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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노릇 하게 된 바르톨로메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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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00122492301_20130520.JPG»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사계절 펴냄(2005)

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이었으나 속화를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기록 외에는 삶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대체 어떤 이유로 당대를 풍미한 도화서 화원이 역사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걸까? 이 궁금증을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소설이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다.

어린이책에도 이런 책들이 있다. 한윤섭의 <서찰을 전하는 아이>, 이현의 <1945, 철원>, 배유안의 <초정리 편지>는 역사를 배경으로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킨 작품들이다. 또 한 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다. 십대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로는 분량이 많은 편이지만, 주인공 바르톨로메에게 감정이입하는 순간 그야말로 단숨에 읽힌다. 바르톨로메가 과연 어떻게 될지 읽는 내내 가슴을 졸이고, 읽고 나면 깊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소설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세계의 열강으로 군림하던 17세기 펠리페4세 치하의 스페인을 무대로 하여 실제 인물인 마르가리타 공주와 화가 벨라스케스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펼쳐간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마부로 일하는 아버지 후안은 가족들을 마드리드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바르톨로메가 걱정이다. 난쟁이 바르톨로메는 걷는 것보다 네 발로 기는 것이 더 편할 정도로 몸이 일그러져 있다. 당시 장애인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에게 마드리드에 가면 하루 종일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집 안에 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집에 갇혀 있던 동생을 불쌍하게 여긴 형과 누이는 아버지 몰래 그에게 글을 가르치기로 한다. 형은 동생에게 “글을 배우면 미래가 생긴다”고 용기를 주고, 처음에는 바르톨로메의 모습이 흉측하다고 여겼던 크리스토발 수사조차 배움에 대한 깊은 열망을 지닌 소년을 대하며 놀란다.

하지만 빨래통 속에 숨어 글을 배우러 다니던 중 마르가리타 공주의 마차와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난다. 급한 마음에 손과 발로 기어 도망을 치던 바르톨로메를 본 공주가 “저 인간 개를 갖고 싶어”라고 말하며 일은 꼬인다. 바르톨로메는 꼬리와 커다란 귀가 달린 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멍, 멍” 소리를 지르고 밤에도 개처럼 바닥에 엎드려 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나는 개가 되기 싫어요”라고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공주님이 ‘인간 개’를 원하니까. 절망이 있다면 희망도 있는 법. 인간 개 노릇을 하던 궁중에서 바르톨로메는 화가 벨라스케스를 만나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또한 그 유명한 그림 <시녀들>의 모델이 된다.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게 이야기를 짜 넣었는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그림 속 개가 정말 바르톨로메가 아닐까 싶을 만큼 구성이 치밀하다. 무엇보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바르톨로메의 몸부림이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

우리는 늘 자신보다 강한 사람의 편을 들고 강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데 익숙하다. 책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조연보다는 잘생기고 돈 많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게 편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바르톨로메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주변의 약자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한겨레 신문 2014년 3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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