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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TV를 구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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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10년 만에 TV를 구입했다. 그리고 거실에 설치를 했다. 먼저 구입 전, 딸에게 TV를 구입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놀랍다는 반응의 문자가 즉시 도착한다. 밤 10시가 되자 아들이 들어오더니 TV를 보고 다소 놀라워한다. 그러면서 ‘TV가 좀 작네’라고 농을 한다. 그러더니 ‘아빠 3D로 한번 볼까요?’라며어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인 아들은금방 화면 조작을 하고 함께 안경을 착용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옷’이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정말 생생한 화면이 튀어나올 듯이 입체로 움직였다. 그 순간 욕실에서 머리를 감던 딸은 ‘아빠, 뭐예요?’라고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 감탄사의 의미를 알고 3D 안경을 찾으며 아들과 본다. 그리고 동시에 ‘오~옷’이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더구나 노트북과 연결하면 대형 화면으로 미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딸은 내심 기대를 하는 눈치다. 10여 년 전에는 주로 검은 색이며 엄청 무겁고 두꺼운 TV가 대세였다. 그런데 이젠 화면이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가볍고 슬림한 형태로 변한 것을 보며 IT기술의 발달과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130426한겨레삽화.jpg»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10년 전에는 집에 TV가 있었다. 그리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없앴다. 물론 갑자기 없앤 것이 아니라 무려 6개월 정도 작전을 진행했다. 물론 TV가 여느 집과 같이 거실 중앙에 있었으며 늘, 자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시청 자세가 불편하면 덜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청 시간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부엌 옆, 딸의 방 앞으로 이동을 시켰다. 그랬더니 주방을 가기 위하여 늘 그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더군다나 시청을 하면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딸이 방안에서 공부를 한다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항의를 한다. 그러므로 시청하기가 심리적, 공간적으로 더욱 불편해졌다. 그 결과 점점 시청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TV를 없앨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아내와 그 의도에 대하여 상의를 한 후에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TV를 없애고 그 대신 거실에 커다란 서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모두 찬성을 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방이 좁아졌고, 책을 거실 책장에 놓으면 방도 크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그래서 먼저 아내는 인터넷에서 거실에 맞는 책장을 구입했다. 또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구입했다. 동시에 TV도 없앴다. 

33한겨레삽화.jpg 그리고 어느 일요일, 책장이 집에 도착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방에 있던 책을 모두 거실의 서재로 이동을 시켰다. 그러면서 방이 매우 넓어졌다는 사실과 또한 대형 서재가 만들어졌음에 모두 만족했다. 그리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집에 오면 늘 거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곤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기자와 통화를 하다가 TV를 없앤 내용을 듣더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그래서 2005년에 소년 동아일보에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그리고 오비이락인지 몰라도 2006년에는 조선일보에서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하여튼 나도 무언가 사회에 기여를 했다는 점에 기분이 좋았다. 


