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대마왕의 아이들.
“엄마가 망고스틴을 까 먹었을까? 까먹었을까?”
지난밤 늦게 좌린이랑 아이들이 과일을 먹으면서 내 몫으로 망고스틴을 몇 개 남겨 놓았다. “엄마, 언제 먹을 거야?” 아이들이 군침을 흘리며 노리기에 너희 다 자면 혼자 먹을 거라고 했더니 아침 눈 뜨자마자 망고스틴의 안부부터 묻는 것이다. (껍질을)까 먹었을까, (먹는 것을) 까먹었을까? 묻는 아루의 말이 재미있다.
좌린의 별명은 ‘헛소리 대마왕’이다. 좌중을 얼어붙게 하는 썰렁한 말장난을 하도 해서 아루가 붙여주었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그런 아빠랑 같이 지내며 보고 배운 것인지, 아이들도 이런 말장난을 자꾸 생각해낸다. 다섯 살 해람이도 ‘딴소리 소년’이란 별명으로 좌린의 계보를 잇고 있다.
기억에 남는 해람이의 말장난을 떠올려보면
“해람아, 발 내려!” 했더니 “발레리나(발내리나)?”
밭에서 수확한 깻잎으로 깻잎조림을 만들어 맛좋고 몸에도 좋다고 먹어보라고 했더니 “맛있깻잎(맛있겠니)?”
내가 먹던 와플을 달라고 해서 이리 오면 주겠다고 했더니 “이리와플?”(‘~다~람쥐’,‘~까~불이’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헛소리의 원조, 좌린의 썰렁한 농담을 듣고 있으려면 웃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처할 때가 많다. “아~그런 뜻이었어?” 뒤늦게 뜻을 알고 나면 허무하기도 하고, 맥락과 동떨어진 이야기에 어이가 없다. 특히 심각한 이야기 중에 분위기를 깨면 화도 나는데 그렇다고 아니야/안이 아니라 밖인데?, 이리와!/늑대가 살았습니다, 차 끌고 갈까?/무거운데 타고 가지? 이런 이야기에 화를 내는 것도 좀 우습다.
결혼 생활 십수 년 남편의 썰렁함을 견디며 살았는데 이제 아이들까지! 그래도 아이들의 말은 즐겁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종종 시도할 때가 있다.
#푸트라 모스크, 분홍 양파 지붕 보러 가자.
말레이시아 게임을 할 때 Attraction 카드를 뒤집어 카드에 소개된 도시로 이동하고 토큰을 모아야 하는데, 열다섯 장의 카드 중에 토큰을 받지 못하는 카드가 다섯 장 있다. 총 여섯 개의 토큰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Attraction 카드를 뒤집을 때마다 토큰을 주는 카드인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하면 조마조마하다.
“푸트라 모스크, 토큰 없음!” 언젠가 아루랑 게임을 하는데 간발의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에 아루가 토큰 없는 푸트라 모스크 카드를 뒤집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토큰을 모으면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토큰을 받지 못했다. 내가 무척 통쾌해하니까, 뾰루퉁한 얼굴로 “괜찮아. 토큰은 안 주지만 분홍색이잖아.”라고 말했다. 자기가 졌다고 울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지만, ‘분홍색’이라서 괜찮다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분홍색이 얼마나 좋으면!
어제 갔던 이슬람 예술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스크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실이 있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기 좋아서인지, 매일 네모 반듯한 아파트만 보다가 이런 건물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는지, 아이들의 발길이 오래 머물렀다. 아루는 제 사진기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엄마, 여기는 양파 지붕이 많네!”
전시실을 나오며 해람이가 말했다. 모스크의 둥그런 돔(dome)이 양파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진짜 양파네! 그때부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돔(dome)을 발견하면 우리 모두 양파다!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홍색’ ‘양파’ 지붕을 보러 가기로 했다. 푸트라자야(Putrajaya)는 쿠알라룸푸르 남쪽, 도심과 공항 사이에 자리한 말레이시아의 행정 수도이다. 고무와 팜 오일 재배지를 개발해서 만든 계획도시란다. 세종시를 설계할 때 이곳을 참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분홍색 양파 지붕의 푸트라 모스크는 푸트라자야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모노레일 타고 쿠알라룸푸르 중앙역(KL sentral)에 내려 공항 철도를 갈아탔다. 플랫폼이 너무 더워서 투덜거렸는데 한쪽에 에어컨이 나오는 대합실이 있었다. 역시! 쿠알라룸푸르 어디나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다. 가디건을 덧입었는데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세게 켜는 곳도 많다. “산유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거야!” 좌린의 말씀. 주유소에서 보니 휘발유 값이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첫날, 기차역 이름 KL sentral 을 보고 영어 단어 central의 오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외래어의 말레이어 표기란다. 말레이어는 로마문자를 쓰고 영어나 포르투기 등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아, 길거리 표지판이나 간판이 눈에 잘 들어온다. Bas(bus), Sentral(central), Sekolah(escola학교), Texi(Taxi), Apel(apple), Oren(orange), Promosi(promotion). 글자를 보며 원래의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재미있다.
