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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속에 아이의 수의 세계가 영글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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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3469_P_0.JPG» 한겨레 사진 자료 <정용일 기자>

아이가 똑같은 책을 매일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책을 읽어줄 때마다 새로 읽는 것 마냥 늘 진지하다. 똑같은 것을 늘 새롭게 받아들이는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느 날 아이가 수수께끼를 낸다. 

“엄마,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인 게 뭐 게?”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른다고 답하니 아이가 “사람!”이라면서 즐거워한다. 그런데 며칠 지난 뒤 그 수수께끼를 다시 낸다. 마치 처음 내는 것 마냥. 그렇게 여러 번 더 그 수수께끼를 낸다. 엄마도 마치 처음 그 수수께끼를 듣는 양 반응하고 아이가 답을 말해주면 놀라워해준다. 아이의 즐거움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엄마의 지겨운 마음을 다잡는다. 

수와 관련된 물음도 반복된다. 하지만 그 반복 안에는 ‘숫자 바꾸기’라는 새로움이 있다. 

아이가 방학인 내내 집을 나서게 되면,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늘은 몇 시에 와?"

행여 약속한 시간에 집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투정을 부린다고 한다. 7시에 올 거라고 하면 너무 늦는다고 투덜댄다. 6시에 올 거라고 하면, 그것 역시 늦은 거라고 투덜댄다. 그러면서 5시에 오라고 했다가, 그보다 빨리 1시에 오라고 한다. 아이는 이제 몇 시가 몇 시보다 앞서는지를 알고 있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가 5시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몇 시에 출발한 거야?"

"응, 4시 정도"

사실 1시간까지 걸리지 않지만, 간단하게 말하기 위해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 질문이 그치지 않는다. 

"엄마가 4시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몇 시에 출발한 거야?"

"3시"

"엄마가 3시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몇 시에 출발한 거야?"

"2시"

"엄마가 2시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몇 시에 출발한 거야?"

"1시" 

"엄마가 1시에 집에 오면 학교에서 몇 시에 출발한 거야?"

“12시”                                          (5년 3개월)



질문의 구조는 동일하게 반복되지만 그 안의 숫자는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숫자들이 규칙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라 엄마의 대답도 규칙적이다. 규칙 또는 리듬이 있는 질문과 대답, 그 속에서 아이의 수 세계는 영글어간다. 


아이 : 동생이 4살이면 나는 몇 살이야?,  엄마 : 7살

아이 : 동생이 5살이면 나는 몇 살이야?,  엄마 : 8살 

아이 : 동생이 6살이면 나는 몇 살이야?,  엄마 : 9살 

질문 방식이 바뀐다. 

아이 : 내가 20살이면 동생은 몇 살이야?,  아이 : 17살

아이 : 내가 21살이면 동생은 몇 살이야?,  아이 : 18살

그러더니, 엄마에게 자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쭉 말해 달라고 한다. 지금 나이 6살부터! 

꽃님이가 6살이면 해님이는 3살
꽃님이가 7살이면 해님이는 4살
꽃님이가 8살이면 해님이는 5살
꽃님이가 9살이면 해님이는 6살
꽃님이가 10살이면 해님이는 7살
꽃님이가 11살이면 해님이는 8살
꽃님이가 12살이면 해님이는 9살
꽃님이가 13살이면 해님이는 10살
꽃님이가 14살이면 해님이는 11살
꽃님이가 15살이면 해님이는 12살
꽃님이가 16살이면 해님이는 13살

엄마의 말이 이어져 “꽃님이가 26살이면 해님이는 23살!”까지. 아이는 흡족해하고, 엄마는 숨이 차다. (5년 5개월)



noname01.jpg» 아이가 만든 풀잎인형! 붙잡고 있는 아이의 손에 단단함이 가득하다. 중간에 “이제 꽃님이가 직접 해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끝까지 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해달라고 할 때, 하기 싫어서 일 때도 있지만, 자신이 하기 버거운 일일 때 종종 부탁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A이면 B"라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A의 수가 차례대로 커지고 그에 따라 B의 수가 차례대로 커지며, 또한 "A-B=3"관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여섯 살 아이에게는 버거운 일일 수 있다. 

‘그럴 때는 기꺼이 엄마가 ‘모범’을 반복해서 보여줘야지‘ 
흡족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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