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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적막 밟으며 초가을 숲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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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창군 봉평면 흥정천변 판관대 부근의 메밀밭.

[esc] 여행 
휴가와 단풍철 사이 고요함 맛볼 수 있는 9월의 강원도 평창 여행

축제 한창인 봉평 
낙엽송숲을 뒤로하고 
산자락 타고 흘러내리는 
파스텔톤의 메밀밭 풍경

햇살은 따스하고 숲길은 조용해졌다. 소란한 휴가철 지나가고 요란한 단풍철은 아직 오지 않은 때. 푸른 하늘 흰 구름까지 이어진, 초가을 숲길이 굽이치며 알려주는 건 세상은 다시 적막하다는 거다. 9월의 강산은 이제 고요해서 더 짙어지는 물소리 벌레소리 세상이 되었다. 강원 내륙 고원도시 평창의 초가을 산길도 적막강산이다. 도로변 메밀밭과 봉평 장터는 가을잔치로 시끌벅적하지만, 잠시 숲길을 오르면 온 산길 물길과 빼어난 전망이 다 거닐고 쉬는 자의 것이다.

메밀밭 보고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산길로 접어들기 위해선 메밀밭을 지나야 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길마다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들판을 지나면 부연 메밀밭이 지천인 봉평이다. 봉평 출신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된 곳이다. 평지도 산자락도 자디잔 꽃들이 모이고 또 모여 이룬 넓디넓은 흰 꽃밭이 안개처럼 깔렸다. 이른 아침이면 오리무중의 물안개밭, 해 돋아 내리쬐면 눈부신 햇살밭이 된다.

축제(효석문화제·9월22일까지)장을 찾는 인파로 메워지는 주말을 피해, 평일 아침 메밀밭에 들르면 깨끗한 메밀밭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메밀밭 경치는 장평나들목에서 나와 흥정천을 따라 봉평면소재지에 이르는 도로변과 이효석 생가 터 주변, 평창무이예술관 앞, 그리고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오르는 길 주변 산자락 등에 펼쳐져 있다.

흰 메밀밭 사이로 누렇게 익어가는 볏논이 층을 이룬 모습이나, 낙엽송숲을 뒤로하고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듯 자리잡은 파스텔톤의 메밀밭 풍경 들이 감동적이다.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오르면, 산비탈 숲속에 조성된 산책로를 거닐며 주막 충주집, 물레방앗간 등을 재연해 놓은 소설의 주요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2 평창읍 장암산 패러글라이딩 이륙장. 구름 사이로 평창천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붓꽃섬 캠핑장 들러 잣나무숲으로

옛날 붓꽃이 지천이었다는 붓꽃섬(아트인아일랜드·아이리스아일랜드)은 흥정천과 무이천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다. 소나무·낙엽송이 널찍한 숲을 이룬 이 섬은 아담한 펜션과 다양한 농촌체험을 곁들일 수 있는 캠핑장이 있어 캠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시설에 비해 사이트 이용료가 다소 비싼데도(더군다나 2박 이상만 예약 가능하다) 이 캠핑장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료로 진행되는 무농약·유기농 농작물 경작·수확 체험 때문이다. 철마다 나물 뜯기, 고구마·감자 심고 캐기, 호박따기·잣줍기 등이 진행된다. 아니, 캠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다.

어르신을 모시고 오면 맷돌호박 따위를 선물하거나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농촌체험 기회를 주는 등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도 특이하다. 대를 이어 봉평에 살아오고 있는, 붓꽃섬 캠핑장 주인 박정희(53)씨의 가족애를 중시한 운영 방침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사위가 장인·장모를 모시고 오면 호박을 하나 주지만,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고 오면 큼직한 호박을 두개를 안겨드립니다. 무료 특별 농촌체험은 기본이고요.”

이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면, 또다른 특별 체험에 참가할 수 있다. 사륜구동 오토바이(ATV)를 타고 낙엽송숲 거쳐 광활한 잣나무숲에 들어가 즐기는 잣 줍기, 표고버섯 수확 체험이다. 박씨의 고조부 때부터 심어온, 봉평면 원길리 60만평에 이르는 잣나무밭에는 80여년, 50여년, 20여년씩 자란 세 무리의 키다리 잣나무들이 피톤치드 가득한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증조부 때부터 한 대씩 걸러, 손자가 태어났을 때만 기념식수 방식으로 나무를 심어왔다고 한다. 추석 연휴 무렵을 전후해, 잣나무 숲길 탐방과 잣줍기 체험이 진행된다.

