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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디지털 포로’로 만드는 어른들의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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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기획]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폭설이 쏟아지던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점장은 기자에게 스마트폰 예찬론을 쏟아냈다. “그냥 핸드폰 사가시면 아이가 쓰지도 않아서 무용지물이 돼요. 요즘 세상에 다 카톡(카카오톡) 하지, 어떤 아이가 서로 전화를 한답니까?” ‘초등학교 3학년에게 휴대폰을 사주려고 하는데 무엇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점장은 우선 스마트폰을 권했다. “스마트폰을 쓰기엔 어리지 않으냐, 피처폰(통화가 주 용도인 스마트폰 이전 세대 핸드폰)은 어떠냐”고 묻자 설득이 뒤따랐다. “지금 스마트폰 나오는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3개월이면 다음 모델이 나옵니다. 지금 최신폰을 사도 3개월 뒤면 구형이에요. 그런데 피처폰을 사주면 아이가 얼마나 뒤처지겠습니까? 나중에는 못 쫓아간다니까요.” 그래도 피처폰을 보여달라고 하자 화려한 최신 스마트폰들 왼편에 놓인 폴더폰 하나를 소개했다. “한 모델뿐입니다. 소비자들이 안 찾는데 제조사들이 만들 이유가 없죠.”

 서울시내 5곳의 대리점을 임의로 골라 문의한 결과 정도와 설득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매장이 초등학생 자녀의 첫 전화로 스마트폰을 권했다. “구형 폰에는 보조금이 안 나오기 때문에 값이 결국 스마트폰이랑 똑같습니다. 같은 값에 왜 옛날 것을 쓰세요?”(관악구 봉천동) “아이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찾는데 혼자 피처폰을 찾으세요?”(마포구 신정동)

로봇·태블릿 등 유아전용 기기들 
교육 효과 내세워 판매 열올리지만 
지나친 사용 위험성 언급은 없어 
“부모·아이들에게 책임 돌리기 앞서 
기업이 먼저 부작용 알릴 책임 필요”

 디지털1.JPG» 엘지유플러스의 ‘홈보이 G패드’. 각 회사 제공.

■ “새 제품 써야 뒤지지 않죠” 마케팅 
 대리점들의 스마트폰 권장을 추동하는 힘은 대기업들의 시장 경쟁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국내외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전자와 추격자인 엘지(LG)전자 등 제조업체와 에스케이텔레콤(SKT), 케이티(KT), 엘지유플러스(LGU+) 등 3대 통신사가 얽혀 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들 대기업은 판매점에 지급하는 보조금에 차이를 두는 방식으로 대리점들의 단말기와 통신상품 판매를 특정 제품으로 유도한다. 고가의 신형 스마트폰과 고액 요금제 상품들에 대해서만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홍진배 통신이용제도과장은 “고액 요금제의 스마트폰을 팔 때와 저가 요금제 제품을 팔 때 대리점이 받는 보조금은 크게 몇배나 차이가 난다. 할당을 못 채우면 불이익을 받기도 하는 판매점 입장에선 고가 제품을 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과장은 “초등학생에 대한 스마트폰 권유 역시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따라갈 뿐이라고 하지만 기업들의 경쟁과 소비자 요구는 맞물려 있다. 기업들은 신제품이 나오면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면서 경쟁한다. 정보통신 기기와 기술에 밝지 못한 어린 학생과 일부 부모들은 실제 필요한 것보다 ‘새 제품을 써야 뒤지지 않는다’는 기업들의 마케팅에 현혹되기 쉽다. 김대진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텔레비전이 인류에게 50년에 걸쳐 도입됐다면 스마트폰은 6~7년 만에 따라잡았다. 새 미디어가 다음 세대 정신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데, 기업들의 판매 전술은 훨씬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의 절반(48.8%)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2011년 여성가족부 조사 때 보유율은 20%로 2년 사이에 갑절 넘게 늘었다.


