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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20년째입니다. 최근 5-6년 사이 저에게 '신학기 증후군'이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새 학기에 아이들과 익숙해지려면 약 두 달 정도 시달립니다. 올해는 그 강도가 더 높았습니다. 저희 반 3학년 학생수가 20명인데, 약 8명 정도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하며 잠시도 차분하게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이 아이들의 외적 공통점은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합니다. 책상 위에 엎드려있거나 의자와 몸을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안절부절 합니다.
지금까지 약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강당에서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 시간을 하거나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가정통신문에 강조하여 당부합니다. 주말에 가정에서 미디어 노출을 자제해 달라고요! 부모님들이 얼마나 실천하고 계신지 의문이지만, 담임으로서 반복하여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요즘 수업시간에 많이 차분해졌어요. 동료교사들이 '교실 혁명'을 이루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하여 각 시도교육청은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 방침을 내세우며 현행 교육의 개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혁신의 물결"부터 현재 강조되는 "창조 교육"의 흐름은 각 학교, 각 교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교과과정을 토대로 이른바 '재구성'을 시도하는 반면, 교과서의 내용을 담은 교안에 따라 '충실하게'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이미 만들어진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잘'활용해서 화상 매체로 수업을 진행하는 현장도 상당수입니다.
그런데 교실 분위기나 학습 의욕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 현상들에 대한 진단이 분분하지만, 특히 저학년 교실의 주인공들에게 이미 취학 전부터 만들어진 주요 원인들에 대하여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유아기 취학을 대비한 때 이른 지적 노출입니다. 가정에서 입학을 위한 '학교 준비'를 착실하게 시켜놓으면, 교실에서의 학습 욕구는 당연히 줄어듭니다. 선행 학습이 아이에게 수업의 내적 참여도를 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굴 부모가 인위적으로 취학을 준비시키는 것 보다 '성숙의 때'를 기다려주면, 입학 후 아이의 자발적 동기 유발 능력이 높아지므로 학습 태도가 안정적이게 됩니다.
둘째, 유아기의 성장 과정에서 미디어의 과도한 노출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감각적 지각을 통해 세상을 직접 만나는 것 보다 컴퓨터 화면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유아용 프로그램은 아이에게 가상의 붓과 인위적 가위를 주고, 마우스를 통해 예술 작업을 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실제와 가상 세계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렇게 세계와의 상호 작용이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두뇌가 건강하고 세부적으로 발달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학교생활에서 아이는 실제 활동에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불안정한 학습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 뇌신경학자 만프레드 슈피쳐의 주장은 단호합니다. 컴퓨터를 포함한 미디어 기기는 어린 아이들 방에서, 유아교육기관에서, 그리고 저학년 교실에서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컴퓨터를 설치하면 현대의 지적 깔대기로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열광하는 경우도 많지만, 좀 더 비판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라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M. Spitzer: Lernen. Gehirnforschung und die Schule des Lebens, Heidelberg/Berlin 2000]
결론적으로 저학년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유아기 발달의 결핍 요소들을 보완해주어야 하며 합니다. 따라서 매체를 통한 수업 방식은 가능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움직이는 존재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가정과 학교 환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쟝 피아제의 1940년대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여전히 시사적입니다. 즉, 아이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인지적,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위한 근본 토대가 만들어지며, 아이가 자신의 균형감각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내적 균형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피아제는 설명합니다. [Jean Piaget: Meine Theorie der geistigen Entwicklung, Weinheim 2010]
Q.놀랍고 신기한 경험담입니다! 옆 반 선생님은 주로 미디어를 통한 수업을 하며, 아이들 집중도가 높다고 평가합니다. 음악시간에도 화면을 통해 수업이 이루어지므로 아이들이 쉽게 따라하고 빠르게 노래를 배운다고 전합니다. 이와 반대로 저희 반 수업은 미디어 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음악 시간에도 제가 리코더로 음을 잡아주면서 노래 부르게 합니다. 한 곡을 소화하기 까지 두 주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강당에서 3학년 합반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침 저는 다른 일로 참석하지 못했고, 옆 반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선생님 스스로 놀라운 관찰을 했다고 전해주시더군요. 강당에서 미디어 사용 없이 함께 노래를 하는데 자기 반 아이들은 대부분 노래를 잘 못하는데 반하여 저희 반 아이들은 모두 신나게 노래하며 즐거워했답니다. 그래서 요즘 저희 학교 교무실에서는 미디어 수업의 찬반 토론이 뜨겁습니다.
A. 교사의 수업 방식에 따라 학습 성취도가 다르며 교실 분위기도 좌우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사가 교과 내용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수업입니다. 게다가 수업 전개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것은 더 위험합니다. 화상 매체를 앞에서 아이들이 조용해지는 것은 두뇌활동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화면을 보면서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은 뇌의 자극 없이 '자동으로'이루어지는 수동적 활동이지만, 리코더에 맞추어 자신의 음정을 맞추며 노래를 익히는 것은 능동적 참여입니다. 결국 외형상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내적 참여에 따라 즐거움의 정도는 다르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