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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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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아빠 일기장에 아빠 짝사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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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날 주말, 아내는 안방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엄마를 도와주다가 우연히 박스 안에 있던 낡고 빛이 바랜, 무려 40년이 넘은 수십권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빠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쓴 일기장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1학년 9월까지의 기록이었다.
 
1.jpg» 1973년 일기장

아들은 일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털썩 앉아 몇 권을 주마간산으로 읽었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까르르 웃다가 때로는 벌떡 일어나서 환하게 웃는다. 그 소리와 동작에 누나가 급관심을 보이며 안방으로 들어와서 합류해서 함께 읽는다.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자 아들은 일기장의 내용에서 재미가 있는 글을 엄마에게 말해준다. 아빠가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주던 일, 초등학교 6학년 때, 산에서 칡을 캐던 일, 친구들과 6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탁구장에 갔던 일,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후에 닭의 먹이로 주던 일, 6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총을 가지고 사촌동생과 참새를 잡으러 갔다가 벌에 쏘여서 온 몸이 밤송이가 되었던 일,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다가 밤에 불이 나서 그 집이 전소가 되었던 일, 여름이면 친구들과 냇가에 자주 수영을 하러 갔던 일, 고등학교 때의 우열반 이야기, 3명의 고모와 작은 아빠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이 적혀있었다. 특히 아빠가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학생의 사진이 일기장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했다. 나도 그런 사진을 숨겨놓았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달려간 것 마냥 나도 모르게 심장소리가 빨라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행히 아내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며 만화책 ‘검정고무신’의 이야기와 똑같다고 화답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 아들이 일기장에 쓰여있던 작은 아빠와의 갈등과 대립, 성장과정과 3명의 고모들에 대한 질문을 했다. 또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성품은 자상했는지,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많으셨는지 등에 대하여 물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아들의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날,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아들은 다시 일기장을 떠나지를 않고 거실에서 읽고 있다. 아마 모든 일기장을 정독을 하려는 듯 하다. 그 다음 날, 아들에게 물어보니 새벽 5시까지 아빠의 일기장을 읽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아빠의 재발견’이라고 말할 정도로 재미있다고 말한다. 아빠가 그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가장 부럽고 그만큼 매일 쓸 수 있는 다양한 소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다고 한다. 아빠의 일기장에서 아빠의 성실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와 아빠의 관계가 어땠는지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날 이 후, 일기장은 박스에서 나와서 거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에 두었다.

 2.jpg» 1973년 일기장

사실 일기장의 효과는 이미 입증이 되었다. 아니 본전을 뽑았다. 2005년부터 매년 책을 쓰다보니 이미 9권을 썼으니 말이다. 또한 2005년에는 문화일보에 10개월이나 매주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내가 매주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을 쓰다 보니 10개월이나 쓰게 되었다. 아들이 일기장에 대해서 놀란 또 한 가지의 사실은 매일 매일 일기장의 한 면을 가득 채웠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도대체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다른 비결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썼을 뿐이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풍경이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이채롭다. 우선 대가족으로 한 집에 10명이 살았다. 그리고 대문 옆에는 돼지와 소를 길렀다. 그리고 뒷마당에는 닭을 50마리 정도가 있었으며 토끼도 10여마리 길렀다. 그리고 배추나 무, 등 채소도 재배했다. 물론 대추나무와 감나무와 배나무도 있었다. 그러니 하루를 살아도 다양한 일들이 수없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기억력은 두뇌의 기억과 신체의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누구나 운전을 1년 정도하면 기억으로 운전을 하지 않고 무의식의 차원으로 몸이 저절로 알아서 운전을 하게 된다. 바로 신체기억력이다. 그와 같이 10년이 넘게 일기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두뇌의 기억 차원이 아니라 이미 몸속에 있는 기억력에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후에 글을 쓸 때,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영향을 주었는데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원천동력이 되었다.
 
그 일기장 일로 아들은 안방을 더욱 자주 들어온다. 그러면 우선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아마도 아빠의 과거를 모두 알았으므로 친밀감이 증가한 듯 하다. 이제 과거에 10여 년간 썼던 일기장은 비록 40여년이 지났지만,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쫒았듯이 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들은 아빠를 반면교사로 삼아 성실함과 꾸준함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자립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자녀양육을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나의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간단한 공식을 대입하면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림자를 밟고 자란다’는 평범한 진리다. 아빠가 술 자주 마시고, 술주정하고 부부 싸움한다면 아이가 무엇을 배울까? 아빠가 명절 때마다 친척들과 고스톱을 친다면 아이는 과연 무엇을 배울까? 결국, 아빠의 평소의 몸가짐, 말투, 언어, 소통 등이 올바르다면 아이는 그대로 따라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따라쟁이다. 아이란, 성장하면서 부모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밴치마킹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자녀양육이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올바른 행동과 말을 통하여 아이가 저절로 배우는 것이다.
또한 좋은 아빠 역시, 내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가 되어서 함께 놀면서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권오진:아빠학교 교장/인성발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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