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예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도록 하는 거짓말이거나 적어도 진실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짓말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주 그럴듯하게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나라는 관점에서 점수를 매기면 동화작가 송미경은 단연 메달리스트다. 자신의 동화 속 주인공이자 우주선 타고 안드로메다로 떠난 준영 오빠처럼 송미경은 독자에게 “나 믿지?” 하고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오가며 말을 건넨다.제45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어떤 아이가>는 송미경의 거짓말이 어떤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처음에는 ‘어, 이건 뭐지?’ 싶은데 자꾸 생각이 나고, 때로 킥킥대며 웃다가 슬금슬금 무섭다가 슬퍼 가슴이 저리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현실과 상상,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오가는 공간을 만들고, 저마다 표정이 다른 사람들을 그곳에 살게 한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어떤 단편이 제일 재미있었는지를 꼽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손꼽은 단편을 통해 서로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표제작 ‘어떤 아이가’는 토요일 아침 초등학교 4학년 문재가 겪은 일을 담았다. 문재는 아침 늦게 일어나 물을 마시다 ‘어떤 아이’가 가족 모두에게 그동안 이 집에서 편히 쉬고 간다며 써놓은 이별 편지를 발견한다. ‘에이 누가 장난을 치나’ 싶었지만 ‘어떤 아이’가 사용한 것이 분명한 숟가락, 젓가락, 컵과 양말, 칫솔 등이 버젓이 있다. 순간 오싹해진다. 정말 ‘어떤 아이’가 집에 살았던 건 아닐까. 주인 몰래 집 안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도 많지 않은가. 어리둥절해진 문재는 자기만 모르나 싶어 가족들에게 차례로 묻는다. 하지만 중학생 정재는 학원을 갔다 늦게 돌아와 집에서는 잠만 잔다. 누나인 수아는 가수 된다고 합숙하러 가 아예 집에 살지 않고, 엄마는 그런 누나 뒷바라지하려 빵집을 운영하느라 집에 없다. 아빠는 밀린 잠을 자느라 정신이 없다. 가족들은 저마다 바쁘고 서로 무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없는 하숙생들이다.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가족사진 찍던 날도 ‘밥 한 끼 안 먹고 모두 바쁘다고 5분 만에 제각각 흩어’졌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이쯤 이야기하면 가족의 해체를 다룬 내용이군 하겠지만 그것만일까. 문재네 가족사진 속에서 노란 옷을 입고 해맑게 웃는 ‘어떤 아이’를 만나는 순간, 그 아이가 써놓은 또 한 장의 쪽지를 읽는 순간, ‘어떤 아이가’ 진짜로 이집에 살았던 게 아닐까 정말로 궁금해진다. 동화는 끝이 났지만 독자에게는 이제 시작이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작가는 독자의 어깨를 꽉 잡고 놔주지 않는다. 송미경의 스타일이다.우주선을 타고 가는 오빠, 노란 옷을 입고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아이, 마음은 서른넷인데 몸은 다섯살인 아이 등 동화 속 설정은 분명 비현실적이지만 또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삶의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피카소가 ‘예술가는 거짓의 진실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초등 5학년부터.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