별로 없는 듯하여 아쉽다.

그렇다고 다가올 아이들의 세상이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세대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모습이 아니며 전혀 다른 세상에서 다른 감각으로 살아갈 것이니. 내가 겪고 느낀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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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페낭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가족사진을 찍고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왔다. 화려한 콩시들과 불교 사원, 낡고 비좁은 오래된 거리를 빠져나와 사치스런 대형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었다. 눈앞에 드러나는 공간이 순식간에 달라지니 타임머신을 타고 1,2백 년 전에서 현재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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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대형 리조트들이 늘어선, 페낭 섬에서 가장 유명하고 접근이 좋은 해변, 바투페링기에서 지냈다. 탄중 붕아에 비해 해변이 넓고 사람도 많았다. 해운대(만큼은 아니지만)처럼 혼잡하고 패러글라이딩, 제트스키, 바나나 보트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시끌시끌, 제트스키와 모터보트 때문에 공기도 나빴다. 페낭은 바닷가도 매연이 심하구나, 쿨럭.

 

구름 낀 날씨라서 파라솔은 관두고 조그만 해변용 의자를 빌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너른 바다와 하늘을 보면 마음이 후련하다. 책을 읽다가 수다를 떨고 간간이 수영을 하고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것도 아니고 수집품 챙기듯이 꼭 무엇을 보아야 하는 강박도 없이 이렇게 노닥거리는 것이 참 좋다.

 

아루는 오늘도 물놀이에 빠져 오후 내내 헤엄을 쳤다. 제대로 발동이 걸린 것이다. 내가 조바심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준비가 되면 이렇게 몰입하는구나! 부모가 아이를 이끌어 주되 성급하게 앞서 나가거나 억지로 등을 떠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두 시간은 좌린이, 이후 두 시간은 내가 교대로 아루와 함께 물놀이를 했다.

 

“나는 수영 안 할 거야.”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해람이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러더니 정말 바닷물에 한 번도 몸을 담그지 않고 내내 모래밭에서만 놀았다.
“엄마, 이게 오디야. 내가 오디 파는 사람 할게, 엄마가 사러 와.”
해람이가 시키는 역할에 내가 간간이 응해주고 좌린이 모래성, 피라미드 만들며 같이 놀아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심심하게 보냈다.
즐겁고 신이 난 건 아니지만, 모래를 주무르고 비비고 나뭇잎과 나무열매를 가지고 몇 시간이고 노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아이들이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참 좋다. 사람이 어찌 매사에 열정적으로 열심히만 살 수 있겠나, 무엇에 집중하여 어떤 일을 해내는 것 이상으로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시간, 여백도 필요하다.

 

어린 시절, 나는 그리 활동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오빠랑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세 살 많은 언니는 귀찮은 동생을 따돌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서 집에 혼자 남겨질 때가 많았다. 글씨가 많은 언니, 오빠 책들을 구경하다가 집안의 물건들을 만져보고 눈을 찡그려 세상을 내 멋대로 보며 엉뚱한 공상에 빠져 지내곤 했다.
구체적인 모양과 형태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때의 기억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마음이 심란하고 혼란스러울 때면 즐겁고 행복했던 것으로 각인된 기억보다 빈둥거리며 공상에 빠졌던 무정형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들이 심심해하지 않아요?”
“심심해하죠.”
“함께 놀아 주기 힘들지 않아요?”
“힘들어요. 사실 잘 놀아주지 않는 편이에요.”
“심심하다고 엄마를 조르면 어떻게 해요?”
“심심한 건 좋은 거야, 심심해야 좋은 놀이도 생각나는 거거든, 하고 말해줘요.”
여섯 살이 되도록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하면 집에서 내가 유치원에 상응하는 교육,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척 심심하게 지낸다. 각자 심심하게 놀다 보면 같이 놀게 되고 또 어느새 뭔가 끄집어 내고 재미있는 놀이를 개발할 때도 있다.

 

뭔가 대단한 소신이나 훌륭한 아이디어를 기대했다가 나의 ‘심심한’ 대답을 들으면 아이들을 그렇게 방치해도 되는지 되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책에서 읽은 구절을 옮겨다 조금 있어 보이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가 그랬는데 깊은 심심함이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대요. 세상이 너무 바쁘고 힘겹게 돌아가는 데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에게 ‘깊은 심심함’을, 여백을 선물해야 하지 않겠어요?”

말레이시아에 와서 해람이가 오늘 가장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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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올듯하더니 꾹 참고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버스 정류장에 서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바투페링기 갈 때 버스를 일 초도 안 기다리고 바로 탔지.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

페낭에서는 버스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바투페링기 갈 때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를 바로 탔더니 그게 신기했나 보다. 아루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다.

 

페낭에서 일주일 지내면서 택시나 투어버스를 한 번도 안 탔다. 일부러 안타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었는데 조지타운 시내에는 무료 셔틀도 있고 웬만한 곳은 버스로 다 갈 수가 있어서 굳이 택시를 타거나 투어를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현지인처럼 ‘버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군것질하고, 만원 버스에서 사람들과 부딪쳐보고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페낭에서 일주일 지내면서
나는 페낭의 버스 루트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좌린은.... 뇌탕, 두리안 양갱, 두리안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먹었고
아루는 보호 장구 없이 헤엄치는 법을 익혔고
해람이는 푸니쿨라와 벌레잡이 식물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행책자에 소개된 코스나 일정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이국적인’ 사원을 다 둘러보고 콜로니얼 지역의 유명한 까페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지 않아도 되는 게 여행이다.

 

 

밤 버스를 타고 말라카(Malaka)로 간다.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페낭 들어올 때 너무 고생해서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차라리 밤 버스를 타고 잠을 자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는 길이 막히지도 않을 테고 막혀도 잠을 자면 모를 테니까!

말라카까지 몇 시간 걸리지?
여섯 시간.
말라카에 몇 시쯤 도착할까?
아침 여섯 시.
버스는 밤 열시 반 출발이다. 여섯 시간 걸린다면 말라카에 네 시 반쯤 도착하는 게 맞는 계산인데...
열 시 반 출발이라고 우리더러 십분 전에 오라고 해놓고 역시나 버스는 열한 시가 되어 나타났고 조지타운에서 출발한 버스가 숭아이니봉 버스터미널, 버터워스 들리니까 열두 시가 되었다.
페낭에서 진정한 출발은 밤 열두 시였던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침 여섯 시 도착이 맞는 거네.

 

자다가 새벽에 눈을 떠보니 버스가 쿠알라룸푸르로 들어왔다. 낯 익는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보니 반가워서 한 컷.

잘 알아보지 않고 그냥 말라카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탔는데 알고 보니 말라카까지 오는 동안 몇 군데를 들르는 완행 버스였다. 쿠알라룸푸르 말고도 두어 군데 더 들러서 말라카에 도착했다. 이런 완행버스를 낮에 탔으면, 낮에 쿠알라룸푸르 들어갔다 나오는 데만도 몇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밤 버스 타길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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