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정지원 글, 노인경 그림 / 문학과지성사·9500원
사람들이 잠든 시간 바퀴벌레들의 축제는 시작된다. 한달에 한번 모든 바퀴벌레가 화장실에 모여서 수컷은 맘껏 자신의 비행실력을 자랑하고 암컷을 선택해 짝짓기를 한다. 하지만 암컷 바퀴벌레 ‘아늑’은 벌써 5번째 짝짓기 축제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어릴 때는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누구보다 인기가 많았지만, 탈피를 거듭하며 이상하게 덩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아늑이 몰래 마음에 담아둔 수컷 바퀴가 자신의 조카를 선택한 그날 밤 아늑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홀로 노래를 부르고 그 덕에 친구를 만난다. 샤워기 속에 살고 있는 수컷 바퀴벌레 ‘부드’다. 부드는 가정을 버리고 세상여행을 떠났던, 원래도 이상한 바퀴였는데 수리하려고 분리해둔 샤워기 속에 들어갔다가 갇혀 버렸다. 수돗물만 먹으며 차차 죽어가는 중이었다.
둘은 금세 친구가 됐다. 큰 덩치 덕에 그 어떤 바퀴도 낼 수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아늑과, 갇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깊은 사유로 세상사에 달관한 부드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쳐 주며 서로를 보듬기 시작한다. 아늑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부드는 한참 전에 포기했던 탈출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
우리 어린이동문학의 첫길을 연 마해송(1905~ 1966)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과지성사의 마해송문학상 10회 수상작이다. 주변에서 자주 보이지만 모두가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의인화해서 감칠맛 나게 풀어간 이야기 솜씨가 일품이다. 초등 고학년 대상.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그림 문학과지성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