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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세밀화] 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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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

[나는 농부다]

메마른 시골 흙길을 걷다 보면 구멍이 송송 난 잎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는 질경이를 볼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땅을 얻기 위한 다른 식물과의 경쟁을 버리고 나름의 삶의 지혜를 찾아 길섶이라는 척박한 곳을 삶의 영역으로 획득한 것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인 질경이는 뿌리에서 계란 모양의 잎이 비스듬히 올라와 퍼지듯 자라고, 강한 섬유질 잎맥으로 밟혀도 꺾이거나 좀처럼 부러지지 않습니다.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어린잎은 나물이나 국으로 끓여 먹고 10월에 열매가 익으면 씨앗은 차전자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되고 씨앗 껍질은 변비치료제로 쓰입니다.

박신영 세밀화 작가

(한겨레신문 2013년 5월 22일자)



‘흔들린 아이 증후군’공포…흔들의자는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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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사진.jpg» 우는 아이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경남 창원에서 건강했던 생후 6개월 된 남자 아이가 어린이집에 맡겨진 지 두 시간여 만에 의식불명 상태로 빠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이 아이가 뇌사 상태에 빠진 이유에 대해 의료진이 ‘흔들린 아이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이라고 진단하면서, ‘흔들린 아이 증후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졌다. 또 신생아를 키우면서 우는 아이를 흔들어 달래거나 잠을 재웠던 부모들은 이제까지 자신의 육아 방식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도 한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무엇이고, 아이를 어느 정도 흔들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신손문 관동의대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박원일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알아봤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주로 돌 전의 아이들에서 많이 발생한다. 어린 아기들은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크고, 목에 힘은 별로 없다. 뇌의 혈관은 아직 덜 발달돼 있다. 따라서 아이를 심하게 흔들면 머리에 손상을 받게 된다. 두개골과 뇌 사이는 척수액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사이로 뇌혈관이 지나간다. 박 교수는  “아이를 심하게 흔들면 그 충격이 그대로 머리에 전달된다. 두개골 속에 있는 뇌가 딱딱한 두개골에 부딪히면서 그 주위에 있는 혈관이 찢어져 피가 두개골과 뇌 사이에 고여 뇌출혈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또 `흔들린 아이 증후군'으로 진단받는 경우는 외상은 보이지 않으면서 망막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망막 출혈은 한두 번 정도 흔들어 생기지는 않으며, 아주 여러 차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생긴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이 의심되면 시티(CT)나 엠아르아이(MRI)로 뇌출혈을 확인한다. 또 안저 검사를 해서 망막 출혈 유무를 확인해봐야 한다. 그 외 척수액 검사에서는 혈액이 나오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방사선 촬영으로 사지나 두개골의 골절도 확인해야 한다.

 
어린 아이의 뇌가 심하게 손상을 받으면 짧은 시간 내에 증상이 나타나고 약하게 손상을 받은 경우에는 증상이 천천히 나타나게 된다. 아기가 토하거나 보채고,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하면 반응을 하지 않고, 의식이 없어진다. 어떤 아이는 호흡 곤란을 겪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실명이나 정신 지체, 뇌성마비, 운동 장애, 경련 등의 후유 장애를 남기기도 한다.
 

신 교수는 “특히 2~4개월 경의 아이들이 위험하다. 주로 아기를 돌보던 사람이 아기가 심하게 울면 자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해서 아기를 심하게 흔들면서 이런 손상이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아기들이 우는 시간이 생후 2~3주 정도부터 차츰 많아져서 생후 6~8주 경이면 가장 심하게 울고, 3~4개월 정도 되면 우는 시간이 차츰 줄어준다”며 “아기를 돌보는 사람은 아기가 어릴 때에는 달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울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또 “아기가 심하게 울 때에는 아기가 정말로 아픈 곳은 없는지, 엉덩이가 짓무르지는 않았는지, 피부에 뭔가 찔리거나 아픈 일은 없는지 아기 몸 전체를 살펴보고, 괜찮으면 아기를 안고 차분히 토닥여주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안고 산책을 해 보라”고 조언했다. 만약 부모가 아기 달래는 게 너무 힘들어 화가 날 정도라면,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기를 목이 젖힐 정도로 심하게 흔드는 것은 금물이다.

 

일부 부모들은 아기를 얼러준다고 무릎 위에서 깡충깡충 뜀박질을 시키거나, 잠을 재운다고 옆으로 흔들어 주고, 흔들의자에 눕혀 아기를 재우는 것도 ‘흔들린 아이 증후군’을 초래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아주 심하게 아기를 흔드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부모가 안고 살살 흔들어 주거나 흔들 의자에 눕혀 재우는 정도는 위험하지 않으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드물긴 하지만 장난으로 아이를 공중에 던졌다 받는다든지,아이를 등에 업고 업거나 어깨에 무등을 태워 조깅을 하거나 말을 타는 행동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는 아이의 머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머리와 목을 잘 보호해주어야 하고, 절대로 심하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지난달 9일 낮12시께 창원시 내서읍 한 아파트 1층 어린이집에서 생후 6개월 된 김아무개 군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21일 밝혔다. 김군의 어머니는 이날 오전 9시10분께 집 근처 병원에서 영유아검진을 마치고 ‘건강하다’는 소견을 듣고 오전 10시께 집으로 돌아와 1층 어린이집에 맡긴지 2시간 만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린이집 교사는 이상 증세를 보인 김군을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119구급대에 전화했으며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김군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담당 의사는 아이의 팔이나 어깨를 심하게 흔들어 생기는 치명적 증세인 ‘흔들린 아이 증후군’으로 최근 진단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간기능 회복을 돕는 구기자가지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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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사가 된 후 처음으로 강의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4주간 진행되는 강의를 하러 갈 때마다, 나는 체질별 요리를 한 가지씩 선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대신 약초를 응용한 요리 덕분에 욕은 안먹었던 것 같다. 각 체질별 식재료들을 응용한 요리를 즉흥적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기가 가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열이 많은 소양체질에 좋은 '구기자가지찜'이었다. 구기자와 가지는 둘 다 성질이 서늘하여 열이 위로 잘 오르면서 화가 자주 나거나,  간열로 인해 눈이 잘 충혈되고 자주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좋다. 우리나라 보다 외국에서 더 각광받고 있는 구기자는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위한 보양식품이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기린의 채식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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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 지친 간을 위한 구기자가지찜

 

재료 : 건구기자, 가지, 상추, 깻잎, 치커리, 소금, 후추, 통깨, 들기름

 

[만드는법] 

1. 건구기자를 물에 1시간 정도 담궈 불린다. 이때 베이킹 소다를 조금 넣어주면  깨끗이 세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가지는 등분하여 준비한다

3. 찜기에 가지를 담고, 그 위에 불려놓은 구기자를 얹는다

4. 가지의 보랏빛 안토시아닌 색소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살짝 찐 후 불을 끈다

5. 들기름에 가지와 구기자를 살짝 볶아 준다. 이 때 죽염이나 천일염, 후추로 밑간을 살짝 한다

6. 접시에 쌈채소를 깐 후, 그 위에 볶은 구기자, 가지를 올리고 통깨를 뿌려 장식한다.

 

* 취향에 따라 양파, 파프리카, 버섯 등을 함께 볶아도 맛있다

* 소스를 곁들여도 좋다


 

예전에 TV의 모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구기자가 당뇨에 좋다는 방송이 나간 후, 당뇨병 환자들이 구기자를 사서 집에서 달여 마시거나 우려내어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요즘처럼 온라인에서 건강에 좋은 약초나 식품을 소개하는 싸이트들이 춘추전국시대처럼 활성화 되어 있는 시대에는, 전문가인 나 조차도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 인터넷을 뒤져보며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보면, 불로장생을 한다거나 백발노인이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식의 무협지를 연상케하는 이야기들이 약초마다 실려있다. 구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한 노인이 구기자를 먹고 100세가 넘도록 살았는데 나는 듯이 달리고, 백발이 검어지며,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났다고 한다. 또한 옛날 중국의 서하지방의 여인들은 구기자나무의 열매, , 뿌리, 줄기 등을 자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피부가 아름답고 윤택해지며 기미나 여드름 같은 것이 말끔히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기자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열매가 홍색을 띨 때 채취해서 열풍건조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간을 보하고 진음을 보충하는 작용은 면역력을 증강시켜주고 조혈기능을 촉진시켜 주며 항암, 항노화작용을 한다. 건조한 폐를 촉촉하게 만들어주어 만성기침을 멈추게 하고 혈당을 내려준다. 노인들의 허한 증상을 다스리고, 피부병, 만성간장질환, 당뇨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특히 젊어서도 시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증상에는 구기자만이 약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수험생들의 눈의 피로증상, 시력감퇴, 물체가 모호하게 보이는 증상에도 좋다.간에 콜레스테롤이 많은 지방간을 예방하고 신경이 예민하여 화를 잘 내는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구기자에는 채소와 비교하여 단백질, 지방, 무기질이 많은 편이다, 섬유의 함량은 많으나 당분함량은 적고, 비타민B1, B2 등 비타민 B복합체가 들어있으며 무기질은 칼슘, , 칼륨 등이 함유되어 있다. 그 외 루틴, 엽록소, 탄닌 등이 함유되어 있다. 얼핏 들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지는 구기자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이 있는 체질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몸이 냉하고 물이 많은 체질자들의 증상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유의하자. 가지의 안토시아닌 성분은 혈압과 혈당을 조절하고 항산화작용과 항암작용을 한다.  구기자와 가지는 둘 다 성질이 서늘하니 열이 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좋고, 몸이 냉한 사람이라면 생강, 후추, 고추, 마늘, 양파  등의 향신료를 곁들여 요리하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국산 구기자와 중국산 구기자 구별법]

 국산 구기자 

중국산 구기자 

 길쭉하고 잔주름이 별로 없으며

건조상태가 좋다.

 껍질이 얇고 선홍색이면서 

주름이 많은 구기자는 중국산이다 

 청양산이 약용으로는 가장 좋고

진도산은 차로 많이 이용된다

 유황을 발라 새빨간 색이 

도는 것도 있으므로 주의한다. 

차라리 거무튀튀한 색이 낫다

 

한강변 습지엔 누가누가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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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평군 강하면 운심리 한강생태학습장의 연못과 탐방로. 골재 채취로 파괴됐던 강변을 생태습지로 복원한 곳이다.

[esc]여행
골재채취장에서 가족 휴식처로 변신, 양평 한강생태학습장

흙바닥엔 노란 꽃을 피운
애기똥풀들이 깔렸고,
연못엔 각종 연 잎들과
개구리밥이 덮였다

신록의 달 5월은 ‘날’의 달이라고도 할 만하다. 단풍의 달 10월과 함께 달력 속의 무슨무슨 날이 스무개를 넘어선다. 신록의 나날들 속에 5월22일도 있다. 유엔이 정한 ‘생물 다양성의 날’이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다양한 지구촌 생명체들의 멸종을 막고 조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날로, 정확하게는 ‘세계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이다. ‘물과 생물다양성’이 올해의 주제다.

