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엄마가 보낸 편지 글>
안녕하세요 하영이 엄마입니다^^.
» 하영이네 가족.
며칠 전, 남편이 “여보, 나 아빠 학교에서 스텝이 되었는데 당신이 축하 글을 좀 써줄 수 있나요?” 라고 하길래 ‘그러니깐 적당히 하지 활동을 많이 해서 스텝이 되고 그래. 한 번에 훅 질리면 어쩌려고...’ 사실 이렇게 퉁명하게 얘기했지만 새삼 놀랍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원래 남편의 기질은 어떤 일을 할 때, 남들보다 빠르게 완성해야 직성에 풀리고, 목표나 관심사가 있으면 한번 푹 빠져 버리는 걸 알기에 혹시나 아빠학교를 너무 빠르게 흡수해서 질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남편에게 농담으로 ‘요즘은 ‘내가 재혼해서 다른 남자랑 사는 기분이 들어’ 라고 말할 정도로 아빠 학교 활동전과 후가 확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살짝 고백하는데 제가 남편보다 누나입니다. 뭐, 지금이야 연상연하 커플이 흔하지만 직장생활과 순탄한 연애를 하면서 평범하게 결혼한 케이스는 아닌 거죠. 많은 우려 속에 저희 둘은 결혼했고 보란 듯이 잘 살 거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너 없으면 못살 것 같아’ 가 ‘너만 없으면 살 것 같아’로 변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결혼 1년 만에 아이가 생기고 최악의 입덧으로 9개월간 변기와 친구 하면서 토를 하고 출산 후, 이틀 만에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남편은 대전 최고의 조리원을 예약해주었지만, 결국 조리원 생활에서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힘든 몸조리와 예민한 육아로 저만 손해 보는 기분이랄까, ‘왜 나만 힘들고 남편은 결혼 전과 똑같이 즐겁게 사는 걸까’ 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20대 중반에 결혼했는데 남편과 아빠 역할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형이나 아버지가 없기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9월, 딸이 큰 사고가 있었고, 병원생활과 병가를 쓰면서 그동안 회사 일에만 집중하던 남편에게 가정생활에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을 자주 보는 것을 보고 전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쯤, 남편은 아빠학교에 가입해서 활동한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폰 잡고 있을 시간에 아이랑 눈 맞추면서 대화나 한번 더하라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남편은 딸과 생전 안 하던 놀이를 하나씩 시작하고, 의무적으로 읽어주던 책도 서점과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진심을 담아서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를 위한 여행지도 딸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모습을 서서히 보여주며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모든 일상이 딸의 중심으로 생각과 생활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큰 변화는 일 년 중 360일 정도 술을 즐기며, 분위기를 휘어잡던 남편이 금주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딸이 “아빠 왜 매일 맥주를 마시는 거지? 술 많이 먹으면 빨리 죽는데. 그리고 얼굴이 빨개져서 터질 것 같다. 술 안 먹고 얼굴 안 빨개졌으면 좋겠다” 라고 술 먹는 아빠를 인지하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제가 술을 줄여야 한다고 얘기를 해도 매일하는 잔소리로 듣길래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게 어떤 건지 다시 생각해 봐. 아무리 잘 놀아 주어도 아이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 당신의 모습인지 난 모르겠다고 “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그럼 내가 술을 끊어 볼게” 라는 한마디와 함께 지금 몇 달째 금주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분들은 술을 마시던 사람이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거든요, 그걸 해내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정말 아빠 학교의 힘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감사함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술을 즐기던 사람 주변엔 당연히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만 모여 있는 거 아시죠? 술자리 전화를 거절하는 모습을 볼때 친구도 필요 할 텐데 너무 외로워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아직은 술 먹는 자리에 참석해서 술을 먹지 않을 내공이 부족한지라 그 자리 자체를 피하고 있습니다. “나, 술 끊었어. 언제 밥이나 한 끼 해”라는 말에 들려오는 친구들의 비웃음에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변한 남편을 보면 그땐 다들 믿어주겠죠. 제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남편을 좋아하지만 존경스럽거나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도 저희 신랑을 존경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변화시켜준 아빠 학교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전에 남편이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 라는 물음에 ‘내가 왜 다시 당신이랑 결혼하는 실수를 하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젠, 남편 김*우*섭씨, 다시 태어나도 우리 결혼하자. 그땐 내가 먼저 고백할께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영 엄마가♡
» 하영이와 아빠의 싸인펜 놀이.
하영 아빠가 지난 12월 초에 아빠 학교에서 스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텝이 되면 남편이 아내에게 ‘남편의 칭찬 메시지’를 써달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위의 글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올해는 아빠 학교 9주년이 지났으며, 슬로건은 '전국의 모든 아빠에게 좋은 아빠가 되도록 도와주자'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도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도와주었습니다. 아빠 학교에서 활동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그저 네이버 카페에서 가입해서 활동하면 됩니다. 수업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아빠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1. 이웃 커뮤니티를 하라
올해 아빠 학교의 슬로건은 ‘이웃 커뮤니티를 하라’였습니다. 그 결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름의 300명이 참여한 물총 싸움과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3월에 칡 캐기, 숲 속에서 진행되는 생태교실, 가을축제인 수세미 만들기와 포도잼 만들기도 진행했고, 12월 초에는 80명이 참여하는 1박 2일 송년의 밤도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행사는 곧 이웃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했답니다. 이제 내 아이를 나 혼자 키우기는 점점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가족이 모여서 활동을 한다면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로 인해서 아이들의 사회성이 발달하게 됩니다.
» 아빠 놀이 학교 가을 축제에 참여한 하영이.
2. 유유상종 시스템
아빠 학교 내부에는 유유상종과 따라쟁이가 기본 시스템입니다. 카페에는 하루에 대략 20개 정도의 게시글이 올라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빠가 아이와 놀았던 이야기, 놀러 갔던 이야기 등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공부는 간단합니다. 게시글에 올라온 글을 슬쩍 본 후에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따라서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따라쟁이입니다. 그러면서 댓글로 소통하고, 공감하고, 교감하면서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지요. 또한 내용이 단순한 글이 아니라 대부분 사진을 첨부함으로써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정보를 보고 읽으면서 벤치마킹을 한다면 나도 모르게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혼자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우선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또한 혼자 하려고 하니 자신감이 결여됩니다. 책을 보고 놀이를 따라서 하려고 하면 어색하기에 쉽게 지칩니다.
» 아빠 놀이 학교 가을 축제에 참가한 하영이.
» 아빠 놀이 학교 가을 축제에 참가한 하영이.
아내가 남편에게 칭찬의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이 진정으로 좋은 아빠로 변하지 않으면 써주지 않습니다. 변화되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특별한 일은 좋은 아빠는 곧 좋은 남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를 저절로 잘 키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부부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결혼을 하지만 정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릅니다. 16년의 공교육을 통하여 국·영·수와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을 배우지만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소통과 배려와 공감과 교감에 대하여 배운 적도 없으며, 국가의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가르쳐준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출산율이 낮으니 인구절벽,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며 아이만 많이 낳으라고 채근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과 같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웃 아빠의 댓글을 보고 따라 하면 됩니다.
아빠 학교 10년을 운영하며 이런 엄마의 글을 받아보면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제공: 권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