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호텔 식당에서 외식을 할 기회가 생기자 우진이 엄마는 마음이 들떴다. 어린 두 아이 키우느라 그 동안 놀이방이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꿈도 못 꿨는데 우진이 아빠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식사권을 준 것이다. 큰 애도 큰 애지만 입이 짧은 우진이를 생각하면 맛있는 게 많은 뷔페 식당에서 영양보충을 충분히 시켜줘야지 싶은 마음이었다.
» 한겨레 자료 사진
그렇지만 막상 식당에 도착하자 우진이는 도무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보다는 수족관의 물고기를 보려고 식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가 하면 옆자리의 아이가 가져온 장난감을 보려고 아예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리를 잡고 앉기도 했다.
엄마 눈에는 평소 우진이가 좋아하는 갈비와 잡채, 새우튀김이 눈에 어른거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게 하려고 쫒아다녔지만 우진이는 요리조리 피하며 더욱 신나서 식당을 돌아다녔다. 보다 못해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빠는 아이를 번쩍 안고 복도에 나가 놀게 할 뿐 음식을 더 먹이려고는 하지 않아 답답한 엄마 마음은 더 애가 탔다. 한 숟가락 더 먹이는 게 집에서보다 세 배는 힘이 들었고, 음식을 입에 물자마자 뛰어 나가느라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채 뱉어내기도 했다.
그나마 우진이가 먹은 음식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이었다. 이건 평소에도 엄마가 먹지 않았으면 해서 주지 않으려는 건데 다른 음식을 도통 먹지 않으니 그거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전쟁 치르듯 식사를 하고 나온 우진이 엄마는 맥이 탁 풀리고 정신이 없어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럴려고 큰 애 학원까지 빼가면서 온 건가 싶자 허탈하기까지 했다.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우진이가 돌아다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저 좋은 음식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던 것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특별한 날, 특별히 좋은 음식을 먹게 되었을 때 엄마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심지어 잘 먹던 아이조차 음식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먹는다 해도 두어 숟가락 먹고 나면 그 뿐이다. 맛깔스럽게 해 놓은 음식보다는 옆 테이블이나 식당 문 밖에 나가려고 하고, 음식이 새로 나오면 손이 먼저 나가 음식을 만지작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평소만큼도 먹지 않은 채 식당 문을 나서게 되면 왜 이 고생을 했나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에게 있어서 식당이란 맛난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라 만져보고 싶고, 다가가보고 싶은 새로운 자극이 많은 놀이터이다. 음식은 단지 거기에 있는 여러 흥밋거리 중에 하나일 뿐이다. 식당을 놀이터라고 여긴 아이는 놀이터에서 했던 행동을 하게 된다. 엄마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만 했을 뿐 거기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일러주지 않았다.
혹은 집에서와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집에서는 먹을 만큼 먹고 나면 놀 수도 있고, 의자에서 내려와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한 숟가락 먹고 움직이고, 또 한 숟가락 먹고 놀기도 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달리 새로운 환경에 흥분한 아이는 평소보다 식욕을 느끼기 어렵다. 흥분상태가 되면 움직이고 탐색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가 쓰이고, 위의 활동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좋아하는 음식 몇 숟가락에 아이는 곧 포만감을 느낀다. 집에 가자마자 음식을 찾아 타박을 맞을지언정 당장은 눈앞의 재밋거리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아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는데 집중하다보면 아이의 행동은 평소보다 더 산만해진다. 행동을 통제하는 데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해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이고 싶다면 익숙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먹도록 하는 것이 좋다. 바깥의 식당은 음식을 먹이기보다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으로 활용하는 게 맞다. 비싸게 지불한 음식 값이 아깝다면 그 돈으로 좋은 식재료로 아이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