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며 가장 싫어한 과목은 수학과 물리 그리고 체육이었다. 기억하는 한 난 원래 달리기나 무용 같은 걸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운동을 하며 칭찬을 들었는데 그 작은 격려에 운동이 배는 재미있어졌다. 아무리 사소해도 무언가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고 진짜로 잘하게 된다. 어른도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못하는 아이는 없다. 누구나 잘하는 것이 한 가지 이상은 있다. 은이정의 <난 원래 공부 못해>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다.여기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교사가 있다. 새 학기 첫날, ‘멋진 연희 샘’이라고 칠판에 써놓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아니, 아니, 다른 이름이 있잖아. 멋진 연희 샘, 멋진 연희 샘이라고 해야지”라고 할 만큼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진경이는 속으로 연희 샘을 ‘그 여자’라고 부른다. 지금은 저래도 일 년 뒤면 작은 시골 학교를 떠나 큰 학교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떠나버릴 테니까. 지금까지 담임들이 모두 그랬으니까.동화는 조숙한 진경이의 시선으로 의욕이 넘치는 연희 샘을 지켜본다. 연희 샘이 ‘원래 공부를 못하는’ 찬이에게 특별 숙제를 내주고, 도시에 다녀온 후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다섯 개 외우기, 수학 문제 다섯 개 풀기, 한자 다섯 개 외우기를 시키며 갈등이 시작된다. 일명 ‘오!오!오! 대작전’이 시작된 뒤 쉬는 시간마다 뛰어놀던 아이들은 아침에 오면 공책에 숙제를 적고, 수학풀이를 확인받고 영어랑 한자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외워야 한다. 쪽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가서 다시 외워야 한다. ‘오!오!오! 대작전’이 시작되며 아이들의 웃음이 줄어들었다. 연희 샘은 이제 아이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기계적으로 숙제 검사를 하고 혼을 낸다. 그토록 연희 샘을 따르던 찬이도 더 이상 ‘멋진 연희 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찬이를 비롯한 반 아이들 모두가 ‘공부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독자는 공부는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대부분의 어른이 그렇듯 연희 샘도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뿐’이라고 공부 못하는 찬이를 평가하지만, 정작 찬이가 어떤 아이인지, 집에 가서 농장 일을 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알지 못한다. 진경이와 함께 찬이네 농장에 다녀오던 날 연희 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농장에서는 나보다 찬이가 더 어른이구나. 힘든 일인데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아. 찬이한테 알파벳하고 구구단이 얼마나 중요할까?”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동화는 공부머리가 있는 진경이와 일머리가 있는 찬이라는 서로 다른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잘하는 일이 있으며, 공부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찬이는 늘 “난 원래 공부 못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연희 샘이 찬이에게 “왜 공부를 안 하고 놀려고만 하니?”라고 다그치지 않는다면, 혹은 찬이에게 더 잘하는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 거다. 아이를 둘러싼 사람 가운데 단 한명만이라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 아이는 틀림없이 변하니까. 초등 4학년부터.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