 
디지털2.JPG» 통신·전자업체들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장점만 홍보하고,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거나 알리지 않는다. 케이티의 교육용 로봇 ‘키봇2. 각 회사 제공.

■ ‘부작용’ 언급 없는 아이들 기기 
 제조·통신사들은 아이들 전용 제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교육 방식은 현재 교육계와 기술·산업계에서 뜨거운 논쟁 주제다. 선진 교육기법이냐, 아이들 정서 발달에 대한 위협이냐 논란이다.

 하지만 교육 효과를 선전하는 기업 제품들은 이에 대한 고민에서 비켜나 있다. 대표적으로 케이티의 ‘키봇2’와 삼성전자의 ‘갤럭시탭3 키즈’, 엘지유플러스의 ‘홈보이 G패드’ 등을 들 수 있다. 키봇2는 로봇 형태의 미디어 기기로 디지털 화면·빔프로젝터로 재생하는 교육 콘텐츠와 홈모니터링(외부에서 영상으로 집과 아이 상황 확인), 책 읽어주기 등 돌보미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2012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로봇기반교육지원단의 ‘R-러닝 인증’을 받아 어린이집 등에도 보급됐다. 갤럭시탭3 키즈는 갤럭시탭3에 유아·아동용 콘텐츠와 부모의 통제 기능을 탑재한 제품이다.

 문제는 이들 기기의 장점 못지않은 위험성이 있지만 부모와 보호자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신동원 성균관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아기 뇌 발달에는 오감을 활용한 교육이 중요한데, 이들 제품은 화면과 소리를 위주로 해서 아이가 시청각 자극에만 치중할 위험이 있다. 또 아이가 원하는 대로만 반응하다 보니 사회성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나 친구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능들을 갖춰, 그렇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많이 접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키봇2 등의 설명서를 보면 여느 전자제품과 마찬가지로 제품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교육상 주의점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안전의 경우에도 기기로서 어린이 사고 위험에 대해 다뤘을 뿐이다. 신 교수는 “1시간 미만 사용 등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3.JPG» 미국의 장난감업체 피셔프라이스가 지난해 말 출시한 아기요람. 아기 머리맡에 아이패드를 부착할 수 있는 80달러짜리 이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소비자들로부터 영아의 균형적 발달을 저해하는 제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업체는 디지털 환경에 어울리는 교육적 제품이라고 강변했다. 피셔프라이스 누리집

■ 미국선 “아이 발달 유해” 압력 거세 
 글로벌 완구 제조사인 ‘피셔프라이스’는 지난해 12월 아이패드를 아이의 코앞에 가져다 둘 수 있는 아기요람을 출시해 소비자단체를 경악하게 했다. 미국 시민단체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년기를 위한 캠페인’(CCFC)은 “아이의 건강한 발달을 방해한다”며 즉각 판매 중지를 회사에 요청했으나 업체가 “교육 효과”를 주장하면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디즈니는 2009년 36개월 이하 유아 대상의 ‘교육용’ 디브이디(DVD) ‘베이비 아인슈타인’을 팔아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가 역풍을 맞고 구매자 전원에게 환불을 발표한 바 있다. 유아 발달에 도움이 되고 교육적이라는 광고가 기만이라는 이 단체의 비판에 굴복한 것이다.

 게임 역시 아이들에 대한 기업의 상술이 심한 분야다. 현재 인기순위 상위의 온라인 게임 대부분은 방학을 맞아 ‘100% 당첨 찬스’, ‘기간 한정판매’ 등 특별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자극적 의상의 연예인 사진과 함께 ‘뽑기’로, 어린 고객들의 유료결제를 유혹한다. 디지털 육아에 관한 누리집 ‘함께하는 공부’를 운영하는 최호찬씨는 “우리 아이들은 상업적 메시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학습이 안 된 상태에서 무차별로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게임기획자는 “국내 온라인 게임들은 특성상 아이들을 중독시키는 재미 요소가 꼭 들어간다. 게임사들은 이를 통해 돈을 버는 만큼 부모 대상 가이드북 등 자발적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문제가 발생하면 늘 부모의 책임, 개인의 책임이 먼저 부각됐다. 큰 기업들은 자사 제품으로 인해 어떤 영향이 미칠지 개인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판매 기업이 알리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육아’ 가르치는 통신사 “기업의 이해보단 사회적 책임”