때는 마침 오만가지 생명들이 산과 들과 물가에서 피어나 우거지고 꼬물거리고 울어대는 봄날이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온 가족 생태 체험 나들이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사실 일부 여행자들이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단어인, 환경·생태를 생각하는 여행, 책임여행, 공정여행 따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자연에 눈뜨기 시작한 자녀와 함께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가서, 나무이름·풀이름·곤충이름 불러보며, 자연체험·수확체험 곁들여 주민과 이야기 나누고, 맑은 바람 한바탕 쐬다 돌아오는(쓰레기는 챙겨가지고!) 게 그 시작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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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짝짓기하는 부전나비.
복원한 생태습지 양평 한강생태학습장

지난 5월16일 경기도 양평군 남한강변의 한강생태학습장(강하면 운심리)을 찾았다. 울창한 버드나무숲 사이로 수생식물 가득한 연못들이 이어지고, 그 위로는 쾌적하게 거닐 수 있는 목재 탐방로가 이리저리 뻗어 있다. 작은 물길은 흐르고 고이기를 반복하며 6개의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내고, 연못들은 꽃창포, 애기부들, 갈대, 연, 개구리밥 들을 기르고 있다.

남한강과 지류인 항금천이 만나는 지역에 조성된 이 생태학습장은 본디 무분별한 골재 채취로 파괴돼 방치돼 있던 강 둔치였다. 2001년부터 2년간 생태습지 복원 과정을 거쳐 2004년 넓이 7만여㎡(약 2만여평)의 한강생태학습장으로 문을 열었다.

생태학습장의 민현규 생태해설가는 “2004년 150종이었던 생물들이 2010년엔 300종으로 늘어나, 안정된 생태계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며 “몇년 새 다양한 습지식물들과 동물들이 공존하는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이곳이 여느 생태공원들과 다른 건, 물의 정화 과정을 직접 관찰하며 숲길을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옆에 자리한 강하공공하수처리장에서 침전·슬러지 제거 등 5개 과정을 통해 정화시킨 물을 이곳으로 흘려보내, 다시 모래·자갈을 통과하고 습지식물들에 의해 자연정화된 뒤 한강으로 흘러들도록 한 것이다. 미리 예약 신청하면 생태해설가의 안내를 받아 물길과 연못들을 둘러보며 습지식물과 물속 생물 관찰, 식물 잎을 이용한 자연 장난감 놀이, 풀잎 염색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총 1㎞에 이르는 물길·연못 등 습지와 갯버들 울창한 숲은 탐방지구·완충지구·보전지구로 나뉜다. 탐방객들은 도롱뇽 등 양서류 서식공간, 습지생태관찰원, 조류관찰대, 농촌체험공간 등으로 이뤄진 탐방지구와 완충지구 일부를 산책하며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보전지구는 인위적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탐방을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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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기똥풀꽃.
탐방로를 따라 거니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나는 식물류는 갯버들·수양버들·왕버들 등 버드나무 종류, 갈대류와 노랑꽃창포 등 창포류 들이다. 흙바닥엔 노란 꽃을 피운 애기똥풀들이 깔렸고, 연못엔 각종 연 잎들과 개구리밥이 덮였다.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는 갖가지 새소리들 사이로, 유독 맑고 높은 울음소리가 도드라지게 울려왔다. 연초록 버드나무 가지들을 현 삼아 퉁기는 듯한 꾀꼬리 소리다. 학습장 숲과 습지엔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은 물론, 황조롱이·원앙이나 수달·너구리·삵 등 멸종위기 종들도 다수 살고 있다고 한다.

민 해설가가 샛노란 애기똥풀꽃 하나를 꺾어 들었다. “젖먹이 아기 배변 색깔이죠? 숲에서 벌레에 물려 가려울 때 애기똥풀 줄기의 수액을 바르면 효과가 있습니다.”

이날 가족나들이 길에, 해설가 안내로 생태학습장을 둘러본 정호근(36·수원 원천동)씨는 “살아 있는 자연생태를 찬찬히 살펴보며 물과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며 “아내와 네살짜리 아이가 재미있어해 더 기뻤다”고 말했다. 한강생태학습장은 연중무휴로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9시~18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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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오2리 주택의 벽화.
딸기 따먹기, 치즈 만들기 동오2리 농촌체험

이웃한 항금천 상류 마을 동오2리는 철 따라 농산물 수확체험 등을 진행하는 마을이다. ‘산천 잔치 체험마을’로 이름붙인 농촌체험휴양마을이다. 120여가구 230여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에선 지난 10년간 개인이 운영해온 ‘아빠와 추억 만들기’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 농촌체험 행사를 시작했다. 주로 어르신들인 20여가구 주민이 참가해 벌이는 제철 수확 체험과 자연생태 체험들이다.

예약을 통해 20명 이상 모이면 딸기 따기, 소 여물 주기, 치즈 만들기, 제기 만들기, 트랙터 마차 타기, 염색 체험 등 갖가지 체험행사가 포함된 프로그램(4인 가족 11만원선·4살 이하 무료)을 진행한다. 점심식사(표고버섯비빔밥)도 제공하고, 한강생태학습장 등 주변 연계 탐방 장소 안내도 해준다. 일정 인원이 모여야 체험이 진행되므로 가족 단위 체험행사는 주로 주말·휴일에 이뤄진다. 마을 사무장 신석훈씨는 “재료 및 식사 준비 관계로 최소 인원을 정했지만, 주말 참가 인원이 대부분 20명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요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딸기 따먹기(1인당 600g 1팩 별도 제공)와 치즈 만들기 체험이다. 끝물로 접어든 딸기 수확은 6월9일 마무리되고, 중순 이후엔 표고버섯 따기와 감자 캐기, 치즈 만들기, 표고버섯탕수 만들어먹기, 미꾸라지 잡기, 물놀이 등이 진행된다. 아직 숙박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당일 체험만 진행한다.

양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체험학습 예약하고 가세요

가는 길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 하남나들목에서 나가 팔당대교 앞에서 45번 국도로 우회전, 팔당댐 지나 호반 따라가다 88번 지방도 만나 좌회전해 직진한다. 바탕골예술관 지나 왼쪽에 한강생태학습장이 있다. 경기도 광주나들목에서 나가 우회전, 45번 국도 만나 우회전해 가다 88번 지방도 만나 직진해도 된다.

먹을 곳

88번 지방도변에 한정식·매운탕·청국장·도토리묵 등 다양한 전문식당이 즐비하다. 한강생태학습장 앞엔 토속 한정식집 전주관(031-772-9006)이 있다. 비빔밥 1만2000원, 정식 1만8000원.

한강생태학습장 체험학습

3~11월 매주 월~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2차례. 15인 이상 단체 대상. 예약 필수. 무료. 생태해설가 안내로 2시간씩 진행. (031)774-3603.

동오2리 농촌체험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진행(점심식사 포함). 예약 필수. 봄엔 딸기 따기와 치즈 만들기, 여름엔 표고버섯 따기, 감자 캐기, 치즈 만들기, 가을엔 고구마 캐기와 곡식 수확 체험 등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어른 2만8000원(4살 이상 어린이 2만7000원). (031)774-5427.

얘들아 아는 만큼 맛있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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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마을” 원생 하지현(사진 왼쪽)과 서윤아. 피망과 참외를 맛보고 있다.

[esc]요리
슬로푸드문화원의 유아동 대상 미각체험 교육 현장

“향을 맡고 만져보세요
부드러워요? 딱딱해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드러워요” 외친다
“이제 먹어볼까요?”

“딴딴 따라라” 전주가 울려 퍼진다. “쌀밥, 보리밥, 조밥, 콩밥~, 된장국, 호박국, 무국~” 처음 듣는 노래에 아이들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운다. 여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월문초등학교. 서울에서 차로 30여분 거리. 하지만 학교 풍경은 산골 분교처럼 정겹다. 한 학년에 한 반씩만 있는 아담한 학교다. 지난 16일 이곳에서 이색적인 수업이 펼쳐졌다. 1학년 20여명과 6학년 15명 정도가 한 교실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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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문초등학교 미각체험수업현장.
사단법인 슬로푸드문화원의 강사 심온씨가 질문부터 던진다. “혼자 밥 먹으면 어때요?” 아이들이 너도나도 외친다. “외로워요”, “쓸쓸해요”, “저는 행복해요. 동생이 안 뺏어 먹어요.” 웃음이 잘 익은 박처럼 터진다. ‘슬로푸드미각체험교육’ 첫날이다. 월문초등학교는 슬로푸드문화원에 요청해 3주간 미각교육을 한다.

“부엌에서 밥 냄새도 맡고,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도 듣고,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나 밥상에서 얘기하면 행복해져요.” 심씨는 ‘밥상머리교육’부터 시작한다. 밥상소통은 어린이의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공식품과 제철음식의 차이, 로컬푸드와 푸드마일리지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식생활”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좁은 케이지에 목만 내민 채 사육되는 닭들을 보여주자 “불쌍해요” 소리가 터진다. 6학년 남예현군은 “(닭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먹어도) 맛이 없어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아이들이 3~4명씩 짝을 이뤄 반 접은 신문지에 올라선다. 신문지는 가파른 절벽 같다. “답답해요”, “떨어질 거 같아요.” 공장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의 심정을 몸소 체험한다. 식품첨가물실험, 음식의 원재료 맛에 집중하는 미각실습, 요리수업 등이 2, 3주차에 걸쳐 계속될 예정이다. 슬로푸드문화원 교육팀장 남윤미씨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아는 이가 결국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선택한다. (이런 수업은) 똑똑한 소비자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된다”고 한다.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알면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고, 다른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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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각체험교육의 재료인 딸기와 피망 등.
‘맛의 천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어린이 미각교육을 시행했다. 1971년에 처음 시작한 프랑스는 1983년에 전국으로 확대했고, 이탈리아는 1998년부터 학교 내 텃밭을 키우는 등의 미각교육을 시행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슬로푸드대학에서 그들의 미각교육을 지켜본 사단법인 푸드체인지 대표 노민영씨는 “기업제품과 로컬푸드의 차이를 알아채는 실력을 키워, 로컬푸드를 먹게 하자는 것”이라며 “음식의 맛, 향 등을 체험하고 표현하면 창의력도 커지더라”고 한다.

