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해와나무 제공
어른 못지않은 아이들의 정글
더욱 복잡해진 폭력의 양상
더욱 복잡해진 폭력의 양상
노경실 글, 조윤주 그림/해와나무·9000원3학년 1반에 사건이 벌어졌다! 반장 현호가 교무실에 간 사이 영찬이가 진우를 때려 진우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 진우는 “태권도 한다는 애가 어떻게 사람을 때려? 그게 태권도 정신이야? 난 용서 같은 거 못 해! 안 해!” 발버둥을 치고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겠다고 난리다. 이때 하필 선생님은 급하게 아기를 낳으러 가셨다.그런데 단짝 성광이한테 들은 사연이 간단치가 않다. 현호가 없는 사이 여자반장 미미는 소란스러워진 교실을 정리하려다 말이 안 통하자 울어버리고 미미를 좋아하던 영찬이 나서면서 진우와 친구들이 영찬이를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태권도왕이 됐다고 힘자랑하니?” “맞아, 맞아! 영찬이는 머리 대신 힘만 쓸 줄 알잖아!” “동물은 너처럼 머리는 안 쓰고 힘만 쓰거든, 혹시 네 고향이 동물원 아니니? 거기 있는 동물들이 네 친척이지? 우하하하……” 어눌한 영찬이가 지난주 태권도왕이 됐던 게 고까웠던 진우는 영찬이를 심하게 공격했고 아이들까지 덩달아 “김영찬, 너, 미미 좋아하지?” “미미랑 진짜로 연애하니?” 놀리자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어린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동화작가로 평가받는 노경실 작가의 신작은 학교 폭력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단순히 물리적 폭력 뿐 아니라 장난이나 농담이라는 핑계 속으로 숨어버리는 언어폭력, 그리고 폭력을 둘러싼 아이들의 서열화와 미묘한 심리적 기제까지 읽어내고자 한다. 어렵사리 싸움이 정리된 뒤 영찬이는 갑자기 친하게 어울리려는 친구들의 추임새로 주먹대장으로 군림하게 되고, 미미는 영찬이를 이용해 반장 노릇을 해보고자 한다. “하루아침에 영찬이가 왕이 된 것 같”다고 아이들은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영찬이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반에서 가장 약한 동석이와 은태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어른들은 해맑고 천진하다는 말로 눈감고 싶어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은 어른들의 것 못지않게 험난한 정글이다. 어른만큼 사회적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 더 가혹하고, 더 동물적이다. 요즘처럼 가슴보다 머리가 비대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폭력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다. 책 속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한소리로 “때리지 마!”를 외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이상적인 해결방식이 실제 교실에서 제대로 작동할까? 어린이에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결론이지만 부모로서는 좀처럼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