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크레용이 화났어
드루 데이월트 글, 올리버 제퍼스 그림, 박선하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2014)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다. 그것이 옳다. 우선 자기부터 좋아해야 다른 사람도 안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자기를 좋아하기 어렵다는 데서 온다. 자신은 부족하고 무능하다. 울면 뭐든 이뤄진다고 생각하던 신생아기가 끝나면 아이는 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뭐든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사랑을 받아야 하기에 아이는 늘 불안하다. 그런 약한 자신을 좋아하기도, 믿기도 쉽지 않다. 그게 아이들의 처지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기만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을 지켜나가기 어렵다.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약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더 배려하리라 생각하지만 정반대다. 약한 아이에겐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배려란 심리적으로 더 강한 아이가 할 수 있다. 유치원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알고 보면 겁이 많다.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없다.
<크레용이 화났어>는 배려에 대한 그림책이다. 이 책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배려인지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아이에게 배려할 상황을 만들어준다. 주인공 대니가 쓰는 크레용들이 대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빨강 크레용은 자기가 소방차와 산타 할아버지, 게다가 하트까지 칠하느라 너무 지쳤다고 쉬고 싶다고 쓴다. 황토색 크레용은 겨우 벼나 칠하고 마는 제 처지를 호소하고, 검정 크레용은 매번 테두리만 칠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노랑과 주황은 서로 자기가 해의 색깔이라고 주장하고 분홍은 대니가 남자라 자기를 쓰지 않는다며 서운해한다.
대니는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크레용들은 대니에게 고마워도 하고 서운해도 한다. 사람들 마음은 다 다르다. 나는 그저 행동을 하지만 그 행동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한다. 이게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다. 데이월트와 제퍼스는 아이에게 권한을 준다. 아이가 크레용의 주인이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인은 힘이 세다. 주인의 자리를 줘서 배려할 기회를 준다.
대니는 크레용의 주인이니 고민을 한다. 크레용들의 말은 다 일리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더 행복해질까? 결국 대니는 크레용들의 말을 모두 반영해서 멋진 그림을 완성한다. 마지막 장의 그림을 샅샅이 보며 대니가 베푼 배려를 이야기하는 시간, 그 시간이 이 멋진 그림책 읽기의 백미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주니어김영사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