즐거운 미각체험에 폭 빠진 아이들은 월문초등학생만은 아니다. 남양주시 도농동 어린이집 ‘그림마을’의 네살배기 16명은 강사 정인숙씨가 “만져보세요”라고 하자 눈동자가 커진다. 엄마 앞에 앉은 윤아는 메밀색 떡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나 나올 법한 덩어리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현미로 만든 떡과 된장에 땅콩 잼을 섞은 소스와 조청이다. 엄마가 손가락을 끌어당겨 촉감을 느끼게 하자 호기심이 생긴다. 몰랑몰랑하다. 옆자리 친구 지현이는 더 용감하다. 푹 찍어 먹는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은 아마도 본능인가 보다. 윤아도 입에 댄다. 달콤하다. 정씨는 “처음 본 음식을 겁내지 않는 것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온 리서에게 탱탱한 피망이 도착한다. “향을 맡고 만져보세요. 부드러워요? 딱딱해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드러워요” 외친다. “이제 먹어볼까요?” 리서는 피망이 싫다. 강사 최성은씨가 나서서 리서의 팔에 피망을 갖다 댄다. 차갑다. 리서는 그제야 호기심이 발동해 피망을 씹는다. 맛은 미뢰(혀의 미각세포)만 중요한 게 아니다. 후각, 촉각 등 온 감각의 합이다. 엄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리서가 피망 먹는 게 처음이에요.” 이어서 딸기와 참외가 나타나자 아이들의 표정은 환해진다. 빨간 즙을 뚝뚝 흘리면서 먹는다. 껍질째 만져보고 맛본 것과는 다른 맛이다. 최씨는 말한다. “피망, 딸기, 참외 순으로 줘요. 반대로 주면 피망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죠. 당도가 연한 것부터 줘야 먹어요. 싱싱한 재료의 맛을 기억하게 한 후에 요리해주면 맛의 변화를 알게 됩니다.” 미각교육에서 맛 표현하기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맛이 없니? 있니?”로 물어보기보다는 구체적인 표현을 끌어내는 게 중요. “어휘력이 풍부해집니다.” 단맛은 감미롭다, 달콤하다, 달곰삼삼하다, 달곰쌉쌀하다, 달착지근하다 등으로, 매운맛은 매콤하다, 매움하다, 매큼하다, 맵디맵다, 아리다, 얼얼하다 등으로, 짠맛은 짭짤하다, 찝찔하다, 간간하다 등으로, 신맛은 시디시다, 새콤하다, 시큼하다, 새큼하다 등으로, 쓴맛도 쌉쌀하다, 쓰디쓰다 등으로 말하도록 이끄는 게 좋다고 한다. “깔끔하다 등의 표현은 화학적인 맛에서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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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각체험수업에 참여한 월문초등학교 학생들은 교실에서 상추를 키운다.
5살부터의 교육은 부모와 아이가 분리돼 진행된다. 부모는 설탕과 식품첨가물의 유해성, 우리 장문화의 우수성을 배운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올해 미각훈련과 표현법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작년에는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했다. 직접 생딸기를 갈아 우유와 섞은 주스를 마트에서 파는 딸기우유와 비교했다. 콜라 당도실험은 즐거운 놀이였다. 콜라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토마토가 가라앉을 때까지 물을 부어 콜라의 당도를 측정해봤다. 정인숙씨는 “식재료의 적당한 당도는 8% 정도까지”라며 그 이상을 넘어가면 몸에 피로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만큼의 물을 마셔 희석해야 하는 것이다. 실험은 당도가 높은 콜라를 마셨을 때 피로 제거를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인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단맛에 너무 중독돼 있어요. 미각이 형성되기도 전에 단맛에 점령되는 거죠.”

2007년 문을 연 슬로푸드문화원은 2011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미취학 어린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미각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집에서 해보는 미각체험

① 텃밭을 만들어서 먹거리가 생산되는 과정 지켜보기. 베란다 화분도 적극 활용한다.

② 식재료를 열 손가락 활용해 만지고 향을 맡고 천천히 씹어 먹기.

③ 향과 맛을 느낀 식재료로 완성된 요리를 먹으면서 조리과정을 통해 변화된 맛을 경험하기.

④ 맛본 느낌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말해보기.

⑤ 아이에게 직접 양념으로 간 맞추기를 시켜 요리에 참여시키기.

[6월 이벤트] 북극곰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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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6월 이벤트를 엽니다.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예요.
  우리 주변의 오염 때문에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지요.
  그래서 북극곰이 서 있을 빙하도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이 북극곰을 지켜주세요.

  북극곰을 지키는 방법, 무엇이 있을까요?
  쓰레기 만들지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가까운 곳은 차 안타고 걸어가기, 
  세제 줄이기, 에어컨 보다는 부채 이용하기 등등...
  북극곰을 지킬 수 있는 우리집 환경 살리기 실천 내용을 올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5분께 ‘북극곰’ 사진집을 드려요.

<자세한 내용>
1) 응모 방법: 북극곰을 지키는 우리집 환경 살리기 실천 사진과 간단한 내용을
                   찰칵찰칵 게시판에 올려주세요.(*제목 앞에 [북극곰] 표기)
2. 응모 기간 : 5월 23일~6/23일
3) 발표 : 6월 25일 화요일
4) 경품: 북극곰도서(사진집)
            8996309389_1.jpg 노베르트 로징 | 북극곰 




Attached Youtube Video


촘백이 만든 평상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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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만들기 좋아하는 좌린 아저씨, 오늘은 뭘 만드시려는 지 아침부터 바쁘다.
옥상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철제 프레임, 낯이 익다. 아, 그래. 침대!
삼 년 전 결국 침대를 버렸다. 좌린은 처음부터 푹신한 침대를 불편해했지만 모른 척 내 편한 대로 침대 생활을 고집했다. 장롱 침대 세트는 결혼할 때 엄마가 신경 써서 해주신 거라 함부로 버리기도 아까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니, 아이들이 떨어질까 봐 침대에서 같이 잘 수가 없었다. 어차피 넷이 같이 자는데 침대를 오르내리는 것보다 바닥에서 마음껏 굴러다니는 것이 편했다. 침대는 좁은 집에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침대에서 방방 뛰는 걸 좋아해서 아쉬워했지만 없애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를 버린 것이 아니라, 매트리스만 버렸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좌린이 철제 프레임과 MDF 원목을 해체해서 베란다 한쪽에 잘 모셔두었던 것이다.
“침대 프레임으로 뭐 만들려고?”
“평상!”
오호, 평상! 옥상에 캠핑용 의자가 몇 개 있긴 하지만, 평상을 두면 더 좋을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기 좋고 아이들이 놀잇감 늘어놓고 놀 수도 있고. 무엇보다 평상은 드러누울 수도 있지 않은가! 한여름의 옥상 바닥은 너무 뜨거워서 돗자리 위에 누우면 찜질방 같았는데. 평상을 만들어 주신다니 좋다, 정말 좋다!
침대 프레임, 매트리스를 받치고 있던 나무판자들, 일명 갈빗살, 이것으로 평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내가 아는, 십수 년 보아온 좌린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꼼꼼하게 도면을 그려 이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저지르고 일을 하는 가운데 방법을 찾아가는 스타일. 뭘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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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완충용 발포 시트를 찾아와 침대 프레임을 덮었다. 언젠가 택배에 딸려온 것을 챙겨 뒀던 거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갸우뚱 생각에 잠기더니 베란다 수납장에서 사진들을 꺼내왔다. 홍대 앞 프리마켓에서 팔던 사진들, 더 정확히 말하면 팔고 남은 재고들. 십 년 가까이 수납장에서 자고 있던 것을 가져와 나란히 붙였다. 갈빗살의 간격이 촘촘하지 않아서 갈빗살 사이로 발이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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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붙인 종이가 두꺼워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이렇게 여러 장의 사진들을 깔아 놓으면 단단한 합판과 달리 쿠션감이 있어 좋아. 사진이 비닐로 포장돼 있으니 습기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 않겠어?”
제작자의 그럴듯한 설명.
하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이것. “합판을 살까 생각했는데 사러 가기 귀찮잖아.”
어쨌든 우리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넣어서 만든다니, 평상에 드러눕는 상상이 더욱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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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일이 있어 일꾼에게 김밥 사주고 나갔다 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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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장판까지 덮어 완성해 놓았다.
좋지? 평상에 누우니 좋지? 해람아?

 

평상 말고 침대를 분해해서 만든 이전 작품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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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에 있는 커다란 책상. 아루가 그 앞에 앉아 공주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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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실의 우리 책상 앞에 붙여 놓은 아이들 책상. 아이들과 마주 앉아서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다. 아루는 또 공주 그림 그리고 있다.

 

방에 있는 책상은 침대의 헤드(head), 머리 기대는 부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기에 침대 다리를 경첩으로 붙여 썼는데 다리가 들어가지 않아 불편해서 최근에 다리만 사서 바꾸었다.
거실의 책상은 침대 옆 판에 상다리 모아 둔 걸 붙여서 재미로 만들었는데 낮은 상, 높은 상, 두 가지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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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앉아 쓸 수 있는 낮은 상. 상다리는 내가 대학 때 자취하면서 쓰던 상에서 떼왔다. 너무 더러워지고 패인 자국도 있어 상판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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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이미 십수 년, 우리 집에서 수년간 썼던 상에서 뗀 다리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다리를 펼치면 높은 상이 된다. 어린이집에서 버리는 의자 두 개 주워 왔더니 높이가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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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린은 솜씨가 좋다. 버리는 물건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멋진 재주가 있다. 그리고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뭘 해도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사실!

