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_ 오소리의 이별 선별
오소리의 이별 선물
수전 발리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펴냄(2009)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준비를 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냥 그 상황에 쾅 부딪히고 만다. 처음엔 부딪히고서도 이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죽음이란 절대적 상황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고, 그 무력감이 우리 내면을 찔러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두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수전 발리의 그림책 <오소리의 이별 선물>은 모두가 사랑했던 오소리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수전 발리가 그려낸 오소리는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나오는 바로 그 오소리다. 오소리는 마을 동물들의 중심에 서서 사려깊게 문제를 풀어가고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주는 동물이다. 그리고 이제 이 그림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오소리는 죽음을 맞아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숲 속 친구들이 자신의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걱정할 뿐이다.
오소리의 염려와 당부에도 불구하고 숲속 친구들은 슬픔에 빠져 제대로 생활을 하지 못한다. 눈물로 이불을 적시고 계절이 바뀌어도 계절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한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온다. 슬픔은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은 우리에게 청구하는 법이다. 봄이 가까워지자 동물 친구들은 슬픔을 나누려고 함께 모인다.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은 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제 치유는 시작된다. 치유의 방법은 무엇일까? 동물들은 오소리와 함께 보낸 시간을 이야기한다. 두더지는 오소리와 함께 가위질로 멋진 사슬을 만들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개구리는 오소리에게 스케이트를 배웠던 시간을 떠올렸다. 멋쟁이 여우에게 넥타이를 매는 방법을 처음 알려준 것도 오소리였음을 알게 된다.
각자 지니고 있던 오소리와의 특별한 기억을 이야기하자 슬픔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오소리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소리와 보낸 시간은 여전히 추억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고, 오소리에게 배운 기술은 자신의 능력이 되어 이미 몸에 녹아 있다. 그 모든 것이 오소리가 남기고 간 선물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잊지 않으면 더 괴로운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일부러 상대를 떠올리지 않으려 하고 잊으려 애쓴다. 하지만 괴롭든, 괴롭지 않든 어차피 우리는 잊기 어렵다. 잊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깊은 사랑은 아닐 것이고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랑의 증거다. 그럴 때는 오히려 떠난 사람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애도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떠난 사람과 보낸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우리는 떠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죽음은 힘이 세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그것을 깨달으며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삶의 시간을 시작할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