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은 백일 넘어서까지 거의 안겨서만 잠을 자는 까다로운 아이였습니다. 5개월 지나서야 서서히 수면 시간이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세 살 터울로 딸아이, 희진이를 낳았습니다. 아들에 비해 딸은 첫돌까지 그저 “순둥이” 였습니다. 스윙에 앉혀서 우유를 주면 조용히 먹고, 전동 장치 덕분에 스윙 위에서 낮잠도 잘 자고 보채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엄마 도움 없이 두 돌까지 저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 냈습니다.희진이가 26개월 지나서 아무 걱정 없이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저는 IT 분야 전문직에 무사히 복귀하였습니다. 겨우 2개월 정도 지났는데, 원장님께서 아이가 좀 이상해 보인다고 전문 진단을 권유하셨습니다. 검사 결과가 너무 뜻밖이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순둥이 희진이가 "유사자폐"판정을 받았습니다. - 진단 직후 저는 직장을 접었고, 다시 전업주부로서 양육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의 현장 보고에서도 희진이의 조용함은 두드러집니다.
엄마 표현대로 아이가 너무 순해서 적응기 없이 곧 바로 종일반이 가능했고, 영아반 담당선생님은 희진이가 전혀 보채지를 않아서 손이 덜 가는 편이라고 칭찬까지 했습니다. 또래에 비해 말수도 적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지고 말썽부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전혀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고, 6주가 지나도 혼자 누워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발육이 늦다고만 여기다가, 교사들 사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뒹굴뒹굴 놀다가, 심한 날은 겨우 앉아 밥을 먹고 다시 누워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은 바닥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하여 등받이 있는 식탁의자를 이용하거나, 선생님이 아예 무릎에 앉혀서 밥을 먹이곤 했습니다. 희진이는 바깥놀이나 산책을 나가면, 자주 넘어지고 조금 걷고 나면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어린이집의 생활 관찰에서 희진이의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보여서, 원장 입장에서 엄마에게 전문 검사를 권유했던 것입니다.
진단 후 약 20개월 만에 희진이의 상태가 아주 빠르게 좋아지고 있는데, 그 묘책은 아주 단순(!)해 보입니다. 영유아시기의 발달에서 놓쳐버린 것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희진이에게 조금씩 채워주고 있습니다. 매일 산책을 통해 아이는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희진이가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여 바깥 활동과 산책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래도 원장님은 ‘희진이의 특별 프로젝트’라고 말하며 산책을 함께하며 그 길이를 점점 늘려가고 있습니다. 원장님의 추천에 따라 주말에도 가정에서 규칙적인 산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래와 비교하면 아직도 여러 면에서 느린 발달을 보이고 있지만, 차츰 상호 작용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외마디라도 표현 회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친구들 놀이에 끼어드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아이가 산책길에서 예전처럼 자주 넘어지지도 않고, 즐거워합니다. 바깥 활동에서 희진이의 “유사자폐증”은 거의 극복된 것처럼 보입니다.
심리학과 의학에서 "유사자폐"라고 불리는 증상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제는 교육학적으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사자폐는 표현 그대로 아이가 세상에 대하여 스스로를 닫아버린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영유아기의 발달과정에서 세상과의 관계 맺음을 이루지 못하고 내면을 닫아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유사자폐증으로 발전되기까지 영아기의 양육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될 때가 많습니다. 즉, 생후 1-2년간 주 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형성과 동적 움직임의 결핍입니다. 게다가 일상 생황에서 움직임의 기회가 불충분하면, 결과적으로 언어발달의 부진으로 이어집니다.
희진이의 사례에서 생후 1년간의 양육과정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신생아 때 오빠보다 훨씬 순해서 돌봄이 수월했던 것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자주 놓치게 만든 것입니다. 예시적으로 바쁠 때마다 전동 스윙에 자주 앉혀놓고 젖병만 물려준 것, 우유 먹고 낮잠까지 푹 자고 일어나도 혼자 있게 내버려둔 점 등이 순둥이였기 때문에 주변 어른들이 믿고 혼자 내버려 둔 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것들이 신생아 시기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과 신체 발달을 위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유아기의 발달은 아이 혼자 조용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 어른들의 충분한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환경의 자극을 받지 못하면, 신체발달을 위한 기초 감각들 (특히 움직임과 균형 잡기 능력) 역시 충분하게 깨어나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생후 3년간의 발달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상의 움직임입니다. 그 기회가 제한적이면, 아이에게 다양한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움직임이 언어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뇌의 인지작용을 위해서도 이것은 지능발달의 자극제 역할을 합니다. 더욱이 아이는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몸의 균형을 지각하게 됩니다. 움직일 때 불균형 상태가 있어야 몸의 균형 잡기가 훈련되므로, 걷기와 놀이에서 소위 '방해물'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평지 뿐 아니라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것은 움직임의 발달과 균형 감각의 발달을 위해 효과적입니다. 아이는 균형을 안정적으로 취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하며 몸을 조절하고 상황 대처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내적 자신감이 길러지고, 자기 확신과 독립심이 늘어납니다.
Q.어쩌지요? 32개월 남아입니다. 아이는 거의 말을 못하고, 의미 없는 소리를 내면서 뛰어다니거나 공격적입니다.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형성을 못합니다. 사실 남편도 유아기에 말이 느렸다고 시어머님이 알려주셔서 별로 걱정 안하다가,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지난주 검사를 받았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에 들어있다고 하네요. 검사결과를 알려주면서 언어치료를 추천받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멀어서 걱정입니다. 언어치료 대신 집근처에 있는 놀이치료나 미술치료실을 다녀도 좋을까요?A."자폐 스펙트럼"이라 해도 꼭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언어치료가 언어촉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유아기의 언어 습득은 일상생활에서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토대로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 이야기 들려주기를 규칙적으로 하시면 효과적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움직임의 기회를 많이 주셔야합니다. 가능하면 규칙적인 산책과 바깥놀이를 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시면, 그것이 유료 치료를 능가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