촘백이 촘백이 서울 가는데
기차 삯 3 천원이 너무나 비싸서
헤이, 걸어가겠네, 걸어가겠네
남이야 걸어가든 남이야 타고 가든

다 같이 서울 가긴 마찬가지지.
좌린이 어디선가 듣고 종종 흥얼거리는 이 노래는 ‘촘백이 타령’이라는 구전 민요이다.  3천원 없어 걸어가지만 좋은 차 타고 가는 남들 부러워하지 않고 '다 같이 서울가긴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 좌린의 멘탈과  닮았다. 좌린이 버려진 물건으로, 필요한 물건 만들어 내는 걸 우리는 '촘백이 DIY'라고 부른다.
“비싼 돈 내면 더 매끈하게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좋은 재료로 잘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비용 대비 만족도가 떨어진다구. 그런데 돈 안 들이면 조금만 잘해도 엄청 뿌듯하잖아? 내 맘대로 막 해볼 수 있는 것도 좋고. 내 생각대로 만들면 물건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는 것 같아.” 좌린의 말씀.
이렇게 근사한 평상을 만드는 데 쓴 돈은 겨우 자투리 장판 값, 그리고 약간의 인건비(치맥 시켜줬다!)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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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뚝딱뚝딱 뭘 만들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신이 난다. 어떤 물건이 아빠 손을 거쳐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겁게 바라본다.
아빠, 이건 뭐야? 어떻게 쓰는 거야? 왜 이렇게 생겼어?
망치, 톱, 드릴, 등의 공구, 신기한 물건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좌린은 되도록 아이들에게 직접 공구를 만져보고 써보라고 권한다. “위험하니까 저리 비켜!”라고 쫓아내는 것보다 위험 상황을 미리 이야기해주고 같이 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침대 프레임에서 떨어지지 않고 한 바퀴 도는 놀이, 쓰고 남은 발포 시트와 장판 자투리로 모양을 오리고 인형을 만드는 놀이, 아이들도 아빠 곁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잘 놀았다.
거창의 아버님도 손으로 만드는 걸 즐겨 하신다. 좌린은 초등학생 때 부모님으로부터 공구 세트를 생일 선물로 받았단다. 좌린이 공구를 잘 다루고 솜씨 좋게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배운 것이리라.
평상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미래의 아이들 모습을 그려본다. 우리 아이들도 화려한 상품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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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든 평상에서 이웃들과 잠깐씩 수다를 떨고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놀기도 한다. 안 그래도 집으로 사람 불러들이기 좋아하는 우리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집에 가자고, 우리 집 옥상에 멋진 평상 있으니 거기서 놀자고 붙잡느라 바쁘다. 스페인에 잠시 살고 있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옥상 음악회’ 사진을 올렸던데 크게 민폐만 안된다면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
놀러오세요, 놀러 와!
평상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실까요?
아니, 쌈 채소 팍팍 뜯어 넣고 밥 비벼 먹을까요?
저기 구석에 옥수수도 심었어요. 몇 개나 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상에 앉아 같이 옥수수 하모니카 불면 정말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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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이야기
“근데, 이 평상 다리는 뭐지? 새로 산 건가?”
평상에 누워 이제 침대 부속은 다 쓴 건가, 생각하다가 문득 침대 다리가 떠올랐다. '침대 다리는 MDF 원목인데, 평상 다리는 철제네. 그러면 침대 다리는 어딘가 아직 있을 테고, 그럼 이 평상 다리는?'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그거? 소파 버릴 때 떼 놓은 거지."
알고 보면 무척 꼼꼼하다, 이 남자.

베이비트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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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이 하나만 키울 생각이었다.

 

당연히 셋 정도는 낳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신혼초기와 달리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장르로 따지자면 하드코어 육아?라고 할까

완전고립감에 우울증과 홧병을 세트로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게다가 나의 첫아이 딸은

예민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내성적인 성격의 표본같은 아이였다.

입맛도 까다로워 잘 안 먹고

먹는 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는지

똥도 잘 못 싸고

게다가 잠까지 안 자는

 

그런 아이지만, 내면은 활화산이 불타고 있는 듯한 아이였다.

사람들 앞에서만 조용하고 얌전할 뿐

뭐든 직접 해 봐야 하고 만져봐야 하고 보고 듣고 놀고 싶어했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고도 눈만 뜨면 어디로든 밖으로 나가

하루종일 놀아야 하고 집에 가는 걸 그렇게 싫어했다.

친구집에서 공원에서 수영장에서 실컷 놀다

어두워져서 돌아올 때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근처 놀이터 미끄럼틀이라도 한번 타야하고

그렇게 돌아와서도 더 놀고 싶어 신발을 들고 엉엉 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 5년을 보내고 나니

다시는 이 노릇을 못할 것만 같았다.

내 나라에서라면 벌써 몇이라도 더 낳았을테지만

외국에 계속 사는 한은 더 이상 낳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어느날 둘째를 갖게 되었다.

원치않는, 이 아니라  계획된 임신이었다. (이유는 다음 기회에^^)

누나와는 달리, 너무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여서

안 먹는 아이를 둔 엄마의 한을 지금도 풀며 살고 있다.

그런 둘째를 키우며 한참 젖먹이던 시절.

늘 들리던 한겨레 사이트에서 신기한 제목(내게는)의 글들을 발견했다.

아! 이제 드디어 육아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는구나!

놀랍고 반가웠다.

 

진정한 의미의 학습력은 놀이에서 나온다는, 내 마음에 꼭 드는 교육론이나

유아심리를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해 엄마 마음을 흠뻑 적셔놓으시는

서천석 선생님의 글...  이런 전문가 분들이 계시다니!

그림책을 읽는 소아정신과 의사라니!

사교육이 판치는 한 편에서는 이런 육아문화도 싹트는구나 싶어

날마다 들어와 위안을 얻곤 했다.

가끔 바빠서 한동안 베이비트리를 읽지 못하는 날은

00네 엄마는 직장에 잘 복귀했을까?

00네 아이는 전학간 대안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까?

또 00네 아이는 장염에 걸렸다더니 다 나았을까?  ... ...

 

온라인에서. 그것도 나는 댓글 참여 정도도 일절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가까운 이웃집 안부를 걱정하듯

한동안 소식을 모르면 궁금하고 그립고... 그랬다.

 

자주, 몇 번 나도 온라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볼까 마음먹으려는 순간엔

어김없이 아기가 깨서 울거나 밥할 시간이거나 그랬다.

더구나 나는 온라인 세상에 의심이 많은 소심한 사람이고

나의 이야기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고 말까봐,

평생을 비주류와 마이너로 살아왔건만

육아마저 이렇게 철저히 비주류로 겪어온 이야길 누가 들어줄까

번번이 마음을 접었드랬다.

그러다, 어떤 일+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이렇게 나와 있다.

 

베이비트리가 3주년을 맞았다며 새로운 시작과 시도들을 하는 게

여기 멀리까지 전해져온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도움받고 위로를 받은 것처럼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발전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우리의 삶과 일상의 냄새를 찾을 수 없는 외국의 수많은 교육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식 육아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늘 소리지르고 야단치느라

우리집이 젤 시끄럽다고 소문나면 어떻하나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은 벌써 소문 다 났을거라 할 정도로

나는 성질이 급해 늘 아이들에게 소리지르고 살지만

그래도, 선물이 얼른 받고 싶어 산타할아버지를 벌써부터 기다리는,

할아버지, 우리집 열쇠가 없어 어떻게 들어오나 날마다 걱정이 태산인

그런 어린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이곳에서 함께 나누었음 좋겠다.

 

육아가 잘 안 풀릴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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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라도 한 잔 하며 숨 돌리고

 

달콤하고 따끈한 것도 한 조각 먹고

 

그러다 또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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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감상으로 육아의 영감도 얻으면서^^

 

그렇게 재미나게 아이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도 좋지만

엄마들이 즐거운 일상, 그런 육아이야기를

앞으로도 더 많이 읽고 싶다.

 

P.S 요즘 베이비트리에 아빠들이 너무 열심이신 것 같습니다.

      엄마들, 우리도 분발합시다^^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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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_1.jpg» 그림 비룡소 제공

왕자를 구한 공주는 왜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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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문치 글, 마이클 마첸코 그림
김태희 옮김/비룡소·7500원

로버트 문치가 글을 쓰고 마이클 마첸코가 그림을 그린 <종이 봉지 공주>(1998)에는 왕자와 공주, 그리고 용이 나온다. 등장인물만 놓고 보면 흔한 서양 전래동화가 아닐까 싶다. 전래동화에서 왕자와 공주, 용은 전형적인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왕자는 용에게 잡혀 있는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용을 물리친 후 공주와 결혼한다.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러한 삼각관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상징적 반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왕자가 용을 물리치고 공주와 결합하는 것은 아이가 늙은 아빠를 물리치고 엄마와 결합하고 싶은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베텔하임의 해석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전래동화의 남성 중심성이다.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공주가 하는 일은 그저 왕자가 잘 싸워주길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에 요즘의 여자아이들이 만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비록 공주가 입고 있는 예쁜 드레스는 마음에 들어 하지만 공주의 수동적인 태도엔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다.

<종이 봉지 공주>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는다. 용에게 끌려가는 것이 공주가 아니다. 왕자가 끌려가고 공주는 용에게 끌려간 왕자를 찾으려고 길을 떠난다. 예쁜 드레스는 용이 다 불태웠기에 길에서 주운 종이 봉지 한 장만이 공주가 걸친 전부이다. 공주는 원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 앞에서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여자라면 가꿔야 한다는 말은, 여자라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종이 봉지 공주에겐 통하지 않는다. 기존의 전래동화를 읽으며 수동적인 공주의 모습에 짜증을 내던 여자아이들이라면 이런 도입부부터 금세 빠져든다.

이어서 용을 만난 공주는 재치로 용을 제압한다. 한번 불을 내뿜으면 50개의 마을을 태울 수 있고, 10초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용이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다. 자기 힘을 자랑하게 만들었을 뿐인데 용은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킨다. 이처럼 힘과 과시에 빠져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른들이 바로 용이다.

용이 쓰러지고 공주는 왕자와 만난다. 비록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고 머리는 불에 그슬려 산발이지만 공주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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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런데 왕자는 공주에게 고마워하기보다 공주의 옷을 타박한다. “진짜 공주처럼 입고 다시 와!” 종이 봉지 공주는 그때서야 자신이 헛짓을 했다는 것을 느낀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를 위해 자신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그래서 왕자를 버리고 떠난다. 그런 공주의 앞쪽으로 태양이 떠오른다.

<종이 봉지 공주>는 <신데렐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이어지는, 선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성에 대한 거부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마이클 마첸코는 아이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만화풍의 그림을 통해 도발적인 주제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유머러스한 장면 덕에 아이들은 그저 즐거워한다. 그렇게 즐거울 수 있기에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조금씩 주체적인 인간으로, 어떤 위기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릇 네 개로 넌 무엇을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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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그릇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논장·1만2000원

누르면 소리가 나고 돌리면 불빛이 번쩍이는 값비싼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누르면 재밌는 영상이 튀어나오는 텔레비전이나 부드러운 터치만으로 화면이 휙휙 변하는 스마트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간을 자꾸만 방해받고 있다.

그러니 이제 잠깐 그림책을 펼쳐 아이들에게 황토색 종이 냄새가 나는 네 개의 그릇을 보여주자. 아이는 네 개의 그릇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왜냐면 책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쓸모가 있는 책 속 세상에서는 네 개의 그릇이면 충분하다. 그릇은 우산도 될 수 있고 하늘의 달도 잠자는 아이의 얼굴도 될 수 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시시해 하려다가도 끝없이 변신하는 네 개의 그릇 모습을 보자면 입이 딱 벌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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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논장 제공
철학적 깊이가 드러나는 책을 그리고 써온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뻗어가는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준다. 페이지마다 들어찬 상상화들은 빛바랜 종이와 글자들로 꾸며졌는데 모두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아무도 빌려가지 않아 버려지는 책들의 종이를 사용한 것이라 한다. 찢긴 책들조차 네 개의 그릇을 통해 새 책으로 뒤바뀌었으니 상상해서 안 될 일이 무엇이 있으랴!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5월 27일 새 그림책] 너는 어떤 씨앗이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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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씨앗이니?

