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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한국판 아라비안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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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런 입말투에 황당한 얘기
사람·동물·도깨비 뒤섞인 놀이판
유쾌한 분방함과 삶의 통찰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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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이의 칠일장 1, 2 

천효정 글,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각 권 9500원 

옛날에 이름 없는 아이가 살았다. 이름이 없다 보니 저승사자가 부르지를 못해 잡아가지를 못했다나. 그래서 삼백 년을 살았는데, 저승사자도 만만치 않았던지라 절묘한 꾀로 삼백이라는 이름을 자기 입에서 나오게 만들어 황천길로 데려갔다는 이야기.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삼백이의 칠일장에 동물 귀신들이 상주로 나서 삼백이를 각자 회고하는 것이다. 한국 옛이야기 버전의 소규모 아라비안나이트라고나 할까? 능청스러운 입말투의 글에 실린 황당하고 엉뚱하고 우스운 이야기 여섯 편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달걀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뱀 알까지 삼켜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 아가씨, 연날리기의 달인이 되어 하늘 높은 곳 연나라까지 날아갔다 온 아이, 안져 할멈과 못져 할멈의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티격태격 겨루기, 즐기던 담배 때문에 왕좌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다가 간신히 금연에 성공한 호랑이, 도무지 무서운 걸 모르는 총각에게 겁을 주려다 오히려 골탕 먹는 도깨비….

사람과 동물과 도깨비가 뒤섞여 한바탕 놀이판을 벌이는 듯한 이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도 아주 다양하다. 임금은 임금답고 개는 개다워야 한다는 반듯한 교훈을 내놓는가 하면, 배에 난 구멍을 막지 않아 배를 침몰시킨 사공답지 않은 사공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또 “영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생각지 못한 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며 슬쩍 눙치기도 한다. 작가는 두 할멈의 고집은 딱 꺾어 놓으면서 죽어라 연만 날리는 아이는 흔쾌히 연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낸다. 뱀 알을 통째로 삼켰다 고생한 아가씨 이야기는, 그러니까 편식과 식탐에 대한 경고일까? 게다가 아이들 이야기에 웬 금연 메시지?

바로 이 유쾌한 분방함이 다른 ‘옛이야기 풍’ 창작동화와 구별되는 이 책만의 개성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작가는 어린이 책이라면 으레 교훈이나 뭔가 배울 만한 것을 얻으려 드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아이들이 온전히 이야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라고 권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이 그저 말초적인 재미만을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 무거움과 가벼움, 공포와 유머가 한데 어울려 인생에 대한 통찰을 권하는 태도도 있다. 옛것과 요즘 것, 우리 것과 외국 것이 섞인 화소들은 문학 체험의 지평을 넓혀줄 만하다. 열네 번째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초등 3학년부터.

김서정 작가·중앙대 강의교수, 그림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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