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대표 공약 ‘모르쇠’…정부, 서울시에 예산 80% 떠넘겨
시, 기존사업 축소 등 대책 고심…시민들 ‘양육수당 끊기나’ 불안
0~5살 영유아를 기르는 전계층에 무상보육을 시행할 재원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서울시의 공방이 격해지는 가운데, 서울시가 기존 사업을 접거나 새로 빚을 얻는 방안까지 포함해 무상보육을 지속할 ‘마지막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4일 “이달 25일 영유아를 집에서 키우는 가정들에 양육수당을 지급하려면 서울시가 빚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이달부터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9곳이 보육료와 양육수당 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 서울시는 어린이집에 맡기는 부모를 지원하는 보육료로 한달 평균 638억원을, 양육수당으로 315억원을 집행하고 있다. 주부 이진영(33·서울 강동구 천호동)씨는 “3살 남자아이를 키우는데, 올해 양육수당을 받기 시작하면서 양육 부담이 다소 줄었다. 혹시라도 끊기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서울시는 ‘무상보육 예산의 정부 지원 비율이 너무나 낮다’며 정부 쪽에 증액 지원을 거듭 요구해 왔다. 보육 관련 예산은 중앙정부가 다른 16개 시·도에는 50%를 지원하는데, 서울시는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등의 이유로 유독 20%만 지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의 행태는 마치 아버지가 200원 주면서 엄마에게 800원 보태서 아이 빵 사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생색을 내는 셈”이라고 말했다.서울시는 정부 지원 때까지 보육료 지원을 일시 중단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이런 상황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정부에는 재정 지원을, 여여 정당에는 영유아 보육법 개정을 촉구하면서도 “하늘이 두쪽 나도 무상보육을 계속하겠다”고 시민들에게 공언해왔다.서울시 부담을 80%에서 60%로 내리는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10개월째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잠자고 있다.서울시는 지난달 시내버스 광고 등을 하면서 ‘무상보육이 박 대통령의 공약’임을 부각시켰다. 이에 새누리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는 등 정치적 공격을 이어왔다.박 시장은 정부 예산을 관장하는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일정을 이유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 장관은 4일 박 대통령과 함께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가하러 러시아로 떠났다.20명 이하 영유아를 돌보는 가정어린이집들이 꾸린 가정어린이집연합회의 강명숙 서울연합회장은 “대통령과 정부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다 키워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정부가 처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현 정태우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