쪼글쪼끌 못생긴 씨앗이 온 마을에 향기를 퍼뜨리는 수수꽃다리가 된다. 아이들 개성을 존중하며 꿈을 불어넣어주는 동화. 작가가 직접 손바닥만한 땅에 봉숭아, 나팔꽃, 채송화 꽃씨를 뿌려 키워내며 그림책을 만들었다. 4살부터.


20130527_3.jpg 최숙희 글·그림/책읽는곰·1만1000원. 


풍선마녀

‘우주 최강 말썽꾸러기’가 동네 도서관의 찰흙 놀이 교실에 갔다가 자기보다 내공이 센 풍선마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은 말썽을 부린 아이들에게 풍선을 매달아 주고 아이들은 다 같이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다. 7살부터.


20130527_4.jpg 박은미 글·그림/소년한길·1만4000원. 

아빠, 제발 술에 취해서 집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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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의 일이다.

고1 아들에겐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첫째, 아빠가 넥타이를 매는 모습을 보고 싶다.

둘째, 아빠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싶다.


아들은 자신이 어릴 때, 아빠가 매일 넥타이를 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이 어릴 때, 아빠가 술도 잘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들어온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아들이 5살 이전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130524한겨레삽화.jpg»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그런데 아빠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막내 이모가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 당일,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만지고 있다.

그런데 하도 오랜만이라 넥타이를 매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무려 10년 만에 넥타이를 만지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아들은 이런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리고 "아빠, 제가 가르쳐드릴까요?”라고 한다.

겨우, 아들의 도움으로 맬 수가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며 싱글벙글 웃는다.


아들의 두 번 째 소원도 이루어졌다.

사실, 아들이 바라는 소원의 핵심은 아빠가 주는 팁에 관심이 있다.

친구의 아버지들은 술을 마시고 오면 지갑을 열어서 용돈을 준다고 한다.

자신도 그런 추가 용돈을 받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데 집안의 일상을 살펴보면 매우 요원하게 느껴졌다.

집의 냉장고에 캔 맥주가 있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1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런 상황을 보고 아들은 백년하청과 같이 느껴졌다

13052437.jpg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30년 지기가 5년 만에 연락이 되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친구는 지금도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삼겹살 집을 예약했다.

친구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잠시 덕담을 나누고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술과 고기를 시키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술잔을 기울였다.

사실, 술은 1년에 한 번 정도 마신다.

그도 그럴 것이, 강의하고, 책과 칼럼을 쓰러면 술을 마시면 안된다.

술을 마시는 날은 물론 그 다음 날까지 뇌가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아예 술을 마시려고 작심을 했다.

친구가 석 잔을 마실 때,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그리고 아들은 대뜸, “아빠, 어디 계세요?”라고 한다.

순간, 뜨끔한 기분이다.

마치, 아들이 투명인간이 되어 아빠를 보고 말하는 듯한 질문이다.

그래서 ‘지금 옛날 친구와 술을 마신다’라고 했다.

그러자 동시에 아들은 ‘대박’이라며 깔깔거린다.

그러면서 “아빠는 수암이 아저씨밖에 친구가 없잖아요?”라고 한다.

사실 그랬다.

요즘은 친구도 거의 없고 가끔 만나는 친구 한 명만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즉시 “아빠, 그럼 오늘 용돈을 받을수 있죠?”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들은 즉시 환호했다.

그러면서 누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부랴부랴 전화를 끊는다.


친구와 9시에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인사를 하며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아빠, 몇 잔 드셨어요?‘라고 묻는다.

동시에 ‘얼굴빛을 보니 석 잔은 드신거 같네요’라며 웃음을 멈추기 않는다.

그 순간,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아들은 순간 긴장한다.

동시에 만 원 짜리 지폐를 꺼내서 아들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된 듯,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드디어, 수년간의 소원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13052438.jpg 그 때, 아내가 안방에서 나왔다.

갑자기 아들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만원을 꺼내서 ‘팁’이라며 주었다.

아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다.

이 모습을 보고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아빠가 오늘 술을 드시고 주는 팁이예요”라고 한다.

어쨌든, 아내는 공돈이 생겨서 좋다는 표정이다.


11시가 되어 대학교 2학년인 딸이 귀가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서 “아빠, 오늘 술 드신거 맞네요. 정말 얼굴이 빨개졌네요”

그러면서

“이건 완전 대박사건이네‘

‘허경영이 대통령에 출마한 것보다 더 큰 뉴스야’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 순간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딸에게 주었다.

딸은 싱글벙글하며

“아빠, 매일 술드시고 오세요. 단, 과음은 금지...”라며 애교를 부린다.

13052439.jpg 이렇게 아빠가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니 가족들이 모두 즐거워한다.

아이와 아내에게 3만원을 투자했는데 이렇게 즐거워할 줄은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 가정에서 소통은 곧 행복의 원천동력이다.

아빠가 좀 망가지니 저절로 소통이 활성화가 되었다.

집안의 웃음소리가 따뜻한 메아리로 가득하다.


또한 아이들은 이 일로 아빠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저 바쁜 아빠가 아니라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아빠의 모습을 본 것이다.

부모는 늘 아이들에게 거울이다.

그저 성실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체로 충분하다.


아이들이란,

늘 부모를 따라하는 따라쟁이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많이 아프면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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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 3.jpg

 

토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먹고 난 다음이었다.

강릉에 있는 시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오래 하면서 어머님이 너무 힘드신것 같아

함께 속상해 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질 어질해 지는 것이었다.

온 몸이 힘이 빠지면서 세상이 빙글 빙글 도는 것 같았다.

서 있을 수 도 없어 주저 앉았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평소에 어지러운 증세가 전혀 없던 터라 몹시 놀랐다.

눈을 뜨면 더 어지럽고, 고개를 떨구면 더 어지러웠다.

'여보, 나.. 이상해. 너무 어지러워. '

남편은 수리 맡긴 카메라를 찾으러 아이들을 데리고 막 강남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어지러운 것은 계속 되었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눈만 뜨면 너무 어지러워 속이 다 울렁거렸다.

겁이 덜컥 났다.

빈혈이 있는건가? 귀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으면 어지럽다고 했던가?

아니면 혹시 무슨 중대한 속병이 생겼나? 이렇게 갑자기 어지러운 것이 분명 정상은 아닐텐데..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병원에 가야할까?

 

정 몸이 계속 힘들면 응급실에라도 가보겠다고 얘기하고 어린 딸 둘을 딸려서 남편을 내보냈다.

큰 아이는 엄마와 집에 남겠다고 했다.

레고에 열중하는 아들에게 말하고 우선 침대에 누워 쉬어보기로 했다.

한 숨 자고 나면 좋아질것을 기대한 것이다.

 

몸은 힘이 하나도 없이 무거웠다. 온 몸에 기운이 몽땅 빠져 나간 기분이었다.

물 젖은 솜처럼 누워 어지러움을 계속 느끼며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정말 무서운 꿈을 꾸었다.

 

남편이 아픈 나를 차에 싣고 온 가족이 다 함께 병원에 가는데

내 눈이 자꾸 감기더니 마침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눈이 떠지질 않는 것이었다.

'여보, 나, 왜이래. 눈이 안 떠져!'

'이런... 정말 큰 일 났나보다'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점점 작아지더니그냥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겁에 질려서 '여보. 당신 목소리도 잘 안 들려. 나 왜 이러지?'소리를 질렀다.

나중에는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눈을 뜨려고, 말을 하려고 몸부림쳤다.

끔찍하게 무서웠다.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 났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는데 침대 옆에 서 있는 책상 다리가

울렁 울렁 거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서웠다.

벌떡 일어났다. 기분 나쁜 땀에 촉촉히 베어 있었다.

어지러움이 가신건 아니지만 조금 덜 해 있었다.

그러나 꿈에서 느낀 무력감과 공포감은 여전히 나를 무섭게 옥죄고 있었다. 

 

요즘 너무 피곤했던가?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계속 무기력해 있었는데 체력이 너무 떨어진걸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많이 안 좋은 걸까? 정말 크게 아픈거면 어떡하지?

약해진 마음은 금방 흔들렸다.

꿈 속에서처럼 눈도 안 떠지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안 나오면 어떻해 하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내가 아픈 것이다.

중대한 병에 걸려 살림도 못하고, 애들도 돌보지 못하고, 나 조차도 돌보지 못하는 일..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제일 무서운 일이다.

애들이 아프거나, 남편이 쓰러지는 건 덜 무섭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살펴 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프면 내 자리는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엄마가 어지럽고 몸이 안 좋다고 누워 있을때는 곁으로 다가와 머리도 짚어주고, 손도 주물러 주던 큰 아이는 내가 비척 비척이나마 움직이고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배 고파요'했다.

그렇구나..점심때가 많이 지나 있었구나.

도저히 음식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아 살살 차를 몰고 근처 까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들은 모처럼 엄마와 단 둘이 맛난 음식을 먹는 일이 퍽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손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손이 든든해질만큼 컸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열 한살 사내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몸집은 엄마만큼 커 졌어도 여전히 엄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아들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가슴에 사무쳤다. 나는 정말 오래 오래 앞으로도 오래 오래 건강해야 하는구나.

 

남편은 오후 늦게 돌아왔다.

어지럽다던 마누라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괜찮은 모양이구나.. '안심하는 눈치였다.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저녁에 김치볶음밥을 하는데 아침 먹은 것 부터 쌓여 있던 설거지로 부엌은 어수선했다.

두 딸들은 맵지 않게 해 달라고 해서 따로 만들어 먼저 차려주고,

그 다음으로 남편 것을 만들어 내 놓고

아들 것을 차려 주었더니 자기 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계란 후라이를 으깨어 밥에 섞었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내 것을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어 상에 앉았는데 아들은 그때까지도 계란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이다지도 철이 없구나.. 아아..

 

남편도, 아이들도 내가 움직이면 안 아픈줄 안다.

다 나아서, 아무렇지 않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을 잘 모른다.

반 나절 아파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집안은 금세 난장판이 되고 마는데

내가 정말 많이 아프면 모두 어떻게 할까.

남편은 애들 옷이라도 제대로 찾아 입힐 수 있을까? 아이들 배 고프지 않게 밥 차려 먹일 수 있을까?

머린 긴 두 딸들 머리 간수 해 줄수 있을까? 까탈스런 큰 아이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너무나 크게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가끔은 두렵다.

마흔 넘어 부쩍 힘에 부치는 체력도 겁나고, 아이들이 아직도 너무나 어린 것도 겁나는 때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는 이제 겨우 네 살..

큰 아이도 둘째도 네살 무렵의 일들은 잘 기억 하지 못하는데

만약 내가 지금 잘 못되면 막내는 엄마에 대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런 방정맞은 생각이 느닷없이 내 발목을 잡아 나를 한없는 두려움으로 떨게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한 없이 약해져 버린다.

