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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 삶의 솜씨, 아이들과 나누니 세대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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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1층 탑골미술관에서 ‘이상한 실험실’ 행사가 펼쳐졌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한인덕씨가 둥근달어린이집 어린이들에게 짚풀로 만든 달걀 꾸러미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제공

탑골미술관 해설사 한인덕씨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했어요.”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긴장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탑골미술관 안으로 어린이들이 쏟아지자 굳었던 얼굴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인사를 마친 뒤 한 명당 어린이 세 명과 짝지어 미술관에 전시된 짚풀 공예품을 구경했다.

“여기 물건이 많이 있네. 구경해보자.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 지푸라기 맞아. 그런데 어디서 나는 걸까? 여러분이 매일 먹는 쌀 키울 때 나온 거야.”

한인덕(70) 할머니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은 금세 다른 물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건 뭐예요?”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여러분 비 오면 뭐 입지? 비옷 입지. 옛날에는 짚풀로 비옷을 만들어 입었어. 비 오면 할아버지들이 이걸 뒤집어쓰고 농사를 지었거든. 여기 꾸러미 안에 든 건 뭘까? 달걀이 있네. 예전에는 달걀 여러 개를 짚풀로 묶어 팔았단다.”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져보던 아이들은 미술관 한쪽에 놓인 짚풀더미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넘쳐나는 기운을 한바탕 쏟은 뒤에 한인덕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짚풀로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짚풀 한 단의 끝을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실로 묶고, 튀어나온 부분을 가위로 정리하니 예쁜 작품이 되었다.

짚풀공예 체험 ‘이상한 실험실’서
손주뻘 어린이들과 세대교감 만끽
종일 서울노인복지센터서 지내며
자원봉사에 탁구·연극동아리 바빠 

작년부터 노인일자리 도슨트 시작
구내식당 1000원, 인근 극장 2000원
월 활동비 20만원이면 용돈도 해결
소양·작품 교육까지 받아 1석2조

‘이상한 실험실’ 행사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어르신들과 둥근달어린이집 아이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제공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1층에 있는 탑골미술관에서 ‘이상한 실험실’ 행사가 펼쳐졌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서울노인복지센터 어르신과 둥근달어린이집 어린이가 함께 미술체험을 하며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문화를 교감했다. 미술관 인근 어린이집 4곳과 함께 진행하는 이 행사는 12월까지 매달 열릴 예정이다. 첫 행사인 3월의 주제는 짚풀 공예였다. 20명의 어르신 자원봉사자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짚풀로 공예품을 만들어 전시했고, 어린이에게 배움을 나누었다.

탑골미술관 관장 희유 스님은 “지금 우리가 전통공예라고 부르는 것은 옛 어르신들의 일상이었고, 자연스레 터득한 삶의 기술이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어르신들이 그동안 간직해온 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다음 세대와 전통문화를 나누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시간여 행사가 끝나고 어린이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뒤 한인덕씨는 땀을 훔치며 “지난밤은 어떤 아이가 올까 설레어서 잠을 설쳤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예빈이는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10개월 정도 지켜보면 아이들의 적성이나 소질을 찾는 데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친손주들과 또래여서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사실 손녀, 손자랑은 어쩌다 밥 한 끼 같이 할 뿐, 이런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거든요. 여기 어르신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손주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할까요. 오늘 대리만족했는데, 손주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한 곳은 의외로 미술관 한쪽에 모아놓은 짚풀더미였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제공
한씨는 서울 토박이라 지난달 첫 교육을 받을 때는 아이들만큼이나 짚풀 공예가 생소했다.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공예품을 만들면서 옛 전통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젊을 때 재봉사·조리사를 했던 한씨는 2000년 은퇴한 뒤엔 집 근처 용산구청에 가서 발마사지 교육을 받고 자원봉사도 했다. 2007년 은평구로 이사하면서 이웃들의 권유로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집이랑 센터랑 같은 3호선이라 교통도 편하고, 센터 안에 동아리도 31개나 있어 할 게 무궁무진해요. 저는 한국무용, 댄스스포츠, 연극, 탁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9시에 센터에 나와서 맨손체조 하고, 탁구 치고, 동아리 활동 하느라 하루 종일 바빠요. 남편도 이 센터에 다니는데 각자 활동하는 게 달라서 가끔 얼굴만 마주칠 뿐 따로 놀아요. 호호.”

한 어린이가 한인덕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짚풀 한 단의 끝을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실로 묶어 빗자루를 만들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제공
서울노인복지센터에 탑골미술관이 생긴 건 2013년 5월이었다. 미술관이 자리한 1층은 원래 노인들이 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노인복지센터에 미술관이 있는 건 아마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유일할 겁니다. 미술관을 처음 만들 때는 ‘우리 쉬는 공간 없애고 무슨 미술관이냐’고 불만을 갖는 분들도 계셨죠. 개관한 뒤엔 동아리 작품들도 전시하고 세대끼리 소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니까 대부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미술은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2013년 11월에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할 때 어르신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남들 따라 지원하게 됐어요. 미술관 직원들이 하는 작품보존, 작품설명, 안전관리 등을 돕다 보니 미술에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죠.”

탑골미술관 ‘이상한 실험실’ 봉사하세요
탑골미술관은 2013년부터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실버 도슨트(미술관 해설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씨는 지난해 3월 실버 도슨트 2기로 뽑혔고, 올해 3기에도 합격해 활동중이다. 매년 3월부터 연말까지 10개월간 활동하고, 하루에 4시간씩 일주일에 이틀 근무한다. 월 활동비는 20만원이다.

“올해는 30명 뽑는데 60명 정도 지원했어요. 월 20만원 받는다고 우습게 여기시는 분도 계신데, 서울노인복지센터 구내식당 점심값이 1000원입니다. 집에서 오고 가는 지하철은 무료고, 근처 허리우드극장에 가면 영화를 2000원에 볼 수 있어요. 각자 쓰기 나름이고 빠듯하겠지만 20만원으로 한 달 용돈 가능합니다. 게다가 기본 소양교육부터 전시될 작품 교육까지 돈 주고도 받을 교육들 아닌가요. 이런 기회 얼마나 좋습니까.”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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