TV는 바보상자라고 한다. TV에서 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빠학교 카페에서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와 TV와의 상관 관계가 확실히 밝혀졌다. 좋은 아빠의 가정일수록 TV의 보유 빈도가 점점 적었다. 카페에 가입하면서 TV가 없다고 자진 신고를 하는 아빠를 보면 대부분 좋은 아빠과에 속했다. 물론 TV가 주는 유익한 정보도 많다. 하지만 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많다. 특히, 아빠들 중에서 리모콘 아빠가 있다. 집에 오자마자 밥을 먹고 리모콘을 들고 TV에 열중하는 아빠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강아지와 같다. 아빠가 집에 오면 무언가 함께 놀아주었으면 한다. 그런데 아빠가 TV에 열중하니 아이도 곁에서 자연스럽게 시청하게 된다. 아이란 역시 따라쟁이다. 이러한 과정을 볼 때 TV는 아이에게 대체재가 된 셈이다. 또한 아이들과의 놀이가 부담스러운 아빠에게는 회피할 수 있는 찬스가 생겼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를 박탈당하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아이의 어린 시절, TV를 지나치게 많은 시청을 하면 자폐아가 되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구나 아이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는 TV 시청시간이 적어야 한다. 단, 아빠가 놀아주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 이제 집에서 TV를 쉽게 없애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런데 이 말을 보고 갑자기 TV를 없애면 큰일 난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 아빠가 나의 경험을 듣고, 집에서 TV를 없앴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삐쳐서 아빠와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친척집이나 식당에 가면 턱을 괴고 TV에 열중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므로 먼저 차선책부터 알아야 한다.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주중과 주말에 TV보는 시간을 정하고, 그 내용을 포스터에 적어서 거실과 주방과 아이의 방에 붙여 놓고 지키면 된다. 물론 그 전에 가족회의를 통하여 합의를 도출해야 하며 누구나 지켜야 한다. 그런데 만일, 아빠가 좋아하는 야구를 한다며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청을 한다면 그 약속은 풍지박산이 난다. 그 다음 날, 아이가 아빠에게 다가와서 좋아하는 뽀로로를 오늘 만 본다고 말을 한다. 역시 아이들은 따라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누구나 공평하게 지켜야 하며, 한 번 약속을 깨면 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32한겨레삽화.jpg TV를 없애는 효과적인 방법은 고장을 내면서 시작하면 된다. 그저 안테나의 접속을 차단시키면 제대로 시청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면 아이들이 고쳐달라고 요구한다. 물론 약속은 한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고치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의 입장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고장이 난 상태로 보름 정도가 지나면 아이의 마음에서 그동안 매일 보았던 관성이 점점 무뎌진다. 이 때, 아빠는 심각한 고장이기에 직접 나가서 고쳐온다고 말을 하며 TV를 집에서 없앤다. 그리고 아이들이 언제 고쳐서 가지고 오냐고 물으면 곧 가지고 온다고 말한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아이의 의식속에 TV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사실, 요즘은 TV가 없어도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시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TV를 구입한 이유는 전적으로 아내를 위해서였다. 그동안 거의 전업 주부로서 부엌에서 라디오는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작년부터 북 아티스트로서 창조적인 발상을 위하여 TV의 필요성을 가끔 언급했다. 새로운 것을 봐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지론이자 성토였다. 그래도 늘 그 말을 소귀에 경을 읽듯이 무시했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을 세어보니 벌써 10년이 넘었으며 이젠 아이들도 다 컸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서 살았던 세월에서 이젠 아내를 위하는 삶으로 방향전환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TV를 사러가자고 먼저 제의를 했으며, 함께 가서 구입을 했다. 이제 구입한 지 벌써 보름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별로 TV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딸은 매일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한다며 12시 10분 전에 들어오고, 아들의 일상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늦게 귀가하는 아빠가 “얘들아, 수신료 아깝다. TV좀 보자”며 채근한다.  

31한겨레삽화.jpg 그제는 밤 11시에 집에 오니 가족이 모두 거실에서 화기애애하다. 러셀 크로우의 주연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2시간 30분 동안 거실에서 함께 봤다고 한다. 그런데 무료가 아니라 4,000원의 돈을 주고 봤다고 한다.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너무 보고 싶어서 스마트폰으로 미리 봤다고 한다. 딸은 화질이 영화관보다 더욱 좋다며 만족했다. 아내는 4,000원으로 3명이 영화를 봤으니 본전이 빠졌다고 한다. 요즘은 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도 돈만 내면 집에서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도 미리 알았기에 아내에게 주말에는 아이들과 좋은 영화를 보라고 미리 귀뜸을 해주었다. 그래서 거실이 영화관으로 바뀐 것이다. 

 

이젠 아이들보다 아내에게 관심과 쏟아야 할 때가 도래했다. 그래서 4월 초, 쌀쌀한 날씨에도 꽃을 사러 갔으며, 어제는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대형 연분홍 사피니아를 양재동 꽃시장에 함께 가서 사주었다. 봄놀이와 드리이브를 겸해서 아내와 반나절 이상을 함께 다녔다. 물론 보름 전에 선약을 했다. 옅은 연두색의 파스텔톤으로 변한 산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TV를 구입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젠, TV가 가족에게 다양한 문화체험의 전령사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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