아팠던 반 나절 동안 정말이지 맘 속으로 수십권의 소설을 썼다 지웠다.

 

하루 자고 일어나자 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피곤한거야 늘 매한가지라도 어지러운 것이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막내 젖을 떼고 나서 몸의 긴장이 풀어진 것일까, 부쩍 사방 여기 저기가 아픈 것 같이 느껴진다.

써야 할 글도 늘어나고, 이런 저런 모임에도 참여할 일이 많아지는데 체력이 달리는 것 도 같다.

야심착에 시작했던 해독쥬스도 두 달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게을러 지고 있고, 따로 운동하는

시간은 여전히 못 내고 있었던것도 이유가 될지 모른다.

 

건강해지고 싶다.

적어도 앞으로 40년은 더 짱짱하게 살아가고 싶다. 마흔에 낳은 막내가 내 나이가 되어서도

의지할 엄마가 곁에 있을 수 있게, 내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정말 정말 오래 오래 더 오래 살고 싶다.

 

반나절 아프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을러졌던 해독쥬스도 다시 열심히 챙겨 먹고

운동할 시간도 따로 내리라. 일이 는다고 건강을 잃는 일은 없게 해야지.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도 내게 의지하는 것을 조금씩 덜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지.

 

우리.. 오래 오래 같이 살자.

엄마만 아프지 말고, 힘든 사람 몫 서로 나누어 도와주면서 오래 오래 같이 가야지.

우린 가족이니까..  

아이의 변화, 꾹 참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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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은 다를 줄 알았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일반학교를 보내다가 다시 대안학교 문을 두드린 학부모들에게서 많이 나오는 얘기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너무 거칠어서 깜짝 놀랐다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행동보다는 말로 하고, 서로 존중해주는 모습을 볼 거라고 기대했는데 대안학교 아이들도 말과 행동을 거칠게 하고, 곧잘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이런 반응들 속에는 좋은 대우와 더 좋은 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더 나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미리 말하자면 그런 건 없다. 일반학교 아이들이나 대안학교 아이들이나 섞여 있으면 다 똑같다. 아니 다른 면이 있기는 하다. 늘 많이 뛰놀기 때문에 옷이 더 지저분하고 더 명랑하고 더 시끄럽다. 게다가 요즘엔 처음부터 대안학교에 특별한 가치를 두고 아이를 입학시키는 경우보다 일반학교에 보내면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어떤 면에선 대안학교 아이들이 더 드세고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반학교에서보다 더 거칠어질 수 있어

특히 일반학교에서 적응 문제를 겪다가 대안학교로 옮긴 아이들 중 일부는 일반학교에 다닐 때보다 행동이 더 과격해지기도 한다. 규제와 통제가 심하던 일반학교에서 억눌렸던 행동이나 감정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안학교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에 비해 더 활동성이 높은 남자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많이 보인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판정을 받은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통의 기준으로 볼 때 훨씬 더 활동이 활발하고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처음엔 행동이 더 거칠어지고 산만하고 활동 수준이 높을 것이다. 대안학교에선 충분한 놀이 시간이 주어지고, 수업 형태도 자유롭다 보니 아이들에게 오래 억눌려 있던 다양한 감정들이 과격한 행동으로 분출되기가 쉽다. 이런 모습은 짧게는 1년에서 몇 년씩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을 보는 대안학교 교사들의 시선은 일반학교와 전혀 다르다. 잘 훈련된 대안학교 교사라면 제도권 학교에서 아이가 겪었을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그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모두 발산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되도록 이끌기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공동체 전체가 더 자주 갈등하고, 충돌하고,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이의 행동은 똑같은데 그에 대한 교사의 평가나 판단, 대처하는 방식들이 기존 학교와 다르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돌봐야 변화 시작돼

아이의 행동이 더 심해진다면 걱정보다는 자연스런 과정으로 지켜봐 주자. 다만 그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사·학생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천방지축 날뛰던 아이들도 고학년이 될수록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충분한 발산과 충분한 이해를 경험하면서 아이의 내면이 서서히 변하는 것이다.

심각한 틱 장애나 산만함, 주의력 집중 장애로 일반학교에서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대안학교로 옮긴 뒤 약물치료 없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각자 지니고 있는 에너지만큼 충분히 활동하고 뛰어놀며 그 힘을 풀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아이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냥 놀 시간만 충분해도 해결될지 모른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제일 어려운 시대, 우리 아이들은 그 불행한 시대에 학교에 다니고 있을 뿐이다.

세로토닌으로 회복력과 인내력을 길러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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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_1.jpg» 한겨레 자료 사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시스템이 작동을 하여 코르티솔이 생산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덥치거나 자기가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면 뇌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을 힘들어 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많은 코르티솔이 생성된다. 아이들 중 낯선 상황이나 사람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까다롭고 내성적인 기질의 아이들이 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에 의하면 이 아이들은 코르티솔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거나 부정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회복력이나 인내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코르티솔을 높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부모들이 흔하게 하는 ‘소리 지르기’도 체벌만큼 나쁘다고 긍정육아 학자인 에이미 맥크레디는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때리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소리 지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따르면, ‘소리 지르기’도 아이의 안정감과 자존감에 심한 손상을 입힌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성이 강해서 모든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모의 갈등은 자신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육아일치는 중요하다. 아이에게 서로의 육아방식을 고집하여 갈등하다가는 아이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양육개입이 아무리 좋다고 한더라도 계속 엄마와 갈등하고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도파민 사회에서의 회복탄력성


현대의 경쟁적인 인간사회는 높은 도파민 활성을 지닌 성격을 선호한다. 즉, 지능이 높고, 목표 지향적이며, 경쟁적이고, 도전적이고, 탐구력이 강한 사람을 요구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효율성을 중시하고, 경쟁을 통한 발전하며,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자신의 덕목으로 삼는다.


그러나 뇌의 도파민시스템은 끊임없이 비교우위에 집착하고, 상대적인 성취감을 추구할 위험이 있다. 도파민시스템에 의한 몰입은 맹목적이어서 큰 성취를 이루게 할 수 있지만 현실과 상황에 집착해 빅픽처를 그리거나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지는 못한다. 또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심화되며 상대적인 성취 후에는 정서적 허탈감을 겪기도 한다. 도파민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단기적인 성취를 이루게 하고 학습동기를 일으키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이의 뇌에는 이러한 상대적인 성취감보다는 장기적인 성취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세로토닌시스템이 있다. 중뇌의 봉선핵에서 생성된 세로토닌은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등 대뇌의 전체 피질과 소뇌, 척수의 전 영역 걸쳐 분포한다. 세로토닌 신경회로는 이렇게 뇌 전역에 분포하면서 뇌의 전반적인 조절기능을 담당한다. 세로토닌은 과량의 도파민으로 인한 내적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심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아드레날린 폭주와 그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폭력성과 충동성, 공격성을 조절한다. 또한 게임중독과 같이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위험을 초래하는 도파민의 과활성을 억제한다. 세로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전구체로써 아이의 수면주기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밝고 활발하여야할 아이를 피로하고 우울하게 한다. 세로토닌은 뇌의 가소성을 활성화시켜 아이들을 낙천적이고 여유로우며 탄성회복력이 높은 아이로 자라게 한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좋고, 부모와의 유대감이 강하며, 도움을 얻기 위해 모임을 만들거나 모임에 참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를 알고, 자신의 삶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눌 줄도 알기 때문에 역경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탄성회복력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주도성이 강하다. 이들은 걱정스럽거나 힘겨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할 일이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신을 달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스스로 찾아낸다. 부모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표현할 수 있으며, 아끼는 봉제 인형을 꼭 껴안는 등 마음을 달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상황이 뜻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리를 한다.


탄성회볼격이 높은 아이들에게 걱정은 해결하면 그만인 개별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탈진시키거나 감정을 압도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은 좀체로 없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스트레스 상황조차도 쉽게 놀이로 바꿔버린다.


탄성회복력이 높은 아이를 위한 지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칭찬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 부딪히는 일도 많고, 그 와중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섣부른 칭찬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부모는 아이에게 맞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주고 격려하여야 한다. 나만의 길에서는 역경은 다소 있을지 몰라도 워낙에 내가 좋아하는 일인 만큼 역경을 견뎌낼 마음도 스스로 가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경험하게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본인이 가야 할 길을 직접 만들어가도록 격려하자. 시행착오가 있을 때 부모의 위로가 필요하다. 아이가 변할 필요가 있을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적응하도록 위로해주자. 외형적인 성적 향상을 지나치게 강제하기보다는 빅픽처를 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둘째, 복식호흡과 명상을 하라.


도파민이 차지하고 있던 뇌에 세로토닌이 들어서게 하려면 감각에 끌려다니지 말고 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 복식호흡과 명상이다. 아이의 뇌에서는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에 기쁨, 쾌감, 성취감에 관여하는 도파민이 방출되는데 아이는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집착한다. 복식호흡이나 명상을 하면 외부로부터 들어오던 오감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세로토닌이 방출되고 뇌파가 안정된다. 복식 호흡을 할 때는 생각을 복부에 집중하고 숨을 깊게 쉬어 배까지 내려가게 한 후 밖으로 내쉬는데, 숨을 들이마실 때는 배가 나오게 하고 내쉴 때는 배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아리타 교수가 아이들에게 복식호흡을 하게 한 뒤 뇌파를 측정한 결과, 깨어있을 때의 뇌파인 베타파에서 서서히 알파파가 나오는 것이 관찰하였다. 이는 대뇌피질의 과민한 활동이 억제돼 이런 저런 생각을 쉬고 마음이 안정돼 간다는 의미이다. 명상을 할 때는 눈을 감자. 그 순간 눈앞에 우주가 펼쳐진다고, 눈꺼풀이 닫히면서 생긴 어둠을 우주 공간이라고 상상하자. 그 깊은 어둠을 바라보며 조용히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느낀다. 그러는 사이 뇌파는 안정되고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며 아이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셋째, 세로토닌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라.


세로토닌시스템은 다른 신경전달물질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세로토닌은 음식물 섭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이미 뇌 안에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음식을 통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양을 증가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로토닌은 뇌 안의 절대량이 필요한 양보다 늘 부족한 상태이며 음식물을 통한 공급에 의해서 부족한 양을 채울 수 있다. 세로토닌을 높이려면 필수아미노산 중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의 전구체이기에 이것이 함유된 음식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트립토판은 주로 견과류와 곡식류에 많은데 호두, 들깨, 검은 참깨, 현미, 감자 등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또한 청국장과 치즈같은 발효식품, 우유와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 및 바나나 등에도 풍부하므로 이를 같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아이보다 부모가 문제…경쟁유발자들을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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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소장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학부모들과 사교육 탈출 방안을 상담하고 있다. 박 소장은 “사교육은 ‘단거리 성적경쟁’에서 부모의 불안감을 단지 일시적으로만 완화해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함께하는 교육]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에게 듣는다

얼마 전까지 잘나가던 강남 학원가의 전문상담가였던 그는 지금 시민운동가로 변신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만들기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왜 사교육 첨병에서 사교육 탈출의 전도사로 전향했을까.

