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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빠이빠이 창문 |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안녕 빠이빠이 창문
노튼 저스터 글, 크리스 라쉬카 그림, 유혜자 옮김
삐아제어린이 펴냄(2006)
요즘은 조부모가 키워주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조부모가 등장하는 그림책은 그리 많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아빠는 일을 하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조부모는 가끔 뵙는 대상이다.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튼 저스터가 쓰고 크리스 라쉬카가 그린 <안녕 빠이빠이 창문>은 조부모가 돌봐주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그림책의 첫 장에서 아이는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한 뒤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의 1층 부엌에는 창문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창문을 통해 아이가 집에 잘 들어오는지 보고 있다. 부모가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로선 그 이별이 달갑지 않다. 혼자 남는 것이 외롭고 조금은 불안하다. 하지만 그때 고개를 들면 부엌 창문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다보고 계신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나를 지켜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마음이 편해진 아이는 그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장난을 치며 방금 전의 이별을 잊고 다시 발랄한 아이로 돌아온다.
아이가 부엌 창문에 붙인 이름은 ‘안녕 빠이빠이 창문’이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이 창문을 통해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반겨주고, 봐주고, 헤어질 때까지 지켜주는 창문이 ‘안녕 빠이빠이 창문’이다. 창문이 있어 아이는 안심할 수 있고,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창문은 든든하게 아이를 지켜주면서도 아이가 세상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가 바로 그런 부모다.
그림책에서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는 따뜻하지만 장난꾸러기다. 무엇보다 “안녕, 세상아!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줄 거지?”라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밝은 어른이다. 할머니는 꼼꼼하게 챙겨주느라 잔소리도 많이 하지만 거칠거나 무섭지 않다. 부드럽고 유머를 섞어 재밌게 말한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 때로는 엄마, 아빠가 오지 못해서 자고 가야 할 때도 있지만 아무 문제 없다. 밤하늘의 별은 아름답고 자고 일어난 아침의 정원은 싱그럽다.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이가 불안하지 않다는 증거다.
부모가 돌아와 집으로 떠나야 할 때면 아이는 기쁘면서도 한편 슬프다. 부모와 만나서 기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잠시 또 이별이니까. 사랑을 충분히 받았기에 아이는 이처럼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안다. 빠이빠이 창문은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창문은 아이의 마음에 있다. 그래서 아이는 말한다. 나도 크면 그 창문을 만들고 싶다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
조부모와 함께 지내는 아이의 일상을 그려낸 이 그림책은 내용도 따뜻하지만 그림이 압권이다. 크레파스와 수채물감, 색연필을 덧입혀 그린 그림은 색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얼핏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서툴러 보이지만 그 역시 세심하게 계산하여 구성한 작가의 의도다. 마음이 불편할 때면 나는 이 그림책을 꺼낸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아이와 할아버지를 본다. 그러면 내 마음도 조금은 밝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밝아진 마음으로 내 아이에게 다가간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