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상처뿐 아니라 ‘분자 수준’의 물리적 상처까지 남겨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동학대가 피해 아동의 마음뿐 아니라 디엔에이(DNA)에까지 상처를 남긴다는 새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와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이 성인 남성 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우 정자의 디엔에이에 분자 수준의 물리적 흔적이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네이처>의 자매 과학저널 <트랜슬래이셔널 사이키아트리>(Translational Psychiatry)에 1일(미국 현지시각) 발표했다.
연구진은 연구 참가자를 대상으로 정자 샘플의 디엔에이(DNA)에 메틸화 반응이라는 화학 처리를 하여 학대를 받은 이와 받지 않은 이의 차이를 조사했다. 34명 가운데 22명이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이였다. 그 결과 학대 경험이 있는 이와 없는 이 사이에 분자 단위에서 분명한 물리적 차이가 있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논문의 저자인 하버드대 안드레아 로버트(Andrea Roberts) 박사는 영국 온라인매체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들의 다음 세대에 행동 방식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 연구는 (부정적 영향의) 다른 전달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조사에서 학대 피해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메틸화 반응에 12곳에서 다른 표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또 조사 대상자의 숫자가 34명에 불과한 점도 아직 이런 차이를 일반화하기에는 이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논문의 책임 저자인 브리티시 콜럼비아대의 마이클 코버(Micheal Kobor) 박사는 “메틸화 반응은 범죄 현장에 남은 디엔에이로부터 용의자의 나이가 얼마인지 추정하는 등 수사 용도로 쓰이기 시작하고 있는 기법”이라며 “우리의 발견은 어떤 남성이 어릴 때 아동학대를 당했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추정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