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삼산초 ‘지렁이 프로젝트’
버리는 급식 지렁이 먹이로 주고
지렁이 분변토로 학교 텃밭서 농사
수확물로 김치 담가 경로당 전달도
거부감 갖던 학생들 “보람 느껴요”
“상추도 따도 돼요?”
“그건 아직 덜 자라서 안 돼.”
“토마토 맛있겠다. 지금 먹어도 되는 건가?”
지난달 8일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인천 삼산초등학교 옥상텃밭에 6학년 1반 배영훈 교사와 학생들이 모였다. 토마토와 고추, 깻잎을 따는 손길이 분주했다. 두 개의 바구니에는 학생들이 수확한 과일과 채소가 금세 가득 찼다.
홍세민군은 “4월에 우리가 직접 모종을 심어 길렀는데 지난주 월요일에야 첫 수확을 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신지민양은 “급식에 보쌈이 나왔을 때 고추랑 깻잎을 따서 맛있게 먹었다. 고추를 먹는데 너무 매워서 몇 명은 울기도 했다”고 거들었다. 이날 수확한 농작물은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해 아이들이 직접 키운 것이다. 배 교사는 2012년부터 교실 뒤편에 상자를 만들어 지렁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지렁이를 이용한 학교 음식물 줄이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에 모든 교사들이 고민하는 게 학생들이 음식을 남기는 거다. 생산한 사람의 고마움을 알고 급식을 다 먹자고 얘기하지만 저학년의 경우 절반 이상을 남긴다. 아이들은 본인이 남긴 음식이 결국 환경을 오염시키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배 교사는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진행했던 ‘지렁이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지렁이에게 음식물쓰레기를 먹이로 주고 길러 그 분변토로 농사를 짓는 방식이었다. 아이들과 지렁이 농장을 찾아가 주인 인터뷰도 하고 지렁이를 직접 사서 교실 뒤편에서 키웠다. 배 교사는 “나와 아이들 모두 지렁이가 모든 음식을 분해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렁이를 공부하다 보니 간이 돼 있거나 조리된 음식, 고기를 먹으면 분해를 못 해서 죽어버린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후 급식 준비할 때 나오는 채소 찌꺼기만 모아 지렁이에게 줬다”고 설명했다. 겨울방학 때는 교실이 춥고 먹이를 줘야 해서 배 교사가 지렁이 상자를 집에 가져가 키웠다.
이와 동시에 아이들은 본인들이 버리는 음식물쓰레기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측정했다. 반별로 돌아가면서 급식당번을 서는 날, 퇴식구에서 전교생이 점심식사 뒤 가져온 식판을 받아서 무게를 재고 대신 정리해줬다. 음식을 버리기 전 무게를 재고 식판 무게를 빼서 계산하는 식이었다.
특히 배 교사는 체계적이고 확실한 결과를 내기 위해 엑셀로 통계 내기, 스마트 기기로 영상촬영·편집하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했다. 학생들은 측정한 음식물쓰레기양을 연습장에 적은 뒤 배 교사가 미리 만들어놓은 엑셀 파일 양식에 직접 기록했다. 하루 단위로 통계를 내서 얼마만큼 버려지고 어떤 학년이 더 많이 버렸는지 정리했다. 1, 2학년들은 먹는 속도가 느려서인지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남겼다. 조사 결과, 전교생이 버리는 음식물쓰레기가 한 달에 2t 가까이 됐다. 학교에서 준비한 전체 급식량의 반 이상을 버리는 셈이었다. 배 교사와 아이들이 재배한 채소는 동료 교사나 다른 반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또 스마트폰과 패드를 이용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자는 내용의 홍보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아침방송 시간에 틀었다. 지난해에는 녹색생활연대와 등교시간에 캠페인도 진행했다. 로컬푸드(지역농산물)를 이용하고 학교 급식을 되도록 다 먹자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배 교사는 “처음 여학생들은 지렁이를 보고 질겁해서 비명을 지르며 교실 앞까지 달아났다.(웃음) 나중에는 알아서 지렁이 밥까지 주는 걸 봤다. 일 년 동안 지렁이와 같이 생활하면서 친숙해졌는지 점점 귀여워한다”고 말했다. 또 급식에 나오는 고추나 방울토마토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직접 재배해서 얻은 채소를 맛있게 먹는 등 식습관도 개선됐다. 학교 차원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프로젝트 시행 뒤 일 년 만에 학교 전체 음식물쓰레기양이 한 달 평균 400㎏ 정도 줄었다. 지난해에는 배추랑 무를 심어서 기른 뒤 직접 김치를 담가 인근 경로당 노인들께 전했다.
지난해 배 교사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정다영(인천 부일중1)양은 “처음에는 지렁이를 만지기 힘들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환경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걸 알고 먹이도 자발적으로 주고 관심이 갔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회상했다.
배 교사는 지난 5월 말 1000여명의 교사와 교육계 관계자가 참석한 ‘마이크로소프트 에듀케이터 네트워크 2014 코리아 포럼’에 강사로 참여해 이 프로젝트를 소개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또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교육 혁신에 힘쓰는 마이크로소프트 전문 교육자로 선정됐다.
“강연은 나에게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당시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사가 메모를 열심히 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이 정보통신기술을 배우고 익혀 이제는 엑셀로 통계를 내고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활동을 알아서 잘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이런 활동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 뿐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건 모두 학생들이다.”
배 교사는 “사실 학교에 보급된 환경교육 자료를 보면 ‘배기가스 줄이기’나 ‘강이나 산을 보호하자’ 등 너무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아이들 피부에 직접 와닿을 수 있는,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면 결과도 좋고 아이들도 재밌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한겨레 신문 2014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