‘반에 전교 상위권이 많아서 내 등수가 떨어진다’고 짜증내는 친구에게 ‘친구가 잘하면 축하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딸이 아직은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이러다가 내 딸만 처지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만약 이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불안감 속에 방황하며 아줌마부대에 휩쓸려 학원가를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자신에겐 그날 하루의 복습이 알맞다고 천천히, 조금씩 공부해가는 딸을 보며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처럼 꾸준히 하는 공부와 부모의 신뢰가 어우러진 시간을 다짐해본다. (꽃비)

내 아이만은 승자로 만들고 싶은 욕망 
‘행복한공부 부모학교’라는 부모교육 프로그램 후기로 누군가 남겨놓은 글이다. 도대체 어떤 교육이기에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도 딸을 철석같이 믿는 학부모로 변화시켰을까? 그곳에서 학부모들에게 ‘지금 바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를 교주로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이상한’ 강사를 만났다. 몇 달 전까지 받던 억대 연봉이 이제 월급 150만원으로 줄어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행복한공부연구소’ 박재원 소장이다.

그를 ‘확 저지르게’ 만든 건 어느 엄마의 한마디였다. 강남 유명 학원가에서 학습법과 진로상담을 하던 어느 날, 아이를 따라온 한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듣고 가면 아이와 행복하게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둔탁한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부모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성적표를 들고와서 “인생 헛살았다”며 내쉬는 어느 아버지의 한숨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아이가 아니라 부모교육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모교육에 몰두할수록 아쉬움이 쌓였다. 사적 영역에서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부모교육은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욕망’에 속절없이 용해돼버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현실에서 부모들은 ‘내 아이’만 처질 수 있다는 불안, 그 경쟁 속에서 ‘내 아이’만은 승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앞에 무기력했다. 그들에게 ‘불안과 욕망’의 실체를 알려주고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체계적인 부모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런 부모교육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보고 싶었다. 그가 사교육의 현장을 등지고 지금의 단체로 활동무대를 옮긴 이유다.

“하다 보니 전체적인 구조와 현실이 보였습니다. 상담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교육 시장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교육을 정상화하거나 제도를 개선해도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으며, 따라서 부모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부모교육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교육은 철저하게 ‘단거리 성적경쟁’에서 부모의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냥 제 속도로 가게 두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붙이면 얼마 가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모두가 잘못 가고 있는 상황에선 대세를 따르면 망하고 벗어나면 흥합니다.”

선생님 이야기 듣고 가면 
일주일이 행복해요 
이 한마디에 일 저질렀다 
부모교육이 우선이다 
전문가 해법에서 도망쳐라 
필요한 건 ‘스몰액션’이다

기다리기보다 준비할 수 있도록 돕자 
그가 자주 얘기하는 ‘사교육 탈출’ 사례가 있다. “제가 상담한 어떤 아이가 중학교 때 경제분야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혼자 힘으로 경제능력테스트에 응시도 하고 경제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시험공부가 아니잖아요. 당장 성적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부모가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아이를 그냥 지켜본 거예요. 이 아이는 좋아하는 경제분야를 정말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으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그걸 자신만의 공부기술로 발전시켰어요. 경제분야 노트정리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더니 그 기술을 다른 공부에도 접목시켰고, 결국 고등학교 때는 진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이 사교육에 지쳐 다 나가떨어질 때 이런 아이들은 씩씩합니다. 절대로 나가떨어지지 않아요.”

그는 사교육 현장의 허와 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면서, 기존의 잘못된 개념들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부모에게 ‘아이를 기다려 주라’고 하는 대신, ‘아이가 더 많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말한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막함은 ‘준비’가 주는 구체성으로 치환된다. 부모들은 답답해하지 않고 일종의 기대감을 갖게 된다.

사교육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많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학부모들이 겪는 혼란은 수많은 전문가가 제시하는 너무 많은 해법 탓이 크다. 지금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당장 조금이라도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스몰액션’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제아무리 좋은 부모교육을 받아도 스스로와 아이들을 비교하도록 만드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결국 또다시 ‘불안과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는 ‘나를 불안하게 하고 경쟁심을 유발하는 결정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볼 것을 권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과 만나는 것을 자제함으로써 ‘사교육 불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만날 시간에 건강한 교육단체 카페라도 들어가 다른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저는 부모들이 학교나 사회단체 같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데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그렇게 단체 안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하다 보면 상황이 더 잘 보이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교육이 일으키는 불안과 욕망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렇게 가는 것이 진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껏 경험하고 실험한 부모교육을 체계적인 ‘표준 교육과정’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그 출발점으로 경기도교육청 학부모교육 티에프(T/F) 팀장을 맡았다. 사교육 영역에서 개발된 교육 가운데서도 정말 좋은 것들을 발굴해 공교육 영역에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돈 있는 몇몇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시민단체로 옮겨 온 지금, 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노동운동 시절처럼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 길게 보려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다음 길은 그다음 가서 열리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깨닫도록 해야 
‘성공과 실패는 예측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은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고, 지금밖에 없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네가 이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저한테 학습법 강의를 들은 아이들이 만들어준 제 ‘어록’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이 말을 아이들이 깨달으면 공부를 되게 열심히 합니다. 아이들은 불안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성적이 올라갈까? 내가 대학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요. ‘그래 어떻게 될지 몰라. 근데 내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하는 건 맞지.’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은 제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나라 가정이 철저하게 사교육을 중심으로 해체되고 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슬픈 농담이다. 이탈리아 작가이자 언론인인 피티그릴리는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자신이 발간하는 신문의 사설을 매일 아침 읽는다고 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인간일지라도 결국 자신이 보고 듣는 만큼만 생각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학부모인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날마다 보고 들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우선 수많은 아이와 부모의 사교육 피눈물을 목격한 박재원 소장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


엄마들 얘기들으면 헷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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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고민상담소

Q 소신을 지키고 싶지만 엄마들 사이에 오가는 얘기를 들으면 휘청휘청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요. 동네에서 ‘왕따 엄마’로 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정보와 소문 구별해야…학교 활용 바람직 교육 분야에서 오래 경험을 쌓은 부모라도 정보력에 자신감을 갖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복잡한 입시제도 앞에서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자녀교육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문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학부모들 몇몇이 모이면 으레 자녀 교육을 위한 정보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공부에 도움이 되고 성적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나오면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카더라’식 소문이 입시 정보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위험천만한 루머가 고급정보로 둔갑해 학부모 사이에 떠돌고 있다. 제도가 변해서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는데도 대단한 입시 비법인 것처럼 포장된 경우도 있다. 학생의 입시 경쟁력 포트폴리오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대입해서는 안 되는 특수한 정보가 보편타당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사례도 많다. 저질 정보, 오염된 정보들이 입소문을 통해 무섭게 확산된다. 불안감을 부추기거나 사교육 소비를 조장하는 정보는 또 얼마나 흔한지….

오염된 정보로부터 소신을 지키려면 사실에 근거한 ‘정보’와 근거 없는 ‘소문’을 구별해 들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떠도는 소문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일단 의심하고, 직접 확인한 후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정보인지 따져보자. 그러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겠다는 소신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불안감을 조장하거나 부모로서 따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정보는 가능하면 듣지도 보지도 말자. 특히 어떻게 해서 효과를 봤다는 식의 경험담은 가급적 무시하는 것이 좋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를 활용해 자녀교육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돌팔이 의사에게 아이의 건강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우나 고우나 학교를 신뢰하고 학교를 최대한 활용하는 부모들이 정보전에서도 승산이 있다. 일단 학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믿고 따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오염된 정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밖에서 떠도는 소문이나 정보를 믿고 따르다가는 속수무책으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당신은 타이거맘, 스칸디맘, 헬리콥터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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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강남의 한국에니어그램연구소가 연 ‘내적 여정 에니어그램 기본1과정’에서 박정자 소장이 강의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부모 성격이 자녀를 좌우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 성격 유형 파악에 열심이다. 성격 유형을 알아낸 뒤 자녀 학습·진로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정작 부모 자신은 자기 성격을 모른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 부모와 자녀 성격이 안 맞으면 엄마, 아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부모인 내 성격에도 얼마든지
단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2~3년 전 한국에는 ‘타이거맘’ 바람이 불었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가 딸들을 일방적 지시와 통제로 키워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대치동 맘’ 방식이 미국에서도 통한다니 ‘이제 교육 분야에도 한류’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추아 교수 방식이 첫째 딸 소피아에게는 성공했지만 둘째 딸 룰루한테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러시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모스크바 크레믈 광장 한복판에서 룰루가 “엄마가 싫어! 바이올린도 싫고 다 싫어! 엄마는 최악이고 이기적이고 날 위해서 한다는 핑계로 엄마를 위해 다 하는 거 아냐?”라고 절규했다. 이 사건 뒤 추아 교수는 아이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스스로 밝힌 적도 있다.

추아 교수는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첫째 딸 성공 방식을 고집했다가 둘째 딸한테는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상담심리사인 이남호 대한성공회 살림터 소장은 “추아 교수 사례는 자녀에 대한 배려 없이 부모가 자신의 성격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경우”라며 “요즘 부모들은 자녀 성격 유형 파악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성격 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2년 뇌교육기관 ‘브레인월드’가 0~19살 자녀를 둔 부모 1774명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 양육 때 가장 고민되는 게 ‘자녀 성격’이라는 응답이 43%나 됐다. 한데 정작 부모 자신의 성격유형이 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다.

이남호 소장은 “부모의 성격유형 파악은 ‘나는 모르고, 자녀들은 아는’ 내 성격의 ‘맹점’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부모와 자녀의 다름’을 ‘자녀는 틀림’으로 몰아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헬리콥터맘이 될 수도 있었으나…

서울 마포구에 사는 고아무개(45)씨는 중2 아들을 둔 엄마다. 지배욕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자식 사랑’을 내세워 아이들을 통제하기 쉬운 성격유형에 속한다. 자녀와 부모를 분리하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헬리콥터맘’이 되기 쉽다.

“하루는 우연히 독일 영화를 본 아들이 거친 억양의 독일어가 좋아졌다며 학교성적과는 상관도 없는 독일어를 배우겠다고 선언하더군요. 말리지 않고 내버려뒀어요. 아들 성격을 잘 알거든요.”

아들은 3개월 만에 독일어 공부를 포기했다. 상당수 부모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 엄마 말 안 듣더니 꼴 좋다”며 핀잔을 주기 쉽다. 그러나 고씨는 달랐다.