‘디지털 페어런팅’ 잡지 만들어디지털4.JPG» <디지털 페어런팅(육아)>
부모에 유해 콘텐츠 등 정보제공
“인터넷 안전교육 어린 시기 효과적
정부·기업·학교 등 각자 역할 해야”

 영국의 보다폰은 세계 3대 이동통신회사로 대기업 가운데 드물게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에서 중독 위험을 비롯한 안전 문제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펼쳐왔다. 보다폰의 전세계 휴대전화 가입자는 지난해 6월 기준 4억5360만명으로 중국 차이나모바일, 브라질 에어텔에 이어 3위다. 이 회사는 10년 전인 2004년 영국에서 어린이 유해 콘텐츠 온라인 필터(여과장치)를 가장 먼저 도입한 데 이어, 부모와 아이들에게 디지털 세상 접근법에 대한 최근 소식과 전문가 조언 등을 소개하는 온·오프라인 잡지 <디지털 페어런팅(육아)>(사진)을 발간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보다폰 영국 본사에서 소비자 정책과 콘텐츠 기준에 대한 최고책임을 맡고 있는 리사 펠턴과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업의 사회책임에 대해 물었다.

-보다폰의 아동·청소년 디지털 안전 관련 활동에는 무엇이 있나?
 “보다폰의 정책은 크게 두 축이다. 첫째는 부모의 육아를 돕는 도구로, ‘부모 통제’ 기능(컴퓨터에서 사용시간과 접속 누리집 등을 조절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가디언’ 앱 등이다. 가디언 앱은 무료이며, 모바일 환경에서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

 여기에 교육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도구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디지털 페어런팅’ 누리집(vodafone.com/parents)은 아이에게 부적절한 콘텐츠와 사회관계망과 연계된 위험 등 관련 최신 자료를 부모에게 제공한다. 또 어린이 인기 누리집인 ‘모시 몬스터’에 나오는 몬스터 주인공들을 활용해 인터넷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을 설명하는 모시 몬스터 카드를 만들어 배포했다. 안전의 중요한 이슈들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 위해 비영리 시민단체와 학계의 조언을 받아 함께 만들었다.”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평가는?
“성공적이었다. 디지털 페어런팅은 3차례에 걸쳐 종이잡지로도 발행했는데 지금까지 100만부를 찍었다. 대부분 학교에 보냈고, 그곳에서 다시 학부모 등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됐다. 호응이 좋아 앱 버전도 만들었다. 가디언 앱은 20여개 국가에서 50만번 넘게 내려받기를 기록했다. 모시 카드도 4개국에서 40만개 이상 배포했다. 필요한 학교에서는 무료로 파일을 내려받아 직접 만들 수 있다.”

 이런 활동이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어떤 득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으나 그에 대한 뚜렷한 답은 피했다. 어맨다 앤드루스 대외협력 매니저는 “이 사업은 기업이 이해를 고려해서 내놓은 정책이 아니다.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다폰과 출판 작업을 진행한 영국 시민단체 ‘페어런트존’에 따르면 보다폰은 잡지 발행에 100만파운드(약 17억5000만원)가량을 투여했다고 한다.

-왜 어린이에게 좀더 안전한 인터넷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매력적인 디지털 기기가 쉴새없이 등장하는 요즘, 기술을 이해하고 안전을 지키는 것은 가정에 새로운 도전이다. 교육적 도구들도 이런 빠른 변화에 따라갈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 안전은 어린 시기(3~13살)에 가르칠수록 효과적이다. 정부, 기업과 학교가 모두 각자의 강점을 살려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상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앞으로는 기업과 부모, 또 부모와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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