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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폭풍
1998년 1월 6일부터 1주일 동안 캐나나 퀘백 지역을 휩쓴 얼음 폭풍은 캐나다 지역의 최악의 자연재해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최장 40일간 전력이 끊겼으며 대피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캐나다 맥길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수잔 킹 교수는 얼음폭풍 기간에 임신을 하고 있었던 여성 150명의 아이들을 주기적으로 추적하였다. 가장 먼저 나온 결과는 얼음 폭풍 기간 중에 스트레스 사건을 많이 경험한 임신부일수록 아이의 출생체중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임신부는 예상치 못한 급성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궁 혈관이 수축되고 태아에게 갈 혈류가 감소된다. 오랫동안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태아는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자궁 내에서 40주를 채우지 못하고 조산하게 된다. 태아 입장에서는 자궁 안에 남아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일단 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생후 24개월에 실시한 평가에서는 임신부의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인지력과 언어력이 떨어졌다. 연구자들은 6세 이후에는 태아기 때 영향은 사라지리라 예상했지만 그 영향은 지속되었다. 6세에는 얼음폭풍 기간 중 극심한 고통을 겪을수록 주의력, 행동장애를 많이 보였고 인지, 언어발달도 느렸다. 11세에는 뇌 MRI를 찍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임신부의 아이들은 해마 영역이 보통 아이들보다 작았다. 해마는 학습과 감정, 그리고 스트레스 조절에 중요하다. 13세에는 임신부의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아이들의 불안과 우울 같은 증상이 더 많았다.
태아에서 비롯된 정신질환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신질환도 유발한다. 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루이지애나를 강타한 허리케인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받은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자폐증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높았다. 허리케인이 들이닥칠 무렵, 임신 5개월, 6개월 또는 9개월이었던 아이들에게서 자폐증 발생률이 더 높았다. 헬싱키대의 정신건강의학과 마티 휴튜넨(Matti Huttunen) 교수에 의하면 태아기 때 아빠가 전사한 167명 아이들과 생후 12개월 이내에 아빠가 전사한 168명 아이들을 비교한 결과, 태아기 때 아빠의 사망을 겪은 아이들이 더 높은 정신분열증 및 행동장애를 보였다. 뉴욕대학교 돌로레스 말라스피나(Dolores Malaspina)는 1964-1976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8만 9,000여 명의 아이들을 추적한 결과 아랍-이스라엘 6일 전쟁이 발발한 1967년 6월에 임신 2개월이었던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정신분열증을 보일 확률이 높았다.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는 4.3배 더 높은 정신분열증 발병률을 보였다.
임신 시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를 요약해 보면, 1) 과도한 스트레스가 임신을 위험하게 하며, 2) 태뇌에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고, 3) 태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유발하며, 4) 태아가 미래에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신 중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태뇌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왜곡시켜 아이가 쉽게 화를 내거나 자제력이 떨어지는 등 자기조절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정신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코르티솔
예후다는 9.11사건에 노출되었던 38명의 임신부와 그들의 12개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기초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하였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보인 임신부들은 태어난 아이들과 함께 기초 코르티솔이 낮았고, 특히 임신 3개월 중에 9.11사건을 겪었던 임신부와 그 아이들의 수치가 가장 낮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초 코르티솔이 낮을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임신부의 코르티솔이 어떻게 태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물질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증가하지만, 코르티솔이 일정한 양에 도달하면 뇌에 코르티솔의 생산을 중단하라고 신호를 보내 스트레스를 조절한다. 임신부가 코르티솔이 높으면 태아의 코르티솔도 높아지는데, 출생 후에도 코르티솔의 수준은 유지된다. 따라서 과도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반응을 태아기부터 증가시켜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이 위험할 때 외부의 위험에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때는 증가된 스트레스 반응이 부적절하고 치명적이다. 이러한 아기들은 식당에서 잘못된 주문에 격분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하는 아이로 자라날 수도 있다.
뇌의 시상하부와 아드레날린 시스템의 작용은 혈액내 코르티솔의 양을 결정한다. 코르티솔의 양은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된다. 코르티솔이 너무 적으면 근육이 약해져서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 없고, 코르티솔이 너무 많으면 뼈가 약해지고 신경이 쇠약해지며 위궤양 같은 질병에 걸리게 된다. 모든 스트레스가 태아에 나쁜 것은 아니다. 임신부의 코르티솔의 수준이 적당하다면 태반은 그것이 태아에게로 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과도한 경우에는 높은 코르티솔이 여러가지 세포를 약하게 만들고, 동맥경화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 많은 장기와 세포들은 코르티솔 덕분에 상처에서 회복되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이들 세포의 빠른 노화와 파괴를 일으킨다. 특히 신경세포가 취약한데, 과도한 코르티솔은 뇌하수체에 빠른 노화를 일으켜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일반적으로 혈중 코르티솔 수준은 하루 종일 변화한다. 코르티솔은 이른 아침에는 높이 올라가서 최고조에 달하고, 이후 서서히 떨어져서 한밤중에 잠을 잘 때는 최저치에 도달한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의 코르티솔 양은 하루 내내 거의 변화가 없다. 하루 종일 코르티솔의 수준이 유지된다는 것은 스트레스 반응이 항상 켜져 있음을 뜻한다. 뇌가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여 작동을 멈추고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볼 때, 임신부들은 더 취약하다. 임신부의 몸은 새로운 존재인 태아를 거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임신부의 면역체계는 억제되고 그 결과 임신부와 태아 모두 감염에 더 취약해진다. 야크교수는 임신한 쥐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임신에 나쁜 영향을 주는 ‘종양괴사물질’이 크게 증가하고, 임신을 유지하는 ‘면역학적 방어기전’이 억제되는데 이로 인하여 쥐는 자연유산을 한다고 보고하였다. 실제로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개 파열, 우울증 유사 행동, 과민한 스트레스 반응, 주의력 결핍, 충동성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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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가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
태뇌는 임신 중 자궁 안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자극을 받지 못하면 여성의 뇌로 발달한다. 즉 태아의 뇌가 남성이 될지, 여성이 될지는 임신 중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임신 중기부터 태아의 고환에서 분비된다. 그런데 이 때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에 문제가 생겨 뇌의 성 분화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임신 기간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어미 쥐에게서 태어난 수컷 새끼 쥐가 여성스러워졌고 그 행동에서 남성다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즉 스트레스로 인해 수컷 쥐의 고환은 작아지고, 이때 다량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은 남성 호르몬 중 비교적 작용이 약한 안드로스텐디온(Androstenedion)이다. 말하자면, 강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감소하고, 약한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스텐디온의 분비가 증가해 결과적으로 수컷 새끼 쥐의 남성스러움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뇌 발달 장애는 남아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실 ADHD도 남아에게 훨씬 많다. 이 원인에 대해서는 유전적 요인이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뇌 성숙도 면에서 남아가 여아보다 느리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남자태아는 뇌신경의 성숙이 여아보다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이다. 따라서 남자태아의 경우, 임신 중 스트레스 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가족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 사회가 배려를 해 주어야 하며, 더 나아가 국가에서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