“나는 아들을 치켜세웠습니다. 인내심 부족하고 충동적이지만 열정적이거든요. 사랑이 지나쳐 집착으로 흐르기 쉬운 내 ‘성격유형’을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약간 무관심했죠.”

사춘기 아들과 매끄러운 관계인 그는 “부모인 내 성격에도 얼마든지 단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딸 둘을 키우는 아빠인 고아무개(37)씨는 의존형에 속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딸이 좀 더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대안교육을 선택할 수 없었다.

고씨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치열한 경쟁 구도와 공격형 문화에서 아이가 뒤처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부모의 성격유형이 이렇게 자녀 학습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격형·의존형·움츠림형 등으로 나뉘어

성격유형을 파악하는 도구로는 엠비티아이(MBTI)와 에니어그램(enneagram)이 대표적이다. 엠비티아이는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 등 4가지 선천적 경향성에 따라 성격유형을 16가지로 구별한다.

에니어그램은 200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해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자인 수피교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주로 영적 지도와 상담에 쓰였다. 완벽주의자(1유형), 이타주의자(2유형), 성취자(3유형), 개인주의자(4유형), 관찰자(5유형), 충성가(6유형), 낙천주의자(7유형), 지도자(8유형), 평화주의자(9유형) 등 성격을 9가지로 나눈다.

엠비티아이와 에니어그램 둘 다 성격유형 파악에 유용하지만 에니어그램은 성격을 관찰하고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한국에니어그램연구소 박정자 소장은 “에니어그램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 자신의 삶을 더듬어가며 내면에 다가서는 성찰의 과정을 병행하는 만큼 어린 자녀를 이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성격유형은 행동유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뉘기도 한다. 공격형(1, 3, 8유형) 부모는 원칙을 중시하고 성공지향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하다. 타이거맘이 여기에 속한다. 엄격한 훈육 아래서 자녀들은 책임감 있게 성장한다. 하지만 통제가 지나칠 수 있다. 야단을 칠 때도 감정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의존형(2, 6, 7유형) 부모는 희생적이고 매사에 충실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자녀를 자신과 분리해 생각하는 데 서툴다. 헬리콥터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움츠림형(4, 5, 9유형)은 낭만적이고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부모들이다. 자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교감을 중시하는 ‘스칸디맘’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유형은 아이의 잘못을 제때 바로잡지 못하고 방치할 수도 있다.

성격유형별 우열 차이는 없어

이남호 소장은 “각 성격유형에 따른 우열은 없다. 특징이 다를 뿐”이라며 “단, 우리나라에서는 공격형 부모 유형이 도드라져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상담 경험으로 보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격형·의존형·움츠림형이 각각 3분의 1 정도”라며 “그러나 지배와 힘, 성공과 성취를 강조하는 공격형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부모 역시 공격형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은 결과 이 유형이 도드라져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성격을 개조하거나 뜯어고치라는 게 아니다”라며 “내가 어떤 성격유형의 부모인지 좌표를 그려본 뒤 찬찬히 돌아보며 그에 맞춰 자신의 성격적 굴레를 극복해 나가는 게 훨씬 발전적이며 탈도 없다”고 조언했다. 박정자 소장 역시 “집을 허물어 다시 짓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성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어린이수 따라 권리금…보육보다 돈벌이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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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로 운영하며 빚 갚는 데 치중
5000만~6000만원에 사고팔기도
연합회 “지원 부족해 불법” 정부탓
“설립자격 강화하고 국공립 확충을”

27일 경찰 수사 발표를 통해 아동학대에서 횡령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으로 어린이집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집 운영 비리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준법경영을 하겠다”면서도 “민간 어린이집은 시설투자비, 증·개축 비용 등이 국공립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들지만 정부 지원은 부족하다. 이 때문에 특별활동비 일부를 업체로부터 돌려받아 어린이집 운영비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되레 정부 탓을 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상당수 민간 어린이집의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 ‘돈벌이’로 전락한 어린이집들 서울 서대문구에서 공립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출을 얻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다보니 빚을 갚는 데 치중한다. 그러니 당연히 보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원장들이 빚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교사인건비·교재교구비 횡령 등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날 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특별활동비 횡령과 보육교사 자격증 장사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지난 3월부터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막대한 국가·지자체 예산이 어린이집에 투입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민간 어린이집은 아이들의 머릿수에 따라 권리금을 얹어 사고팔리기도 한다. 27일 어린이집 매매 누리집을 보면, 어린이집의 권리금은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5000만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이것도 내 돈 들여 가꾼 재산인데 돈 받고 파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마저 나돈다.

이런 ‘보육 돈벌이’ 행태는 어린이집의 대형화·상업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이번 경찰 수사에서도, 횡령액이 가장 큰 정아무개(49)씨는 어린이집 3곳을 운영하고 있었고, 6억4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전아무개(52)씨 역시 어린이집을 2곳 운영하고 있다. 또 2억2000여만원을 횡령한 현직 구의원 이아무개(51)씨는 5곳의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서울의 한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정부의 지원이 많아지면서 요즘엔 어린이집이 전문 사업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교육철학이 없는 일부 원장들이 아이를 돈으로 보고 싼 식자재를 먹이거나 돈을 횡령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선량하게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피해가 많다”고 말했다.

■ 감독 소홀에 솜방망이 처벌 박근혜 정부 들어 복지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감독 소홀로 ‘엉뚱한 사람만 배불리는’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은정 참여연대 간사는 “보육은 국가 최대 보조금 사업인데 1년에 두차례, 그것도 4만여곳 중에서 400~800곳만 정기점검하는 건 문제가 크다. 지난해에도 리베이트와 교사 허위등록 사건이 터졌는데 솜방망이 처벌로 지나갔다. 시민사회 쪽에선 지난해 이미 복지부에 감독 인력의 확충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달에 어린이집 등 돌봄시설 학대 근절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학대·비리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규정을 총동원해 퇴출 등의 강력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규정에는 1000만원 이상의 부정수급이 있을 경우 시설을 폐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어린이집의 진입장벽을 좀더 높이지 않으면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보육서비스의 안전성과 공공성을 위해 개인의 민간 어린이집 설립을 제한하고 ‘보육법인’ 설립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어린이집 설치·운영 자격을 국가와 지자체, 보육법인·사회복지법인·학교법인 및 사업주 등으로 제한함으로써 보육서비스의 공공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해야” 민간 어린이집 보육의 질이 계속 도전을 받는 상황이지만, 아이들 대부분은 민간 어린이집에 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4만3312곳 어린이집 가운데 국공립·법인 소유는 8.5%이고, 개인 소유의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89·9%에 이른다.

결국 근본적 해결책은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미순 참보육학부모회 운영위원장은 “정부가 보육을 시장에 맡기니까 원장들이 이윤추구에 급급해한다.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위해 나서야 하는데 의지가 약하다. 우선 비리·부정 어린이집을 국가가 인수하면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아이들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어린이집을 급속하게 늘리면서, 어린이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소홀해지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한 어린이집의 확대라는 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준현 정환봉 석진환 기자 dust@hani.co.kr

중국산 먹여놓고 “유기농이니 식대 더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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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강동·송파 어린이집 아동학대·횡령 무더기 적발
쌀·김치 원산지 위조하고, 업체선 리베이트 챙겨

서울 송파경찰서가 아동학대와 횡령 등의 혐의를 두고 수사중인 민간 어린이집들은 ‘어린이를 학대하기 위한 시설’로 봐도 될 정도였다. ‘어린이들을 돈으로 보고 장사를 해왔다’고 해도 반박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강동구·송파구 등에 어린이집 3곳을 운영하고 있는 정아무개(49)씨의 경우다. 정씨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득을 챙겼다. 경찰 수사 결과를 보면, 정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청과물 시장에서 팔리는 배추에서 떨어져나온 시래기를 싸게 사들여 아이들에게 먹였다. 다량으로 사들인 시래기 운반도 아이들에게 시켰다. 수업중인 아이들에게 시래기를 비롯한 식자재를 1층부터 4층 조리실까지 나르도록 했다. 학부모들이 항의하자, 정씨는 “아이들이 좋아한다”거나 “운동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미국산 쌀이나 중국산 김치는 원산지 표시를 국내산으로 위조했고, 더 나아가 학부모들에게 유기농이라고 속여 매달 최고 6만원까지 ‘유기농비’를 추가로 받아내기까지 했다. 정씨는 비싼 재료를 쓴 것처럼 납품업체에 매달 500만원을 내고는, 이 중 350여만원을 돌려받아 횡령했다. 경찰은 “정씨가 3년간 횡령한 7억3000여만원 중 1억여원이 식자재 리베이트를 통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20여곳의 어린이집은 하루에 1ℓ짜리 우유 2개를 80여명의 아이들에게 나눠 먹였다. 그러고도 정상적으로 배식한 것처럼 속여 월 50만~90만원씩 떼어먹었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남편이나 딸, 친척 등을 거짓으로 보육교사로 등록해 보조금을 받거나, 고용하지 않은 운전기사나 보육도우미를 채용한 것처럼 속여 돈을 타내기도 했다. 또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동을 원생으로 등록시켜 국고보조금을 받아냈다.

음악·도예·체육 등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부모들에게서 받는 특별활동비도 빈번히 횡령했다. 어린이집은 부모들에게 특별활동비를 받고 특별활동 교육을 위탁한 업체에 전액을 지급했다는 증빙서류를 남긴 뒤 차명계좌 등으로 60~70%에 이르는 돈을 돌려받았다. 그 대신 어린이집에서는 주 2회 1시간씩 해야 하는 특별활동을 주 1회 20분~1시간씩만 진행했다.

다수의 어린이집 원장들은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공금을 쓰고 나서 보육교사와 회식했다고 영수증을 처리하거나, 보육교사에게 명절 선물을 준다며 수백만원의 지출결의서를 작성한 뒤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공사비, 교구 구입비 등을 부풀려 차액을 챙긴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발급받은 어린이집 교사도 무더기로 입건됐다. 보육교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는 ㄱ보육교사원장 안아무개(50)씨는 1인당 200만~320만원을 받고 1년에 975시간에 이르는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노아무개(41)씨 등 16명에게 허위로 보육교사 수료증을 발급해줬다. 전 ㅅ대 교수이자 현직 목사인 김아무개(63)씨는 대학 제자인 어린이집 원장들과 안씨를 연결해주며 허위 수료증 발급을 알선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보육교사원장 안씨는 주말반 강의를 개설하지도 않고 허위로 수료증을 발급해 왔다. 그러나 보육교사 자격증 발급을 맡은 한국보육진흥원은 자격증을 발급해줬고, 보건복지부는 위탁교육까지 맡겨 보육교사 양성제도의 허점이 드러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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