공항철도 타고 푸트라자야&사이버자야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푸트라 광장까지 왔다. 계획도시답게 깔끔하고 정돈돼 보였다. 광장을 가로지르니 모스크가 나타났다. 우리처럼 버스 타고 걸어오는 사람은 흔치 않은 듯. 뙤약볕에 걷는 사람은 별로 없고 모스크 앞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단체 관광객들도 있었지만, 대가족으로 보이는 현지인들, 그리고 스쿨버스를 타고 현장 학습을 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이라서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리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스크 앞에 거대한 인공호수가 있고 호수를 바라보는 곳에 푸드코트가 있었다. 말레이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을 골랐다. 오징어, 생선 요리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신 나게 먹던 중에 해람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알았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재빨리 비닐봉지를 찾아 앞에 놔 주었더니 조금 전 입속으로 들어갔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아차, 소스! 튀김을 찍어 먹는다고 가져온 소스에 땅콩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제야 생각났다. 해람이는 땅콩을 비롯한 견과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새로운 음식을 먹기 전에 확인해야 하는데 종종 까먹고 한 번씩 이렇게 혼이 난다. 그래도 토하거나 설사를 하고 나면 괜찮아지니 다행이다. 호흡 곤란만큼 위급한 게 아니라서 긴장을 덜 하고 자꾸 까먹는지도 모르지만.
“엄마, 땅콩 들어갔는지 물어 보라니깐 그새 또 까먹었지!.”식당에 가면 땅콩이 들었나 물어보라고, 나보다 살뜰하게 챙기는 아루에게 한소리 들었다.
#종교가 뭐야?
아이를 씻기고 진정시킨 후 와플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 먹이고 다시 모스크로 향했다. 입구에서 세 사람은 그냥 통과, 나는 복장 불량으로 걸려서 교회 성가대 가운에 모자 달린 것처럼 생긴 헐렁한 옷을 뒤집어쓰고 들어갔다. 관광객들은 모두 같은 옷을 걸쳐서 관광객과 현지인이 확연히 드러났다.
“왜 엄마만 옷을 입어?”
“응. 여자라서 입어야 한 대.”
“그럼, 나도 입을까?” 아루가 물었다.
“아니야. 너는 어려서 괜찮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본 여성들의 옷차림은 이국적이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잠깐 스쳐 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날마다 의무적으로 온몸을 가려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엄청난 억압으로 느껴질 것 같다. 옷을 입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게다가 이렇게 찌는 듯 무더운 나라에서! 치렁치렁한 옷이 거추장스럽고 무척 더웠다. 실내 냉방을 심하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옷을 가볍게 입으면 될 텐데, 참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모스크 내부의 아치형 기둥과 실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온통 분홍색이라서 아루는 몹시 황홀해했다.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여기 뭐 하는 곳이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야.”
“이슬람교가 뭐야?”
“종교 중의 하나지.”
“종교는 뭔데?”
“그러니까, 음... 믿는 거야.”
“믿어? 뭐를?”
“사람은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일도 많이 일어나거든. 그래서 변하지 않고 절대적인 어떤 힘을 믿는 거야.”
아이들에게 종교에 대해 설명을 하려니 진땀이 났다. 사실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해줄 이야기가 없었다.
“그럼 기도는 왜 하는 거야?”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바라는 걸 이야기하는 거야.”
“그럼, 여기는 해가 인사하는 절 같은 거야?
신발 벗고 들어 와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여름에 갔던 해인사가 생각난 모양이다. 그때도 해인사 이름을 두고 해가 인사한다고 말장난을 했었다.
“그래, 맞아! 그거랑 비슷해. 절은 불교 사원이고, 모스크는 이슬람교 사원!”
“불교는 뭐고 이슬람교는 뭐야?”
비슷하다고 그냥 이야기를 끝낼걸, 괜히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후회가 막 밀려왔다.
“불교는 우리나라 꺼고 이슬람은 말레이시아 꺼야?”
