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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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빠지도록 만드는 프로이슬러의 마법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어쩌다 우리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이렇게 책이 많은 집은 처음 봤어요!” 하며 감탄한다. 연이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겠어요”나 “공부도 잘하겠어요” 같은 추측과 질문이 섞인 말을 쏟아낸다. 간절한 눈빛의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모호한 대답을 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기는 하죠!”혹 아이가 책 읽기를 힘들어하고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건 집에 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책을 만난 경험이 없어서일 확률이 높다. 이럴 경우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안겨줘야 한다. 공부에 도움만 되는 책은 독서와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책도 읽을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고양이 학교>나 <왕도둑 호첸플로츠>같이 재미나는 동화를 권해보길 바란다.<왕도둑 호첸플로츠>를 쓴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는 두번이나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동화 작가에게 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읽어보자는 게 아니다. 작품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권의 동화를 남겼지만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왕도둑 호첸플로츠>다.유명한 도둑 호첸플로츠가 카스페를의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받은 커피콩 가는 기계를 훔쳐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스페를과 친구인 제펠은 힘을 모아 호첸플로츠를 잡고 커피 콩 가는 기계를 되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왕도둑인데 아이들 손에 호락호락 잡힐 리 없다. 도둑이 숨은 동굴까지 갔는데 그만 잡히고 말았다. 제펠은 사슬에 묶여 도둑의 장화를 닦는 신세가 되었고, 카스페를은 사악한 마법사 페트로질리우스 츠바켈만에게 코담배 한 자루에 머슴으로 팔려간다. 물론 이게 끝이면 프로이슬러가 아니다. 도둑의 소굴을 찾아갈 때 실은 변장을 하려고 카스페를과 제펠은 서로 모자를 바꾸어 썼는데, 호첸플로츠는 변장한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카스페를을 제펠로, 제펠을 카스페를로 착각하고 만다. 제펠의 모자를 쓴 카스페를이 마녀의 지하실에서 마법에 걸려 두꺼비로 변한 요정을 만나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카고 전개된다.동화책을 덮는 순간, ‘모자를 바꾸어 쓴다’는 대단치 않은 설정으로 이렇게 많은 사건을 만들어 내다니 프로이슬러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스포일러가 될 터라 모자 이야기를 더 들려주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해주길).프로이슬러는 동네 이야기꾼으로 불렸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책은 내 인생의 그 어떤 책보다 가장 중요했다”고 회고하곤 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마법에 걸려 두꺼비로 변한 요정, 마법의 반지 같은 판타지가 술술 흘러나온다. 물론 옛이야기 그대로는 아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드는 장치로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이를 통한 반전이 감칠맛 난다.프로이슬러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러므로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지는 오직 프로이슬러만이 알 뿐이다. 이런 대결을 경험한 아이라면 머지않아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