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현북스 제공 |
[책과 생각]
농촌 배경 9편의 짧은 이야기
땀흘려 일하는 삶의 가치 강조
변해가는 세태와 세대 갈등도
윤기현 글, 정가애 그림/현북스·1만1000원우리 농촌의 현실과 농촌 아이들의 삶을 작품 속에 녹여온 윤기현 작가의 새 동화책이 나왔다. 이번 책에 실린 9편의 짧은 동화들도 모두 농촌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배경은 하나지만 우화같은 짧은 교훈담부터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 힘들게 사는 이웃들의 아픔을 현실적으로 다룬 이야기 등 이야기의 갈래는 다양하다.표제작은 강씨 성을 가진 사람과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인생 역전을 통해 성실함의 가치를 알려준다. 두 사람은 모두 집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해야 했는데 강씨는 돈 많고 흥청망청 사는 부잣집으로 갔다. 기대대로 그는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머슴살이를 했다. 반면 고씨는 깐깐하고 부지런해서 다른 이들이 마다하는 집을 부러 선택해 들어갔다. 머슴살이는 고생스러웠지만 주인으로부터 알뜰살뜰 사는 법을 배워 착실하게 살림을 모았다. 주인이 결국 파산한 강씨는 새경도 받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고씨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왔다. 독립한 고씨로부터 소개받아 깐깐한 주인의 머슴살이로 가게 되면서 강씨는 후회한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어. 내가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편한 것을 먼저 생각했으니 이런 꼴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 땀 흘려 일하는 삶의 가치는 이 책에서도 변치 않는 주제다.‘썩어 돌아온 고구마’는 변해가는 세상의 가치와 세대갈등을 다룬다. 광산 양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모두 실패하고 소작농으로 열심히 일해 큰아들을 대학 공부까지 가르쳤다. 성공한 아들에게 용돈 받으며 편히 쉬라는 주변의 권유에 “사지 쌩쌩한데 내 손 묶어 놓고 얻어먹는 것이 살로 가겄소?”라며 열심히 농사짓던 할아버지가 며칠째 밥맛을 잃고 일손을 놓았다. 애써 키워 아들에게 보냈던 고구마가 썩은 채 돌아왔기 때문이다. 찾아가지 않아서 업체 창고에 있다가 썩어버린 것이다.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사람 먹는 것을 천시한 놈들은 배를 곯아 봐야 해. 한 십 년 가물어서 흉년이 들어 봐야 곡식 귀한 줄 알 것인데…” 할아버지는 썩은 고구마만 떠올리면 그게 꼭 40년 동안 흙을 일군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꽹과리 치는 도깨비 할아버지(‘녹두꽃 핀 계절’)와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정신을 놓은 이웃집 청년(‘씻김굿’)의 이야기는 점점 옅어져만 가는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환기한다.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