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베이비트리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아재의 흰 운동화

$
0
0
00531749105_20150522.JPG
그림 평화를 품은 책 제공
80년 5월 학살 목도한 어린이
기억 속 피묻은 운동화를 신다
143220287258_20150522.JPG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
최유정 글, 이홍원 그림
평화를 품은 책·1만9800원

5월은 어린이달, 가족의 달 같은 따뜻한 수식어의 계절이면서 여전히 핏빛 기억 선연한 ‘5월 광주’의 계절이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어린이 역사책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중요한 현대사의 사건 가운데 하나로 정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5월 광주를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불편해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참혹성과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끝나지 않는 이야기로 지금을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어린 아재의 오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이다. 80년 5월 어린이였던 이가 끔찍한 학살을 목도하면서 35년이 지나 아저씨가 된 지금까지 왜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광주 근처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던 정호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친구들이 누가 쏘는 건지도 모르는 총에 맞아 죽는 광경을 지켜본다. 믿기 힘들지만 이건 실화다. 1980년 5월24일 저수지에서 멱을 감다 공수부대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중학교 1학년 방광범 소년과 총소리에 놀라 달아나다 10여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 초등학교 1학년 전재수 어린이의 비극이 일어난 ‘송암동 양민학살’ 사건이 작품의 배경이다.

할머니는 중학교를 나와 광주에서 공장을 다니던 정호의 형, 성호를 찾으러 광주로 간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정호는 믿을 수 없는 시내의 풍경들을 뒤로한 채 찾아간 형의 집에서 형이 쓴 일기장을 본다. 그리고 형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80년 오월 광주로 플래시백 됐던 시점은 과거의 충격에서 머물고 있는 아재의 현재로 돌아온다. 이 책의 미덕은 학살의 기억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만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치유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는 데 있다. 병원에 다니면서도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지 못했던 아재는 같은 지옥에 놓여 있는 이를 만나서 처음으로 입을 연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디, 죽은 채로 살아 있당께라. 훨훨 날아가지도 않고 내 옆에 늘 뽀짝 있어라.” 그렇게 딱딱하게 뭉쳐 있던 슬픔과 분노와 죄책감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면서 아재는 기억 속의 피묻은 흰 운동화를 꺼내 신고 형의 무덤, 직시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 수치스러운 현대사의 상처로 들어가는 길도 아재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아재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함께 나누기.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밝은 미래의 출발점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4145

Trending Articles