머뭇거리는 내게 아이들은 계속 궁금증을 쏟아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어서 나도 잘 모르고 설명하는 것도 어려우니 더 생각해보고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해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독교를 믿으시니 할머니,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자는 말과 함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종교를 접하면 이런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를 나오는데 입구에서 회 백발의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시간 있으면 알라와 코란에 대해 들어 보지 않겠냐며. 아이들에게 종교에 대해 알아보기로 다짐했으므로 들어보기로 했다. 마호메트가 태어났다는 이슬람 최대의 성지, 메카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아담과 하와에서 비롯된 인류의 가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솔직히 지하철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접근하는 것처럼 느껴져 대화에 빠져들지 못했는데 모세, 노아, 아브라함, 무식한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은 거 아냐? 그런데 왜 맨날 싸워? 똑같아서 그러나? 나의 미천한 종교관은 여기까지. 살다 보면 진지하게 고민해볼 날도 있으리라.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해람이 모자를 잃어버린 게 생각났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는 오락가락하지, 우산을 폈다 접었다, 사진 찍으랴, 해람이를 업었다, 내려놓았다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더워, 업어줘,를 연발하는 아이들에게 짜증도 났다. 누구는 안 덥니? 누구는 안 힘들어? 나도 덥고 힘들다고 소리를 치고 싶었다. 어쩌자고 애들을 데리고 이 더운 나라를 여행하려고 마음 먹었을까? 모자를 찾아온다는 핑계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잠깐 비를 피하러 들렀던 여행 안내소까지 갔는데 모자는 못 찾았다. 빈손으로 돌아오니 좌린과 아이들이 비 대피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피소의 커다란 창 앞에서 노는 아이들의 실루엣을 발견하는 순간, 수선스럽게 뒤끓던 생각이 사라지고 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추상적인 무늬 사이로 새 들어오는 빛과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다웠다. 끊임없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던 악동들이 이제는 천사처럼 느껴졌다. 낮에 아이와 복닥거릴 때는 징글징글하다가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 모든 잡스러운 감정이 사라진다고, 어린아이 키우는 엄마들끼리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 깃든 아름다움에 반해 내일은 더 잘 지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고. 잠깐의 휴식과 멋진 풍경이 마음에 반전을 일으켰다. 마음 속 지옥과 천당을 나날이 경험하는 일, 아이 키우는 엄마의 일상이다.
#엄마가 꼭 찾으러 갈게
“아루야, 다니다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기차를 기다리며 아루에게 물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날,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들을 놓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그때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싹 긴장한 아이들에게 미아가 되는 상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은, 나도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상하는 것이 두렵지만, 미리 어떨지 상상을 해보면 실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덜 당황하지 않을까.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이런 생각으로 아루에게 미아가 되는 상황에 대해 처음 이야기한 것은 아루가 네 살 때였다. 해람이 낳고 처음 맞은 어느 봄날이었다. 두 아이와 집에서 지내는 것이 답답해서 용기를 내어 탈출을 감행했다. 아기 띠로 해람이를 안고 옷 가방을 끌고 기차를 타러 영등포역에 갔다. 엄마처럼 인형을 안고 덜덜덜 플라스틱 장난감 옷가방을 끄는 꼬맹이를 데리고. 행선지는 대전의 친정집. 사실 차를 운전해서 가도 되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기차를 타는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어디로 떠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집을 나설 때는 의기양양했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기차역에 오니 아루를 잃어버릴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떠오른 것이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정신을 집중해서 문제와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엄마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네 살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걱정스레 나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울음이 날 것 같지? 무서울 거야. 엄마가 안 보이면 얼마나 겁이 나고 무서울까? 그런데 중요한 건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두려움에 빠져버리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든. 엄마, 아빠의 전화번호처럼 잘 알고 있는 것도 생각이 안 날 수 있어. 그러니까, 두려워 울더라도 잠깐 울음을 멈추고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네 살 아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아루는 일곱 살,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워터파크의 어마어마한 인파를 헤치고 다니며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울먹이지 않고 또박또박 제 생각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도움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루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루의 얼굴에 네 살 아루처럼 걱정이 번지는 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루야, 걱정 마. 엄마, 아빠가 찾으러 가면 되니까. 어디서든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멈춰서 있어. 엄마가 꼭 찾으러 갈게!”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다. 아루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걱정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갈 거니까!
깔끔하고 완벽한 신도시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닷새 동안 그새 정이 들었다고 허름하고 구석진 뒷골목이 내 집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내일 아침이면 이 도시를 떠날 것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 낯익은 풍경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닷새 동안 들락거린 식당과 과일가게, 그리고 오다가다 마주친 사람들, 골목길이여, 안녕.
해람이가 그린 기차.
전날 그린 공작새가 마음에 들어 오늘은 양파 지붕 좀 그려달라고 했더니 거절하고 제 마음대로 기차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