3 원길리 잣나무숲.

흥정계곡 상류 임도 따라 불발령으로

흥정계곡은 흥정산(1276m)과 회령봉(1309m) 사이에서 발원해 봉평면을 거쳐 금당계곡으로 흘러드는 깨끗한 물줄기다. 강릉부사를 지낸 양사언이 자주 놀러 왔다는 팔석정 주변 바위 경치와 짙푸른 물웅덩이 바위 밑 물속으로 커다란 굴이 뚫려 있다는 구유소 경치도 아름답지만, 인적 드문 가을 숲과 청정 물길을 감상하기엔 계곡 최상류 쪽이 좋다. 흥정계곡 상류 마지막 펜션 옆 차량통행 차단기를 넘어 널찍한 임도를 걸어오르면 차고 맑은 물길과 낙엽송(일본이깔나무, 잎갈나무) 숲길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불바래기 골째기 안엔 죄 낙엽송이여. 68년 소개령이 떨어져가지군 다 쬐껴내려왔지.”(주민 이동옥씨·61) 흥정계곡 상류엔 화전민 30여가구가 모여 살던 불바래기(흥정리 8반, 화명동) 마을이 있었다. 무장공비 침투에 대비한 이주정책으로 마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속성수인 낙엽송들이 심어졌다. 뾰족뾰족 키다리 낙엽송들이 불바래기의 주요 식생을 이루게 된 이유다.

흥정계곡 최상류 위쪽으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장곡재 삼거리 지나 불발령에 이른다. 홍천 서석면·내면 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옛 불바래기 주민들의 주생활권은 봉평면이 아니라 홍천 내면·서석면이었다. “봉평장 가려면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데, 서석장은 장곡재 넘어가 한나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불발령 정상엔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다. 1978년 겨울, 제주도로 시집갔던 아낙(박정열·당시 38살)이 6살짜리 딸을 데리고 흥정리 동서 집을 거쳐 홍천 내면의 친정으로 가다 눈보라 속에서 동사한 일이 있었다. 사흘 만에 발견된 아낙의 품속에선 엄마의 겉옷에 감싸인 딸이 살아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살신모정을 기려 세운 팻말이다.

흥정리에서 불발령 정상까지는 7~8㎞ 거리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쯤의 물 맑은 숲길에서 쉬다 내려오는 것도 방법이다.

장암산 활공장 전망과 구름바다

숲길 안팎에서 꽃과 나무를 즐겼다면, 차를 타고 올라 멋지게 굽이치는 평창강 물줄기와 산줄기를 감상해 보자. 내륙 산간 고지대이니 산봉들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도 심하게 굽이치는 사행천이 대부분이다. 이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평창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암산(836m)이다. 평창읍에서 42번 국도 타고 미탄 쪽으로 가다 노론리 쪽으로 좌회전해 차로 10여분 오르면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인 장암산 전망대에 이른다.

일교차 큰 날 아침마다 깔리는 구름바다가 멋진 곳이다. 오전 내내 덮여 있던 구름바다는 낮 12시가 되어서야 빈틈을 드러냈다. 멀리 백덕산(1350m) 봉우리들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뻥 뚫린 구름바다 밑으로 아득히 굽이치는 평창강에 감싸인 평창읍 시가지가 눈에 잡혔다.

구름이 풀리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가을철엔 상승기류가 좋아 전국에서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평창/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평창 여행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에서 나가 봉평면 소재지로 간다.

먹을 곳 미가연(033-335-8805) 등 봉평면 일대에 메밀국수와 메밀묵, 곤드레밥을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묵을 곳 붓꽃섬(아트인아일랜드, 070-4639-6315)엔 낙엽송 숲에 만들어진 40개의 캠핑 사이트 외에 11가족이 묵을 수 있는 펜션도 있다. 허브솔펜션(033-334-4445) 등 흥정계곡을 따라 펜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허브솔펜션에서 묵으면 흥정계곡과 불발령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여행 문의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772, 이효석문학선양회 (033)335-2323.


(*한겨레신문 2013년 9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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