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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봄은 무엇이든 계획을 세우고, 무모한 계획일지라도 저질러보게 만드는 계절이다. 오행 중 목(나무)의 기운처럼 언 땅을 뚫고 돋아나오는 새싹의 생명력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여리고 약해 보여도, 어린이들처럼 강인한 생명력 덩어리는 없다. 봄에 태어나는 식물들은 그래서 약으로 사용된다.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도 이런 봄나물들을 일 년 내내 저장하여 밥상에 올렸다. 멀티비타민 미네랄 영양제를 천연으로 복용한 셈이다. 특히 대보름을 다양한 나물과 견과를 먹어온 풍속은 우리의 음식문화가 자연의 흐름과 이치에 맞게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다. 지난해 쌓인 묵은 피로와 독소들을 긴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을 맞아 섬유질이 풍부하고 목기가 왕성한 녹색채소들로 해독을 시키며 간의 건강을 돌보는 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아직 새순이 돋지 않은 산천에서 녹색채소를 얻는 방법은 건나물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리라. 요즘처럼 하우스 재배가 가능한 시절이 아니었으니 한겨울, 초봄에 녹색채소를 듬뿍 섭취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전통적인 나물 요리의 맛내기 방법은 단순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입맛과 취향이 다양한 만큼 굳이 전통적인 방법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본래의 재료가 가진 고유의 향기, 고유의 식감, 고유의 맛을 더 잘 살리는 양념을 하는 게 관건이리라. 제철에 나는 나물들은 질이 부드럽고 신선하여 약간의 간만 해도 맛이 좋다. 새순으로 올라오는 것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살짝 데치는 게 좋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데쳐서 채소 자체의 색이 바래지거나 질이 너무 물러지면 영양이 파괴된다. 여린 채소는 그대로 먹거나 살짝 김만 쐬듯 데치고, 조금 억센 채소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어 색이 선명해 질 때까지 데쳐 무치는 게 좋다. 나물맛은 짠맛, 매운맛,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면 좋다. 짠맛은 소금으로 낼 것인지 간장이나 된장으로 낼 것인지 정하고, 매운맛은 고춧가루를 넣을 것인지 고추장에 버무릴 것인지 정한다. 고소한 맛은 참기름과 들기름, 깨소금이나 들깨가루 등으로 이용하면 된다. 취향에 따라 단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나물에 약간의 설탕을 넣는 경우도 있고, 도라지나 무처럼 생채를 무칠때는 새콤한 맛을 곁들여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기린의 채식레시피]
봄나물 효능과 맛내기
<생나물류>
·시금치나물
가장 흔하고 단순한 요리지만 조미료에 의지하면 나물 무치는 솜씨가 늘지 않는다. 집간장에 참기름, 고춧가루 조금으로 담백한 맛을 내보자. 시금치에는 옥살산이 함유되어 있어 많이 먹으면 체내에서 칼슘과 결합하여 결석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리 시 칼슘이 풍부한 참깨를 넣어 수산형성을 막아주는 것이 좋다. 소금을 넣은 물에 살짝 데쳐서 초록색이 선명할 때 꺼내어 나물로 무친다. 취향에 따라 단맛을 원하면 찹쌀고추장으로 양념하거나 매실청을 조금 넣는다. 가닥가닥 손으로 잘 손질하고, 분홍빛이 도는 뿌리도 잘라내지 말고 그대로 이용한다. 시금치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철분이 다량 들어있어 빈혈예방에 좋다. 엽산도 풍부하여 치매예방과 중풍치료에 도움을 준다.
·냉이나물
냉이는 간 기능을 돕고 비타민A가 풍부해 시력을 좋게 해준다. 칼슘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도 좋으며 정신 안정 효능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의 생리불순도 다스려준다. 된장으로 간을 하고 청국장가루를 조금 섞으면 부드러운 맛이 난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향을 낸다. 마지막에 마늘로 향을 더하고 통깨를 뿌려주면 깔끔하다.
<새순 건나물류>
건나물은 말려진 상태와 말려지기 전의 품질에 따라 조리방법이 조금씩 틀리다. 부드러운 새순일 때 말려진 것들은 너무 푹 삶거나 오래 물에 담궈두면 영양분이 손실될 뿐 아니라 맛도 없다. 새순나물 종류들은 생나물처럼 데치는 기분으로 질감이 부드러워지면 바로 물에서 꺼내어 무친다. 집간장이나 된장, 소금으로 간하고, 들기름이나 참기름으로 마지막 향을 낸다. 마늘이나 파는 가급적 맨 마지막에 조금 넣고, 통깨를 뿌려주면 좋다. 깨소금을 내어 뿌려도 좋지만 나물이 지저분해 보인다. 경우에 따라 붉은고추를 잘게 다져 고명처럼 얹거나 실고추로 멋을 내면 한결 맛스럽게 보인다.
·다래순나물
다래순은 열을 내리고 갈증을 멈추게 하며 이뇨작용도 한다. 만성간염이나 간경화증으로 황달이 나타날 때, 구토가 나거나 소화불량일 때도 좋다. 비타민 C와 탄닌이 풍부해서 피로를 풀어주고 불면증·괴혈병에도 치료효과가 있다. 여린 잎을 말린 것이므로 오래 삶지 말고, 소금과 들깨가루, 들기름을 넣어 부드럽게 무치면 맛있다.
<취나물, 고사리나물 등의 건나물류>
찬물에 담궈 먼지나 잡질을 우선 한번 헹궈낸 후 다시 물을 넣고 삶는다. 질긴 나물은 조금 오래 삶아야 부드러워지므로 나물의 상태를 보아 불을 끄는 게 좋다. 쓴맛이 강한 나물은 불을 끈 상태로 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꺼내어 헹군 후 양념한다. 부드러운 나물은 불을 끄고 체에 받쳐내어 헹궈낸 후 양념한다. 취향에 따라 된장이나 집간장, 소금으로 간하면 된다.
·취나물
취나물의 고유의 쓴맛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해주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숙취해소에 좋으며 칼륨이 풍부하여 체내 염분을 배출시키고 감기예방 및 섭생에도 좋은 식품이다. 약간 뻣뻣한 맛도 취나물 고유의 고소함을 주므로 너무 푹 삶지 않도록 한다. 된장이나 집간장에 담백하게 간을 하고 들기름으로 무치는 것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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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고사리는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이뇨작용이 있으며 해열, 살균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고사리는 통통한 것이 맛있다. 담백하게 무치려면 집간장에 참기름으로만 간하고, 고소하게 먹고 싶으면 들깨탕을 만들어 국물있게 먹어도 좋다. 들깨탕은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동량 섞어 국물을 내어 끓이면 된다.
적당하게 부드러운 질감과 고유의 향기, 식감이 살아있는 나물맛은 독특한 기쁨을 준다. 자연과 교감하는 맛이랄까. 입 안에서 부드럽게 감겨오는 자연의 풍미가 정말 마음에 든다. 요즘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 나물요리는 고기요리보다 더 귀한 고향집밥 음식이 되어버렸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나물을 상에 올려 간 건강도 돌보고, 풍부한 섬유질로 장 건강도 살펴보자. 나물요리가 자주 오르는 밥상을 먹는 아이는 틀림없이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